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역설의 축복 (7) 자유를 버리면 참 자유인이 된다


역설의 축복 (7)
자유를 버리면 참 자유인이 된다. ( 8:29-36)
 
역설이란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데, 사실은 그 <>이라는 것이다.
<얼른 볼 때는 모순 같으나, 사실은 모순이 아닌 진리이다>
(1) 역설의 축복 : [죽으면 산다.] 
(2) 역설의 축복 : [약할 때 강함이라.]
(3) 역설의 축복 : [종이 되면 으뜸이 된다.]
(4) 역설의 축복 : [주면 더 부요하게 된다.]
(5) 역설의 축복 : [낮추면 높아진다]
(6) 역설의 축복 : [애통하면 기뻐진다]

오늘은 [자유를 버리면 참 자유인이 된다] 입니다.
이것도 역설 중의 역설이다.
 
1) 자유의 소중함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속되지 않고, 어떤 일에도 매여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패트릭 헨리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유명한 말을 했다.
그 만큼 인간에게 자유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늘날까지 인류의 싸움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과 질병과 각종 정치적 사회적 물리적 억압에서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자유의 소중함은 일본에게 자유를 빼앗겨 보았던 대한민국 백성들은 더 잘 알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자유의 복음>, 즉 자유를 선물로 주는 복음이다.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어디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는가? (5가지)
, 율법, 죽음, 사탄, 저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속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하고 싶은 만큼 주님께 붙들리고, 자유하고 싶은 만큼 말씀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역설적인 진리이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내 자유를 내려놓고 버릴 때, 참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고 하셨다.
거짓으로부터 자유하려면 진리의 종이 되어야 하고,
어두움으로부터 자유하려면 빛의 종이 되어야 하고,
더러운 행실로부터 자유하려면 거룩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죄를 지을 때 양심의 소리와 성령님의 책망 소리가 들린다.
(예화) 마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금속이 있으면 "!" 소리가 나는 것처럼,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 마음 속에서 "!" 소리가 난다.
양심이 "!" 소리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건 안 돼!”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싸인이다.
성령께서 거듭난 양심을 통해서 들려주는 그 음성에 순종할 때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2) 참 자유의 의미
그래서 참 자유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자유 (自由 : freedom, liberty)의 사전적인 뜻은 (국어사전)에는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란 속박(束縛)이다. 자유란 진리의 종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은 로마시민권자로서 자유인이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베냐민 지파로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다.
학식으로는 그 당시 최고의 스승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박사 같은 분이시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는 당당한 로마시민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꿀릴 것이 없는 당당한 자유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자원해서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되고, 허리를 굽히고, 낮은 자가 되고자 했나요?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3가지는 일평생 우리에게 따라오는 죄악 된 요소이다.
그런데 이런 것에서 어떻게 하면 자유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유를 내려놓고 주님께 사로잡힐 때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3.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
본문 (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했다.
여기서 그 진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그리스도 없을 때는 죄의 종이고, 무능의 종이고 게으름과 탐욕의 종, 방종의 종일뿐이다.

내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는 만큼, 자유로워지고, 자유의 폭이 넓어진다.
그렇습니다. 참 자유란? 진리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만 자유 할 수 있다.
(예화) 아이들에게 : 울타리를 쳐 놓고, 너희들은 이 안에서만 놀아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는 주의 영이 주시는 것이다.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참된 자유가 돈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더 부자유하게 된다
오직 진리만이 자유케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물고기가 자유로운 것은 물 속에 있을 때이다.
새가 자유 할 수 있는 것은 하늘 궁창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존재인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진리 안에 있을 때이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이다. 그 외에는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다.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붙잡혀 살았다.
예수님의 포로가 되었고, 예수님의 종으로 살았다.
사도 바울이 명예도, 지식도, 가문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내려놓았더니 
자유로운 복된 인생을 살았다.
 
여러분!
참으로 자유하고 싶습니까? 나 스스로를 말씀에 붙잡혀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종으로 사시고, 성령님께 붙잡혀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정죄와 마귀 사탄과 우상과 미신, 불안과 공포, 질병, 두려움과 걱정,
가난과 질병... 이런 모든 것은 진리 안에서, 즉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결 론)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자유를 버리면, 참 자유인이 된다는 영적 원리를 깨닫고,
자유케 되기 바랍니다[주여, 주의 손에 붙잡힌 인생이 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합시다. 
그렇습니다. 나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진리이신 예수님께 붙잡힌 인생이 될 때 
참 자유를 누리며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은혜가 이 말씀을 보시는 모든 분들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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