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
(롬 3:23-26, 요일 4:9, 롬 5:10-11, 요일 4:9-11, 시 85:10, 시 103:12-13)
Happy Father’s Day !
오늘은 아버지 날이고, 교회에서는 아버지 주일로 지킨다.
한국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함께 어버이날(5월 8일)로 함께 지키지만,
미국에서는 아버지날(6월 둘째 주일)이 따로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날이 따로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 오늘은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에 대하여 말씀드리며 은혜받고자 합니다.
[용서]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랑하려면 용서부터 해야 한다. 용서 없는 사랑은 없다.
죄에 빠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는데, 그것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아 주신 것이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봅시다.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26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義)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하려 하심이라
★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최고 강해 설교가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말하기를 :
오늘 본문 가운데 (롬 3:25)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이다고 했다.
이 말씀을 보시는 모든 성도들은 이 구절을 암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義)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본래,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불화(不和)관계였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그의 피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간과해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삼으시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불화 관계가 → 화목 관계로 새롭게 된 것이다.
(고후 5:18)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롬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주님의 십자가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시 85: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심판과 죄 용서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킨 것이다.
★ 다시 한번, 오늘 요절(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말씀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사람의 구속을 이루어 놓으셨지만,
그 효력(效力)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적용(適用)된다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녹용, 보약이 내 앞에 있다해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듯이,
내가 믿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효력(效力)도 발생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때, 나도 구원받고, 내 가족도 구원 받게 된다.
믿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 믿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중요한 구원의 교리이다.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시고, 하나님의 의(義)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에 지은 죄를 간과(看過) 볼 간(看), 지날 과(過) (=Pass over) 보고도 그냥 넘어간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고 유월(踰越) (Pass over)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유월절(逾越節)이란 말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피의 구속을 예표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를 믿고 받아들을 때, 나의 죄는 심판받지 않고,
유월(踰越) =넘어감 (Pass over)을 얻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다.
그리하여 주님을 믿는 우리도 의롭다고 해 주시고, 하나님 자신도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26절)
그리고, 이렇게 큰 사랑을 입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이 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너도 이웃의 허물과 잘못을 간과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잠 19:11)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이웃의 허물을 간과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수치와 모욕을 받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과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받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내다보시고,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다 맡기셨다.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
(예화) 경남 시골 산청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실화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이 아들은 공부하기 싫어서 학교생활을 게으르게 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성적표가 나왔는데, 1학년 8반, 68명 중, 68/68 꼴지였다.
내 아버지는 자신이 교육받지 못한 한(恨)을 자식을 통해 풀려고,
없는 돈을 모아서 대구로 유학을 보냈는데 꼴지를 한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어서 아버지가 계신 고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끼니도 제대로 못하며 소작농을 하며 사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차마 꼴지 성적표를 도저히 아버지께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성적표를 1/68으로 위조해서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못해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그 성적표를 보고 내 아들이 1등했다고 너무 기뻐서 동네 사람들 초청해서 잔치를 벌렸다.
그것도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한 것이다.
이 아들은 자책감을 갖고, 방안에 들어가서 자기의 머리를 주어 박으며...
“난 죽어야 해... 나는 불효막심한 자식이야...”
그리고 나서, 그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17년 후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가 박찬석 교수라는 사람이다.
그의 나이 45세가 되었을 때, 박 교수의 아들(민우)가 중학교 들어갈 때가 되었다.
박 교수는 33년 전(前)의 일을 아버지께 사과하기 위해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다.
“아부지, 사실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라고 말하는데,
아버지가 눈치채고 정색을 하며 “야, 다 알고 있다. 네 아들(민우)이 듣겠다. 고만해라.”
아들의 위조 성적표를 다 알고도, 돼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한 것이다.
(경북 대학교 박찬석 총장 이야기이다)
다 알고도 모르는 척, 간과해 주시고, 동네 잔치하신 아버지의 마음, 아들을 믿어주었던 아버지였기에
그 아들이 변화 받고, 대학 교수, 총장까지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예화) 우리가 잘 아는 노란 손수건 이야기가 있다.
어느 아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형(刑)을 마치고 출소(出所)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 제가 출소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받아 주신다면, 집 앞에 있는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매달아 주세요.
만일, 저를 원치 않으신다면 아무 것도 달지 말아 주세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드디어 집 가까이 온다.
과연, 노란 손수건이 달려 있을까?
그런데 집에 가까이 와 보니, 집 앞 나무에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전체가 뒤덮여 있었다.
아들이 혹시라도 못 보고 지나칠가봐... 아버지는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탕자의 아버지처럼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 103:12-13)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罪過)를 멀리 옮겨 주시고,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나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내 죄를 간과해 주실 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히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塗抹)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해 주셨으니,
너희도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다. (요일 4:11)
(결 론)
예수님의 십자가 피 공로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죄를 간과(看過)해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크고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잊지 말고,
항상 감사, 찬송하며,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버지 날(Father’s Day)을 맞이하여 하나님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사랑 많은 아버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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