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있는가? 믿음의 확증을 가지라.
(고전 13:5, 유 1:20-21, 벧전 1:25, 계 3:19, 시 51:11-12, 요 10:28-29)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輕)한 일과 중(重)한 일이 있다.
경(輕)한 일은 사소한 일이고, 거기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경한 일은 지나쳐 버리고, 또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도 없으니, 지나간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말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영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Let bygones be bygones] =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라는 뜻이다.
즉, 과거의 서운함이나 갈등은 모두 잊어버리고 용서하며 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말 중요(重要)하고, 중대한 일이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에는 전심으로 살피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받는 것이고, 그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증과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다.
(고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참으로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늘 이 문제에 자신이 없다.
휘청거리고, 마음의 확신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구원의 문제만큼 중대한 일이 없으니 그냥 간과(看過)할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기초가 든든해야 한다.
기초가 약하거나 없으면 그 위의 건물은 위험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
★ 구원의 확신을 [감정]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인간의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이 있는데 자주 바뀐다.
구원의 확신을 감정 위에 두면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믿음의 확신도 바뀌고 불안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우리 자신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변하는 감정이 아니라, 변함이 없는 말씀 위에 믿음의 기초에 두어야 한다.
(유 1:20-2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신앙의 집은 Foundation 기초가 든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기초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의한 믿음의 기초이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초는 말씀이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며, 말씀 위에 믿음의 집을 건축해야 하는 것이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세토록 있는 말씀의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건축하면,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선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은 :
(고전 13:5 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시험에 들고, 죄도 짓고 믿음이 흔들거릴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때에는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도 하시고, 징계도 하신다.
그러면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사랑이다. 그것이 주님의 본심이다.
그렇습니다.
회개하면 구원의 확신도 되찾게 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시험에 빠지고, 구원의 확신까지도 흔들거리게 된다.
현재, 감정의 상태에 구원의 확신을 두면, 감정이 흔들릴 때, 확신도 흔들린다.
오순절 날에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이렇게 외쳤다.
(행 2:38-3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것을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면 죄 사함도 받고 회복시켜 주신다.
다음 구절은 죄를 범한 다윗의 참회기도이다.
(시 51:11-12)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은 구원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지 않고,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있기 때문에,
구원을 회복시켜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했다.
죄를 지으면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죄는 기쁨을 빼앗아 가고, 괴로움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다.
그래서 다윗은 이어서, 자원하는 심령(willing spirit.)을 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
(고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과 같다.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과 내 인생에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영접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기도까지 했는데,
의심이 생겨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을 감정적으로 알거나 느낄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접한 후에 놀랍게도 세상이 달라 보이고,
감격과 희열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만히 보면, 중도에 예수 믿게 된 사람에게는 어떤 감동과 변화의 간증이 많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인이나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감동적인 간증이 적고, 마음의 격동도 없고, 감정의 변화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기도는 참 잘한 것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에 의심이 생기고 구원의 확신도 약해지는 것을 본다.
★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확증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말씀들을 소개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롬 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요 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믿음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에 나의 인생과 영혼을 맡기며 의탁하는 것이다.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니고, 전적인 신뢰와 의탁이다. (Total Commitment)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내 영혼과 인생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영생을 얻었다는 구원의 확증을 갖고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그 좋은 어느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