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갈등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길
(롬 13:11-14, 갈 5:17, 롬 7:19-24, 벧전 2:11, 갈 3:27, 벧전 4:2-3)
인간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내적 갈등(葛藤)을 갖는다.
즉, 상반(相反)되는 두 개의 원리가 내 안에서 작동한다.
하나는 진실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과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도 그렇고,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 안에는 두 가지 상반된 소욕(所欲)이 존재한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상반(相反)되어 갈등하며 싸운다.
그래서 인간은 갈등하는 존재(a conflicting existence)라고 한다.
종교 개혁가들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Saint and Sinner이다.
즉, 의인(義人)인 동시에 죄인(罪人)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내적 갈등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다.
(롬 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한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길을 보여준다.
1)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라. (11절)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인간은 천년, 만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시 90:10)고 했다.
요즈음은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그렇게 장수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렇게 장수하는 분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인간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래서,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하지 않은가?
건장하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약골이라고 단명하는 것도 아니다.
골골 90년이라고 한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종말 의식은 죽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곧,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데, 육신의 일만 좇아 살다가, 어떻게 주님 앞에 설 것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성화(聖化)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빌 2:12)
그렇습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보다는 주님을 만날 날이 더 가까이 오고 있다.
그래서 (11절 하)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고 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고, 잠깐 있다가 떠나가는 하숙생 같은 행인이기 때문에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12절)
★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3가지를 하지 말라. (13절)
① 방탕과 술취하지 말라.
절제하지 못하고, 술은 세상 쾌락의 대표를 말한다.
②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
성(性)적인 유혹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③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
싸워서 불화하고, 질투해서 화평을 깬다.
기독교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 성(聖) 어거스틴이다.
그는 성(性)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하여 난잡한 삶을 살았다.
혼외 사생아를 낳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한 아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암브로우스 감독을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나요?”
그 때, 암브로우스 감독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어찌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겠습니까?”
“어머니 눈물의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밀라노 정원에 앉아서 인생의 갈등과 욕망으로 탄식하며 절규하고 있을 때, 옆 집의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거스틴의 귀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마치 [톨레 레게, 돌레 레게]로 들렸다.
[톨레 레게]란 말은 톨레(Tolle) = 집어 들고, 레게(Lege) = 읽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옆에 있던 성경책을 집어 들고, 보게 된 말씀이 오늘 본문 (롬 13:11-14)이었다.
이 말씀을 보는 순간 방탕아 어거스틴이 성(聖) 어거스틴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말씀의 능력이 있었다. 성령께서 그 순간 역사하신 것이다.
우리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자
(롬 13:11-14)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길)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14절)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과거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그 십자가 공로로 그를
믿는 자에게는 의(義)의 옷을 입혀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옷과 의복이 되신다.
★ 우리는 의식주(衣食住)가 필요하다.
(ㄱ) 예수님이 우리의 옷이고, 의복이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예) 경찰복, 군복, 의사 까온, 판사 옷, 목사 까온... 등등
신분에 해당하는 옷을 입으면, 그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군인은 군인답게, 경찰은 경찰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언행을 해야 한다.
우리가 세례받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님을 닮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ㄴ) 예수님은 우리의 양식이고, 음료가 되신다.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ㄷ)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dwelling place)가 되신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시 90: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우리는 매일 아침 예수님으로 옷을 입고, 주님의 양식을 먹고, 주님을 거처로 삼아,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여기에 승리하는 삶이 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며 사는 자유인이 된다.
(요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길)
(3)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소욕을 제어하라.
내 힘과 의지력으로 육신의 소욕을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갈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4절 하)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도모(圖謀)라는 말은 어떤 일을 이루려고 애쓴다는 말이다.
우리는 영적인 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도모하고 노력해야 능력을 받는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 육체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골 3:5)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체로키 인디언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눈 ‘인디언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안에는 검은 개와 흰 개라는 두 마리의 개가 살고 있단다”
흰 개는 착한 개이고, 검은 개는 악하고, 시기, 질투가 많은 개이다.
이 두 마리의 개가 늘 싸운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러면 어느 개가 이기나요?”
그것은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놈이 이긴단다”라고 대답해 주셨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
예배, 기도, 말씀 묵상, 은혜, 성령 충만, 성경 공부, 성도의 교제, 전도, 봉사에 힘쓰며, 도모하는 것이다. 그럴 때, 흰 개가 검은 개를 이길 수 있게 된다.
(벧전 4:2-3)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결 론)
사람은 육신을 갖고 사는 동안에는 내면에 두 종류의 소욕이 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다.
이 둘이 항상 서로 대적하며 싸운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소욕의 갈등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는가? (롬 13:11-14)
1)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라.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3)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소욕을 제어하라.
그리하여, 육신의 소욕을 제어하고 승리하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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