예수인가? 바라바인가?
(마 27:11-26, 신 30:15-16, 렘 2:13, 롬 8:13-14, 갈 5:24-26, 시 37:24)
★ 누구를 택할 것인가?
유대 명절에 당시 로마 총독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15절)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17절)
유대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막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이것은 유대 백성들과 대제사장들은 치명적이고 후회막심한 선택을 한 것이다.
즉, 살인마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 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바라바(바 + 라바)는 어떤 사람인가?
Βαρ-αββάς (바르-아빠스) 바르(Βαρ)=[아들] 이란 뜻이고, αββάς(아빠스)=아빠(아버지)
예를 들어, [바요나] 시몬 = 요한의 아들 시몬이고,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외쳤던 거지 소경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 이라는 뜻이다.
바라바는 아빠스의 아들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의 이름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세상의 어떤 한 우상 신(神)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에 비해서
바라바는 세상 신(神)의 아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예수님은 사랑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반(反)하여,
바라바는 살인과 거짓, 폭력과 탐욕의 대표 인물로서 세상 악신(惡神)의 아들을 상징한다. (7절)
그는 실제로 민란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이다. (7절)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 신의 아들(바라바)을 택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비참하게 되었다.
(마 27:24-25)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그 결과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 당하고 말았다.
소위, (The Jewish War) 라고 하는 로마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마지막 요세였던 마사다도 함락되어 이스라엘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되는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 그들의 잘못된 선택의 후과(後果)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가 주어진다.
(신 30:15-16)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 30:19-20)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라.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놓으시고,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의지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미련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사망의 길, 저주의 길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 두 가지 악이란?
①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② 하나님을 버린 인생은 스스로 살길을 찾겠다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한다할 찌라도 그것은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다.
우리들 앞에도 생명과 사망의 길, 복과 저주가 놓여 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 것인가?
아니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는 세상을 따라 살 것인가?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냐? 바라바냐? 물을 때, 유대인들 처럼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인가?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살 것인가? 내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인가?
순간의 선택이 남은 생을 결정하고, 영원한 삶도 결정한다.
(롬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 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이 세상 신(사탄, 마귀)를 택할 것인가?
예수님을 택할 것인가? 바라바를 택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택할 것인가? 금방 사라질 세상 영광을 택할 것인가?
성령의 인도를 따를 것인가? 육신의 욕심을 따를 것인가?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상에서 외치며, 백성들에게 물었다.
(왕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 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여호수아는 이와 같이 선포했다.
(수 24:15)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결 론)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배우자 선택, 직장 선택, 대학 선택, 전공 선택, 주거지 선택, 교회 선택... 등등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인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결정하기 전에 말씀을 보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잘한 선택도 있지만, 잘못된 선택을 한 때도 있다.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이냐? 바라바이냐?
문제는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선택은 [하나님 선택]이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재물과 돈이냐?
(마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 인생이 큰 방향에 있어서 잘못되지 않았다면, 때로 넘어지고 실패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시 재기(再起)할 수 있는 2nd Chance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방향은 하나님께로 향한 방향이다.
이것만 흔들리지 않으면 내 인생의 어떠한 넘어짐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붙드시고
다시 재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시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시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롭고
의로운 삶을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