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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일 월요일

[본질 회복] 씨리즈 (7)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하라


[본질 회복 ] 씨리즈 (7)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하라 (14:13)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죽음이라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누구든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9:27)
그러나 본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이 있도다 고 했다.
이 말은 주님 없이 주님 밖에서 죽는 자들은 가 있다는 말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고 구원을 받은 자의 죽음을 전제로 말씀드린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과연 어떤 복을 받는가?
 
1)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어떤 것인가?
사람은 <>라는 존재가 있는데, 몸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몸과 영혼이 있어 사는 것이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10:28) 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에 몸과 영혼으로 구별하여 말씀하고 있다. 몸과 영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내 영혼이 몸을 가지고 지금 사는 것이다.

죽음이란? 내 영혼이 몸을 가지고 살다가 그 몸의 기능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이 그 몸에서 떠나면 몸이 죽는다. 몸이 아무런 기능을 활동하지 못한다.
 
(예화) 고무장갑 비유 : 장갑이 움직인다. 그 사람의 손이 들어가서 움직이는 것이다.
장갑에서 손을 빼면 장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죽음이란? 영혼이 떠나가면 그 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몸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박동하고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이 지금 내 육체 안에 있다는 증거이다.
영혼이 몸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다.
눈이 물체를 본다. 입이 말하고, 손도 움직이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영혼이 빠져나가면 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 몸을 사용하던 그 영혼이 이 몸을 떠났구나...

(1:22-24)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그러므로 <>라는 존재는 이 몸 안에서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몸을 가지고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벧후 1:13-14)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 임박한 줄을 앎이라. 이 장막은 임시 처소이다.
그러므로 <>라는 존재 = 장막이라는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은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와 장막을 구분하고 있다.
내가 이 장막을 벗어날 때가 임박한 줄 안다고 한 것이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그러면 <>라는 존재가 몸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내가 떠나가면 이 몸은 다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가 사용하던 그 몸을 떠나가는 것이다.
죽었구나 = 몸을 벗고 떠났구나.
이 몸은 주인이 떠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2) 이 영혼이 몸을 떠나간다고 했는데, <떠나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어떻게 떠나가고? 어디로 떠나가는가?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사람이 그 몸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간다는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 죽음의 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결정권이 없다.
내가 언제 죽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부모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예화) 하나님이 각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때가 되면 부르시고 데려간다.
내가 몸을 떠나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가신다고 했다.
 
(예화) 한번은 사도 바울이 몸을 떠나 낙원에 이끌려 간적이 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 땅이 아닌, 낙원, 천국, 하늘 나라가 있다.
예수님이 한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몸은 땅에 남지만, 영혼은 몸에서 떠나 낙원 천당에 가든지, 음부, 지옥에 가든지 간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장소가 아니다. 죽음이란? 하나님이 데려 가는 것이다.
 
(Cf) 조상에게 제사 드릴 때, 조상의 혼이 와서 제사 음식을 먹고 후손들에게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다 거짓 영이 가르쳐 준 거짓이다. 절대로 이 곳에 올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하나님이 데리고 가시니, 이 곳에 있지 않고, 올 수도 없다.
 
그리고 어디로 데리고 가시는가?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영원히 계시는 영광스러운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토록 살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일을 힘쓰고 썩을 장막 떠날때에 주의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 없는 영광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멘 아멘이다. 그 곳으로 우리가 간다.
 우리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
놀라운 큰 은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이 세상 추운 일기가 화창한 봄날 되도다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산위에서 보오니 먼 바다 건너 있는집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
 
<낙원>: 우리 주님이 가시는 그 곳에 너도 함께 있으리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몸을 떠나 영원히 아버지가 계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하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그 곳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셨다.
 
(예화) 마치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은혜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를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고
성경 말씀으로 알려 주셨다.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
내가 보니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 보좌 앞에 섰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러므로 죽음을 바르게 알고 과연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인지? 슬퍼해야 할 일인지?
이것이 하나님께로 받은 엄청난 복인 줄 깨닫고 이 복을 은혜로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화) 우리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우리가 영원힌 살 나라는 아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내가 이 몸을 떠나는 사건으로 인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복>은 어떤 복인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1) 불편한 몸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라는 영혼이 이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이 몸 때문에 많은 제제를 받고 산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몸이 쇠약해 져서 불편하고, 괴롭고, 힘들다.
큰 병에 걸리면 더 괴롭다. 몸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몸 때문에 힘들고 괴롭다.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맘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즐기고 싶은데도 못 한다.
그러나 이 불편한 몸에서 나를 떠나게 해 주실 때, 몸의 약함과 질병에서 오는
모든 고통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 그것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해 준다.
그 자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자유이다.
그 몸의 제한을 받던 내가 이 몸을 떠나는 것은 엄청난 구원이고 축복이다.
 
2) 더 귀한 복이 있다.
이 몸을 떠나는 것은 이 몸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7: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에 죄가 살아있다.

(7:21-24)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지체 속에 가 살아 있다. 몸 안에 이 함께 있다.
내가 태어나서 몸을 떠날 때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 속에 있는 <>.
갓난아기 안에도 죄성(罪性)이 있어서 동생이 생기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잠이 안 온다.
이런 못된 죄의 성품이 있어서 기회만 있으면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한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죄가 못된 생각을 하게하고, 나를 유혹하고, 방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걱정, 근심, 불안, 불평, 원망, 욕심... 등이 일어나서 나를 평생 괴롭힌다.
이 죄가 내 몸 속에 살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몸을 떠날 때에 로부터 벗어나고 자유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받게 되는 복이다.
일어나서 춤추어야 할 기쁜 일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몸을 떠날 때까지 나를 괴롭히던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원을 누가 해 주시는가? 우리 주 예수님 밖에 없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원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러나 내 몸에 숨어 있는 죄가 얼마나 나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는지 모른다.
불필요한 생각을 하게하며 얼마나 나를 괴롭힙니까?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죄에서 온전히 떠나는 길은 내가 이 몸을 떠나는 것이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내 영혼이 이 몸에서 떠나는 때, 모든 눈물도 없고, 다시 사망도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고 영원히 지나간다. 끝이 난다.
이것이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이며,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한 것이다.
 
이런 구원의 날이 나에게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내가 이 몸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나를 이 고통 많고, 죄 많은 몸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들려주시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부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곳에 가면 다시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죄 질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 나에게서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사는 동안에는 이 죄 때문에 방해 받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을 떠날 때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와 무관하게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런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진짜 감사한 일이다. 아멘
 
(결 론)
어느 좋은 날 아침에 때가 되면 죽음이 나에게 다가 올 것인데 :
그 날은 가장 복되고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저 좋은 낙원, 천국의 영광에 들어갈 것이다.
그 날에 오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몸 안에 있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을 기쁨으로 뵈옵게 될 것이다.
그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의 능력을
더 받아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오늘도 말씀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잠시 이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 이 몸에 이끌려 살지 말고, 이 몸 받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더 하여 주시옵소서.
 

[본질 회복 ] 씨리즈 (6) 쉼이 안식이 되게 하라


<본질 회복 > 씨리즈 (6)
쉼이 안식이 되게 하라 (7:9-12, 11:28-30)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품에 들어와 안식하며 평안을 누리라는 것이다.
 
1) 안식과 휴식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안식이란? 하나님 안에서 재충전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을 성경은 안식이라고 말한다.
십계명 제 4 계명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
안식이란? 그냥 휴식하는 것이 아니다.
(예화) 오ㅇㅇ 3자매 -- 고깃간 집 :
 
안식하라 하셨지, 휴식하라 하지 않으셨다.
안식, 휴식, 노동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노동은 일하는 것이다. 휴식은 일을 놓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휴식이라면 안식과 휴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동과 휴식이라는 개념은 : <>을 기준으로 설정된 개념이다.
그러나 안식은 일에 대하여 설정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설정된 개념이다.
따라서 안식과 휴식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개념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일 안하는 것이 휴식도 되고, 안식도 되는 것 같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예화) 저의 집에는 전기면도기가 있다.
전기면도기는 제 수염을 깎을 때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면도기가 휴식을 할 때는 수염을 안 깎고 쉬고 있을 때이다.
그러면 전기면도기가 안식 할 때도 있다. 언제일까요? 휴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충전기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이 전기면도기가 안식을 누리지 않고 노동만 하면 에너지가 다 고갈 되어서
마침내 제 수염을 깎다가 깎지 못하고 툴툴하다가 수염을 뽑아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안식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안에서 공급과 재충전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충전기는 하나님 품안에 안기는 것이다.
(예화) 우리가 주일 날 : 교회에 와서 봉사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치고, 성가대도 봉사한다.
어떤 때는 -- 오히려 주일 지나면 몸은 더 피곤하다.
그러나 몸은 더 피곤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재충전 받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안식이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되게 지킴으로 :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공급을 받아 참 안식 가운데 새 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전기 드라이버가 있다. 이것은 사용한 다음에 반드시 충전기에 꼽아 놓아야 한다.
그 때가 드라이버가 안식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에게서 새 힘을 공급을 받는 것이다.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림으로 새 힘과 새 능력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하다.
 
2) 우리를 ( 부르 )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왜 우리를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풍성함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다.
<부른다>는 말은 <내게로 오라>는 말이다.
보통은 사람이 사람을 부를 때는 자신의 결핍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도와달라고... 부른다.

() 집에서 제 아내가 저를 부릅니다.
? 병뚜껑이 안 열려서 열어 달라고 부른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내가 또 부른다. 이번에는 왜 부르는가?
이번에는 공부만 하지 말고 좀 쉬면서 간식 먹으라고 부른다.
두 번째 부른 것은 첫번째 부른 경우와 차이가 있다.
첫 번째 부른 것은 : 자신의 결핍을 호소하기 위해서 불렀지만,
두 번째 부른 것은 : 자신의 풍성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우리들의 질문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손이 부족하고
힘이 부쳐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 큰 은혜와 공급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이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달려갈 때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안식과 축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그 초대가 바로 ( 예배 )에로의 초대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초대 받은 것은 놀라운 안식의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영광과 부요와 기쁨이 넘치는 축제에 참여하라는 초대장이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께 나아와 최상의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구원 받은 자들의 축제인 것이다.
예배는 단순히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거나 묵상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구원의 축복들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예배에 감격이 없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골방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지만, 교회까지 와서도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할 수 있다.
 
() 저는 이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으며,
상한 심령들이 치유 받고,
선포되는 말씀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은혜에 사로 잡혀 성령의 감동과 감격이 밀려오고,
혜 받아 거룩한 두 손을 들고, 기뻐 뛰며, 춤추며 스데반처럼 천사의 얼굴로
변화되는 예배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바로 예배이고,
그 예배를 통해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힘을 받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모든 칭송과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에 참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 중에 우리를 만나기 원하시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며
하나님이 가지신 좋은 것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이 예배가 성령과 진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23)
 
신령은 :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이고,
진리는 :  예배의 내용이 진리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시며, 성령은 진리를 알도록 증거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령님만이 예배가 예배 되게 하신다.
성령이 감동하시고 영감을 주시고, 돕는 자가 되시어서 예배가 하나님께 올라가게 하시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게 하신다.
그러므로 예배 때마다 성령님, 오늘도 나의 예배를 도와주세요. 주관해 주세요.” 라고
의탁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있다. (4:10, 5:8, 7:11)
) 예배는 ( 엎드려 ) 경배하는 것이다.
천국의 예배자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최대의 경외를 표하는 것이며
예배자 자신을 낮추는 태도이다.
예배는 인간의 갈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드리는 것이 아니다.
,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인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 예배는 하나님께 ( 영광 )( 존귀 )를 돌리는 행위이다.
(5:12)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나님의 실존 앞에 서면 저절로 찬송과 칭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 또한, 하나님께 ( 감사 )를 돌리는 것이다.
(4: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
돌릴 때에... 감사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
 
<예배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각과 아버지와 만나서 교제하려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예배는 살아날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때 새 힘을 얻는 안식을 누리게 된다.
예배 시간에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서 ... 눈물로 찬송하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해서 ... 눈물로 감사기도 드리고
또 나를 천국 본향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 찬송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살아야 예수 믿는 맛이 난다.
예배에 당신의 인생을 걸어보라. 아무 것도 잃는 것이 없을 것이다.

(결 론)
휴식과 안식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인간의 안식은 하나님 품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 안식이다.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을 주시기 위하여 정해 놓으신 안식의 날이다.
주일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재충전을 받으라고 주신 날이다.
시든 영혼이 소생함을 얻고 피곤한 육신이 새 힘을 얻는 시간을 갖는 사람만이
새롭게 시작 할 수 있다.
주일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날 중에 가장 복된 날이다.
 
당신이 주일을 모든 날 중에 가장 즐거운 날로 지키면 당신은 더욱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모든 날 중에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하는 날로 지키면
당신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8:10)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