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다.
(롬 7:7-11, 요일 3:15, 롬 3:20, 고전 15:56, 롬 8:1-4, 엡 1:7)
본문 (7절)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Is the law sin? Certainly not !, Indeed)
율법이 죄냐?는 질문은 문맥상 율법이 나타남으로 죄를 드러나게 해 준다는 의미로서,
율법이 죄냐?는 질문이다.
곧이어서, 나오는 대답은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Never)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율법은 인간의 도리, 윤리, 종교의 상징이다.
율법은 사람에게 이렇게 살라. 선하게 살라. 의롭게 살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인간은 그 율법의 계명대로 살 능력이 없다.
그래서 우리를 좋게 하려고 주어진 율법이 오히려 나쁘게 되었다.
이것이 율법의 역기능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 율법이 죄냐? 는 질문이다.
1) 율법의 기능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알게 하고, 죄를 드러나게 한다.(7절)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다.
율법 자체가 죄는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선한 것이다. (딤전 1:8)
그러나, 율법이 인간의 죄(罪)를 드러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율법이 없으면, 죄(罪)를 죄(罪)인 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고, 율법의 역할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모른다.
율법이 없으면 탐심도 모르고, 그것이 죄(罪)라는 것도 모른다.
(7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십계명에서 10번째 계명이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탐심이 있음을 알았다.
문제는 나에게 탐심이 있음을 알았으나, 탐심을 없애 버릴 능력이 없다.
내 속에 타락한 죄의 본성(本性)이 있어서, 탐심이 저절로 올라오고, 탐욕을 부린다.
이것이 자연인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탐심, 거짓말, 음욕, 시기, 질투심... 이런 것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죄를 짓지만, 이미 죄의 성품이 본성적으로 내 안에 있어서 마음으로 먼저 죄를 짓는다.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고,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였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殺人)하는 자니...
(마 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그래서 인간이 행위로도 죄를 짓지만,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도 율법을 범한 것이니,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 3:10)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의(義)로움에 도달할 사람이 없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지만, 나를 의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리려, 그 율법의 정죄(定罪)로 인하여 죄책감에 눌려 살게 만든다.
(8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율법이 없다면 죄는 죽은 것이다.
율법이 옴으로 인하여 죄가 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2) 율법의 마지막은 :
그래서 결국, 그 율법은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9-10절)
(9-10절)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나를 살리려 주어진 율법이 이르매 오히려 죄가 드러나고, 나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율법의 역설이다.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가 율법을 이용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우리로 하여금 의롭고, 바르게 살라고 주신 율법이 오리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권능이 되었다.
★ 그렇다면? 율법이 문제인가?
내가 죽게 된 것이 율법 때문인가? 아니다.
죄가 나를 속인 것이다.
(11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그러니까,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죄가 문제이다.
3) 두 종류 삶의 방식(Mode) :
① 율법 아래서 정죄와 죄책감 속에서 육신을 따라 사는 방식(方式)이 있다.
이러한 삶의 마지막은 심판이고, 멸망이고, 죽음에 이른다. 지옥이다.
② 복음의 기쁜 소식을 믿고, 은혜 아래서 성령을 따라 사는 방식(方式)이 있다.
이러한 삶의 마지막은 생명과 평안이고, 영생이다. 천국이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주님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놓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율법에서 해방된다.
(롬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결 론)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선하게, 바르게 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율법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율법이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 율법에는 역기능과 선기능이 있다.
① 역기능이란?
생명에 이르게 할 율법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② 선기능이란?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으니,
복음이 필요성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기능이다.
그래서 인간은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마련한 하나님의 의(義)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Justification by Faith)이다.
이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은혜 아래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은혜 아래서 사는 삶의 비결을
터득해 나가야 한다.
그렇습니다.
율법의 정죄와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복음의 은혜 아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 놓으신 복음의 은혜와 능력으로 율법의 역기능을
극복하고, 성령 안에서 의와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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