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축복 (8)
멍에를 메면 쉼을 얻는다.
(마태 11:28-30)
역설이란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데, 사실은 그 <역>이라는 것이다.
<얼른 볼 때는 모순 같으나, 사실은 모순이 아닌 진리이다>
(1) 역설의 축복 : [죽으면 산다.]
(2) 역설의 축복 : [약할 때 강함이라.]
(3) 역설의 축복 : [종이 되면 으뜸이 된다.] (4) 역설의 축복 : [주면 더 부요하게 된다.]
(5) 역설의 축복 : [낮추면 높아진다]
(6) 역설의 축복 : [애통하면 기뻐진다]
(7) 역설의 축복 : [자유를 버리면 참 자유인이 된다]
오늘은 [멍에를 메면 쉼을 얻는다] 입니다.
이것도 역설 중의 역설이다.
오늘 본문 말씀 (마 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 등을 끌 대, 소의 어깨에 얹져 놓는 [ㅅ] 모양의 구부러진 막대이다.
사실상 [멍에] 라는 것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멍에를 메면 멍에를 멘 만큼 무거워야 하는데, <멍에> 를 멘 만큼 가벼워진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신비스러운 멍에] 이기 때문에 도리어 가벼워진다는
역설적인 진리이다.
만일, 여기서 San Diego 까지 큰 쇠덩어리를 들고 가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고 무겁겠습니까?
그러나 벤즈나 렉서스 차를 주면서 San Diego까지 운전해서 가져다주라고 한다면
이는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일주일 이상 걸려서 갈 길을 단 2-3시간 만에 갈 수 있다.
그것도 신나게 콧노래 부르면서 운전해서 갈 수 있다. 오히려 안식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는 오히려 인생이 가벼워 지고 쉬워진다.
새벽기도는 무거운 멍에가 아니라, 축복의 선물이다.
예배는 힘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안식이 주어진다.
말씀의 멍에를 지고 살면 속박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얻게 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깊은 영성과 영적 능력을 얻게 된다.
주일 성수하면 힘든 것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봉사라는 멍에를 메면 오히려 기쁘고, 보람을 얻고, 마음에 쉼을 얻는다.
그래서, 주님이 맡겨 주신 멍에를 메고 일해야 한다.
행복한 인생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일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높은 차원에서 얻는 기쁨이요, 안식이요, 평화이다.
억지로 하는 일은 참으로 괴롭다.
그러나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귀한 사역이기에 감사함으로 사역하면 사역 속에 기쁨이 생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일치하는 소명적인 일을 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삶이 될까?
그래서 그 일 자체가 휴식이며 그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신령한 일을 행하므로 마음에 쉼을 얻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며,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는 진정한 안식과 쉼이 있고, 구원이 있다.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내 인생의 짐은 가벼워지고 평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인생은 점점 더 곤고해 지고 무의미해 지게 될 것이다.
편안과 평안은 같은 것이 아니다. 불편과 불행도 같은 것이 아니다.
재미와 기쁨도 같은 것이 아니다.
재미는 세상도 줄 수 있으나, 기쁨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편안은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지만 참 평안, 참 안식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주님의 주시는 안식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안식과 쉼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그 거짓 쉼과 안식에 속아 그것을 얻으려고 열심히 좆아 다니지만,
거기에 안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한, 인간은 절대로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성 어거스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부자유하게 되고, 불편하게 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할수록 신령한 기쁨이 생기고, 내 삶은 점점 가벼워지고, 자유스러워지고 평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언어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감정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행동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주의 율례와 법도를 벗어버리고 자유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자유를 잃게 되지만, 말씀의 멍에를 메고 나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자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 당신의 형상을 따라 영적인 피조물로 만드셨고,
또한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영혼과 자유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영도 죽고, 자유의지도 죄에 팔려 버렸다.
그러므로 영도 죽고,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은 죄의 종이고, 죽음의 종이 되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라고 했다. 죄는 우리에게서 소중한 자유를 빼앗아 간다.
그래서 죄의 속박에서 자유를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그 뜨거운 보혈을 흘려 죽으신 것이다.
그 엄청난 대가를 치루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유를 되찾아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까? 나의 자유를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십시요.
말씀과 기도의 멍에를 메십시오. 그러면 참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가까이 할수록 우리에게는 자유가 넘치게 될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속인다. 하나님께로 가면 너는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속이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된다.
여러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참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으니 하나님을 떠나면 오히려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께 메이면 메일수록 우리의 삶에는 참 자유 함이 넘치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내 멍에는 쉽다] 는 주님의 말씀은 [잘 맞는다]는 뜻이다.
나에게 꼭 맞는 멍에는 지기가 쉽고, 짐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소의 어깨에 편안하고 아프지도 않다.
<멍에>란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는 어깨걸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걸쳐 주시는 멍에를 메면 오히려 편안하고 쉽다는 말이다.
<멍에>는 본래 수고와 무거움 그리고 부자유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이다.
(예화) 그 멍에는 마치 새의 날개처럼 마치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 날개를 펼 때 놀라운 자유와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새의 날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우며, 그 멍에는 우리의 삶을 가볍게 하고 자유케 한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속박하는 멍에가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죄 짐을 지고 고생하는 모든 인생들을 향해서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절)
이렇게 우리를 부르시고 초청해 주시는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명들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고 했다.
주의 계명과 말씀이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고 속박하는 멍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멍에를 멜 때 우리 인생은 오히려 가볍고 즐겁게 되고 복되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이 수고롭고 무거운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거운 멍에로 혹은 자유를 빼앗아 가는 멍에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에 쉼을 얻게 될 것이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마음에 안식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한 사람일수록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된다.
(결 론)
주님이 주시는 그 멍에는 결코 무거운 <멍에>가 아니고 쉽고 가볍다고 하셨다.
우리를 얽매고 무겁게 하는 <멍에>가 아니라, 오히려 쉽게 해 주는 <멍에>이다.
주님의 멍에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이다.
신비롭게 이 멍에는 메면 가벼워지고 벗으면 무거워 진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기쁘게 멤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