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
(고전 10:13, 민 23:19, 살전 5:24, 시 46:1, 시 73:28, 욥 23:10, 렘 10:23)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 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든지 시험과 시련을 겪는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재기(再起)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5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감당할 시험밖에 없다.
2) 미쁘신 하나님이시다.
3)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신다.
4) 피할 길을 내어주신다.
5)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 하나씩 상고해 봅니다.
1) 감당할 시험밖에 없다.
사람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이런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된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이 오는가? Why Me? (왜 나에게만?)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라고 하셨다.
여기서 감당할 시험이란 말은 헬라어로 (안스로피노스) [Ansropinos] 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인간적인 시험, 보통 시험 밖에는] 이란 말이다.
즉, 내가 당하는 시험은 일반적인 시험이지, 특별한 시험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 나에게만이 아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다. (전도서 1:9)
그러므로 시험당할 때, [Why Me?] 라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자기 한탄에도 빠지지 말고, 하나님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시험이고 시련이다. [Why Me?]가 아니다.
미국의 제 46 대 조 바이든(Joe Biden)대통령이 있다. (1942년생)
그는 30세에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 바이든은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선된 지 불과 몇 주만(1972. 12. 18)에 가족에게 큰 교통사고가 났다.
첫째 부인인 네일리아(Neilia)가 세 자녀를 태우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러 가던 중이었다.
교차로에서 그들이 탄 스테이션 왜건 차량과 트레일러트럭이 충돌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부인 네일리아(당시 30세)와 막내딸 나오미(당시 1세)가 사고 직후 사망했다.
두 아들인 보(Beau)와 헌터(Hunter)는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극심한 시련을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
Why Me? 가 아니고, Why not me? 왜 나는 아니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뭔데, Why not me? 왜?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말인가?
그렇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시련이 나에게도 온 것뿐이다는 그 생각이 그를 위로했고,
조 바이든이 시련을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게 되었고 대통령까지 이르게 되었던것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시험과 시련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 누군가 받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는 말씀의 뜻이 내가 당하는 시험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시험이고,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말이다.
2) 미쁘신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미쁘신 하나님이시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시다는 뜻이다. 틀림없다.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이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
식언(食言)하다.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먹는다는 말이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느냐? 고 시치미 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미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신 7:9-10)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딤후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쁘지도 못하고,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일향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가?
(살전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히 13:5)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요 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런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시다] 이 말은 우리 성도들이 시험을 당할 때 큰 위안의 말씀이 된다.
3)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신다.
이 말은 억제하여 주시고, 제한시켜 주신다는 말이다.
시험을 받고 있는 현재에 적용된다.
그래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능력으로 시험당하는 성도들을 돌보아주심으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내가 당하는 어떤 시험이든지 그 시험은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다.
시련의 기간이 너무 길면 감당하기 어렵다.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말씀인가?
지금 성도 여러분들이 어떤 시험과 시련을 당하고 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건강상의 문제인지? 재산의 문제인지? 인간관계의 문제인지?
이러다가 끝장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4) 피할 길을 내어주신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여기서 피할 길은 헬라어로 [텐 에크바신] 이다.
영어로 말하면 The Way이지, A Way가 아니다.
그러니까 유일한 길이다. 오직 한길이다. 주님께로 피하는 길이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홍해 바다 앞에까지 와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하게 되었다. 그
러나 그 때 하나님이 피할 길이 되어 구원해 주셨다.
시험당할 때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The Way)이신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알고,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할 때 주님께서 피할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시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70장 [(구)79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患難)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험과 시련을 피하여 어디로 갈 것인가? 마지막 행선지는 주님의 품이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품에 안기고자 주님 앞에 나온 것이다.
5)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시험과 환난에서 피할 길을 내어주시지만, 어떤 때에는 피하고 싶어도 피해지지도 않고,
피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감당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더 깊고 온전하신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야 한다.
(예) 다니엘의 사자 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풀무불, 사도바울 감옥 ... 등등
그들은 그 모든 시험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신 것이 아니라,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고,
3친구들은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감당하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를 피할 수도 없고, 벗을 수도 없다면,
기도 제목을 바꾸어서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맡겨 주신 십자가를 잘 감당하게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결 론)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고, 고난이 없는 인생도 없다.
문제는 내가 당하고 있는 시험이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 에 따라서
인생이 정금같이 나올 수도 있고, 좌절하고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렘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참으로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오늘 주신 말씀 (고전 10:13)을 암송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시험을 감당케 하시는 미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시험과 시련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승리의 삶을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