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만족이 없다.
(잠 27:20, 계 9:11, 전 1:8, 고후 4:16-18, 시 17:15)
사람은 오감(五感)(five senses)을 통해서 어떤 만족을 갖고 얻기도 한다.
그것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인데, 특별히 시각과 청각이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만족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렇게 말했다.
(전 1:8)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특별히, 오늘은 [사람의 눈]에 대하여 말씀드리며 은혜 받고자 한다.
무엇을 보느냐?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선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영상이나 그림을 보면, 마음도 편안해 진다.
그러나, 악하고, 추하고, 싸우고, 다투는 영화나 그림을 보면 마음도 그렇게 어두워진다.
그래서 보고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 오늘 말씀에 사람의 눈은 아무리 보아도 만족이 없다고 했다.
(잠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음부와 유명은 무슨 뜻인가?
음부(陰府)는 히브리어로 [스올]이고,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하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어두운 곳이다.
유명(幽冥)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고, 헬라어로는 [아볼루온]라고 하는데,
한문으로는 깊숙할 유(幽), 어두울 영(冥)으로, 깊숙하고 어두운 곳을 말한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얼마간 있는 곳이며, 마지막 최후 심판 후에
정죄 받은 영혼들이 있게 되는 곳이 음부와 유명이다.
그래서, 다른 성경 번역들을 참고해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현대인의 성경) 죽음과 멸망(滅亡)이 만족함을 모르듯이 사람의 눈도 만족할 줄 모른다.
(NASB) Sheol and Abaddon are never satisfied, Nor are the eyes of man ever satisfied.
(개혁 개정)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K.J.V) Hell and destruction are never full; so the eyes of man are never satisfied.
요한 계시록 말씀에 아바돈과 아볼루온이라는 이 두 단어가 나온다.
(계 9: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그런데, 문제는 음부(스올)와 유명(아바돈)은 만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이 곳으로 들어왔으면, 만족해야 할 것인데,
아직도 만족이 없어 (블랙 홀처럼) 더 많은 영혼들을 빨아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눈도 음부(스올)와 유명(아바돈)처럼 만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또 보아도 아쉽고, 만족이 없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공허(空虛)와 허전함을 채울 수 없다.
★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절제]의 열매가 있다.
아무리 보아도 만족이 없고, 채울 수 없는 세상적인 것을 절제하고,
나의 마음과 영혼의 만족을 주는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옛날에는 테레비(T.V)를 많이 보았다.
T.V는 방송국에서 시간대에 맞추어 보내주는 대로 보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youtube를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골라 본다.
또한, TikTok (틱톡)이나, 구글에서 만든 [shorts]라는 것을 통해서 본다.
문제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보지만, 만족이 없고, 공허를 채울 수 없다.
의사들이 말하기를 현대인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것이 네플릭스(Netflix)라고 한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오래 오래 보게 되니,
숙면 부족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 사람의 눈과 마음은 세상적인 것으로 만족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에 눈으로 보는 안목의 정욕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돌아보는 관심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고후 4:16-18)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그러면, 우리의 눈과 마음은 어디에서 만족함을 얻을 수 있는가?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의로운 중에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느 때를 말하는가?
① 예배 중에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②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을 보게 된다.
③ 기도 중에 주님을 바라보고,
④ 찬송 중에도 주님을 바라본다.
그러면 그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게 된다.
★ 우리가 의로운 중에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면 3가지를 얻게 된다.
1) 구원을 얻는다.
(사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신약 성경에서는 같은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앙망하는 것과 믿는 것은 같은 말이 된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영혼도 구원받고, 생활의 어려움에서도 구원을 얻는다.
2) 새 힘을 얻는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피곤한 인생이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 힘을 주신다.
(사 40:29-31)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을 앙망하고, 신뢰하면 새 힘을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3) 만족함을 얻는다.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공허와 허전함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뵈올 때, 채울 수 있고,
눈과 마음에 만족함을 얻을 수 있다.
다른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주님으로 인하여 참 만족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결 론)
만족할 줄 모르는 눈을 갖고 사는 인생은 이러한 기도가 필요하다.
(시 119: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그렇습니다.
허탄한 것을 봄으로 마음이 더 공허해 지지 말고,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봄으로 만족하고, 은혜 충만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눈은 음부(스올)와 유명(아바돈)처럼 만족이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또 보아도 아쉽고, 만족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품에 들어올 때에 주님으로 만족하게 된다. (시 17:15)
하나님을 앙망하고 신뢰할 때, 구원도 얻고, 새 힘도 얻고, 만족도 얻는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것이 가장 행복한 최고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새 힘을 얻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다가
어느 좋은 날,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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