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전 4:6, 사 2:22, 시 146:5, 고후 4:3-5, 잠 6:22, 시 130:5)
우리는 삶의 기준(基準)(standard)이 필요하다.
기준(基準)이란?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할 때 근거가 되는 표준, 원칙을 말한다.
특별히, 신앙생활을 할 때는 신앙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신앙의 기준(the standard of faith)이 [성경]이다.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이다.”
(The Bible is the only standard of faith and life.)
그래서 성경을 캐논(Canon)이라고 한다.
캐논(Canon)이란 말이 기준, 표준이라는 말이다.
만일, 성경이라는 캐논(Canon)이 없으면, 각기 자기의 생각이나,
자신이 듣고, 본 것을 주장하게 되고, 영적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된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本)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에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 현대인의 성경)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넘어서지 말라.
이 말씀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고, 기록된 말씀 안에서 신앙의 지침을 따르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를 거스리지 말고, 사도 바울과 아볼로가 본(本)을 보임과 같이, 서로 대적하는 태도를 버리고, 말씀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 말씀에는 3가지가 있다.
① 성육신하셔서 육화(肉化)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② 기록된 말씀인 성경 말씀 (Bible, Canon)
③ 선포(케리그마, κῆρυγμα)되는 말씀 설교 말씀
기록된 말씀은 육화(肉化)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되는 설교 말씀은 기록된 말씀을 증거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②번은 → ①번을 증거하고, ③번은 → ②번을 증거한다.
우리가 기록된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면, 인간을 따르게 되고, 인생을 의지하게 된다.
성경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사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시 62:9)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 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그러면,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누구를 의지하라는 말인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이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 섭리주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 구원주 하나님이시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의 닻을 하나님께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떠나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되고 결국에는 패망하게 된다.
(고전 4:6)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으면 사람을 의지하거나,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신은 죽었으니 인간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슈퍼맨(Super Man)같은 초인(Übermensch)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 신화를 말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신(神)으로 만들거나, 자기 자신을 신격화(神格化)시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차라투스트라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기록된 말씀 즉,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과 삶의 최고의 기준이다.
(고후 4:3-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모든 사상, 모든 이념, 모든 철학, 모든 생각을 파(破)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길이 바로, 기록된 말씀이다.
17세기 후반∼18세기에 계몽주의(啓蒙主義, Enlightenment)가 유럽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이성주의(理性主義) 지성주의(知性主義)였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유한하고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작용으로 반(反)지성주의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성주의인가? 반(反)지성주의인가? 둘 다 아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은 초(超)이성주의, 초(超)지성주의이다.
이성과 지성을 초월(超越)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홍해를 가랐다. 오병이어 사건,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린 사건,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한 사건 같은 이런 모든 이적(異蹟) 사건들과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때,
그것이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고 묻는다면 둘 다 아니고, 초(超)과학적이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40일을 금식 기도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 4:1-11)
그 때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무엇으로 물리치셨던가?
(ㄱ)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ㄴ)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ㄷ)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3번 모두 [기록되었으되] 라는 성경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록된 말씀 안에서 사셨고, 말씀을 떠나서 살지 않으셨다.
왜 성경 테두리 안에서만 모든 것을 답답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의 깊이와 길이와 넓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깊이가 참으로 심오하고, 말씀의 길이와 넓이가 무한광대(無限廣大)하다.
(잠 6:22) 그것(말씀)이 네가 (낮에)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밤에)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아침에)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인도하고, 보호하며
하루 24시간 함께 동행하여 주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 119:133)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결 론)
신앙과 삶의 기준(基準)과 표준(標準)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 장 “성경에 대하여”라는 제목 서두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생활의 최종적이고, 절대적 기준이며, 유일한 법칙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윤리,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성경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벗어나지 말고,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전 4:6)고 말씀한 것이다.
정말,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시 130: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 119: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130:6)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19: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과 생활의 기준(基準)이 되는 기록된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하고, 갈망하며, 사모하고,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과 동행하고, 말씀 안에서 살면,
마귀, 사탄의 시험도 물리칠 수 있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렇게 은혜와 평강의 삶을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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