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일 월요일

[본질 회복] 씨리즈 (7)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하라


[본질 회복 ] 씨리즈 (7)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하라 (14:13)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죽음이라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누구든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9:27)
그러나 본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이 있도다 고 했다.
이 말은 주님 없이 주님 밖에서 죽는 자들은 가 있다는 말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고 구원을 받은 자의 죽음을 전제로 말씀드린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과연 어떤 복을 받는가?
 
1)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어떤 것인가?
사람은 <>라는 존재가 있는데, 몸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몸과 영혼이 있어 사는 것이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10:28) 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에 몸과 영혼으로 구별하여 말씀하고 있다. 몸과 영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내 영혼이 몸을 가지고 지금 사는 것이다.

죽음이란? 내 영혼이 몸을 가지고 살다가 그 몸의 기능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이 그 몸에서 떠나면 몸이 죽는다. 몸이 아무런 기능을 활동하지 못한다.
 
(예화) 고무장갑 비유 : 장갑이 움직인다. 그 사람의 손이 들어가서 움직이는 것이다.
장갑에서 손을 빼면 장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죽음이란? 영혼이 떠나가면 그 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몸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박동하고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이 지금 내 육체 안에 있다는 증거이다.
영혼이 몸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다.
눈이 물체를 본다. 입이 말하고, 손도 움직이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영혼이 빠져나가면 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 몸을 사용하던 그 영혼이 이 몸을 떠났구나...

(1:22-24)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그러므로 <>라는 존재는 이 몸 안에서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몸을 가지고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벧후 1:13-14)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 임박한 줄을 앎이라. 이 장막은 임시 처소이다.
그러므로 <>라는 존재 = 장막이라는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은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와 장막을 구분하고 있다.
내가 이 장막을 벗어날 때가 임박한 줄 안다고 한 것이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그러면 <>라는 존재가 몸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내가 떠나가면 이 몸은 다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가 사용하던 그 몸을 떠나가는 것이다.
죽었구나 = 몸을 벗고 떠났구나.
이 몸은 주인이 떠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2) 이 영혼이 몸을 떠나간다고 했는데, <떠나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어떻게 떠나가고? 어디로 떠나가는가?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사람이 그 몸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간다는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 죽음의 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결정권이 없다.
내가 언제 죽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부모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예화) 하나님이 각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때가 되면 부르시고 데려간다.
내가 몸을 떠나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가신다고 했다.
 
(예화) 한번은 사도 바울이 몸을 떠나 낙원에 이끌려 간적이 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 땅이 아닌, 낙원, 천국, 하늘 나라가 있다.
예수님이 한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몸은 땅에 남지만, 영혼은 몸에서 떠나 낙원 천당에 가든지, 음부, 지옥에 가든지 간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장소가 아니다. 죽음이란? 하나님이 데려 가는 것이다.
 
(Cf) 조상에게 제사 드릴 때, 조상의 혼이 와서 제사 음식을 먹고 후손들에게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다 거짓 영이 가르쳐 준 거짓이다. 절대로 이 곳에 올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하나님이 데리고 가시니, 이 곳에 있지 않고, 올 수도 없다.
 
그리고 어디로 데리고 가시는가?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영원히 계시는 영광스러운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토록 살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일을 힘쓰고 썩을 장막 떠날때에 주의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 없는 영광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멘 아멘이다. 그 곳으로 우리가 간다.
 우리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
놀라운 큰 은혜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이 세상 추운 일기가 화창한 봄날 되도다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산위에서 보오니 먼 바다 건너 있는집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
 
<낙원>: 우리 주님이 가시는 그 곳에 너도 함께 있으리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몸을 떠나 영원히 아버지가 계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하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그 곳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셨다.
 
(예화) 마치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은혜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를 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고
성경 말씀으로 알려 주셨다.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
내가 보니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 보좌 앞에 섰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러므로 죽음을 바르게 알고 과연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인지? 슬퍼해야 할 일인지?
이것이 하나님께로 받은 엄청난 복인 줄 깨닫고 이 복을 은혜로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화) 우리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우리가 영원힌 살 나라는 아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내가 이 몸을 떠나는 사건으로 인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복>은 어떤 복인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1) 불편한 몸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라는 영혼이 이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이 몸 때문에 많은 제제를 받고 산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몸이 쇠약해 져서 불편하고, 괴롭고, 힘들다.
큰 병에 걸리면 더 괴롭다. 몸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몸 때문에 힘들고 괴롭다.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맘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즐기고 싶은데도 못 한다.
그러나 이 불편한 몸에서 나를 떠나게 해 주실 때, 몸의 약함과 질병에서 오는
모든 고통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 그것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해 준다.
그 자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자유이다.
그 몸의 제한을 받던 내가 이 몸을 떠나는 것은 엄청난 구원이고 축복이다.
 
2) 더 귀한 복이 있다.
이 몸을 떠나는 것은 이 몸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7: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에 죄가 살아있다.

(7:21-24)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지체 속에 가 살아 있다. 몸 안에 이 함께 있다.
내가 태어나서 몸을 떠날 때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 속에 있는 <>.
갓난아기 안에도 죄성(罪性)이 있어서 동생이 생기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잠이 안 온다.
이런 못된 죄의 성품이 있어서 기회만 있으면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한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죄가 못된 생각을 하게하고, 나를 유혹하고, 방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걱정, 근심, 불안, 불평, 원망, 욕심... 등이 일어나서 나를 평생 괴롭힌다.
이 죄가 내 몸 속에 살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몸을 떠날 때에 로부터 벗어나고 자유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받게 되는 복이다.
일어나서 춤추어야 할 기쁜 일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몸을 떠날 때까지 나를 괴롭히던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원을 누가 해 주시는가? 우리 주 예수님 밖에 없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원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러나 내 몸에 숨어 있는 죄가 얼마나 나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는지 모른다.
불필요한 생각을 하게하며 얼마나 나를 괴롭힙니까?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죄에서 온전히 떠나는 길은 내가 이 몸을 떠나는 것이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내 영혼이 이 몸에서 떠나는 때, 모든 눈물도 없고, 다시 사망도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고 영원히 지나간다. 끝이 난다.
이것이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이며, 죽음을 복된 죽음이 되게 한 것이다.
 
이런 구원의 날이 나에게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내가 이 몸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나를 이 고통 많고, 죄 많은 몸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을 들려주시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부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곳에 가면 다시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죄 질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 나에게서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사는 동안에는 이 죄 때문에 방해 받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을 떠날 때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와 무관하게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런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진짜 감사한 일이다. 아멘
 
(결 론)
어느 좋은 날 아침에 때가 되면 죽음이 나에게 다가 올 것인데 :
그 날은 가장 복되고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저 좋은 낙원, 천국의 영광에 들어갈 것이다.
그 날에 오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몸 안에 있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을 기쁨으로 뵈옵게 될 것이다.
그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의 능력을
더 받아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오늘도 말씀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잠시 이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 이 몸에 이끌려 살지 말고, 이 몸 받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더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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