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2일 월요일

고난은 왜 오는가?


고난은 왜 오는가? (고린도후서 1:3-11)
 
이 세상에 누구든지 고난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런 고난을 없애려고 믿는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문제는 간단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혹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혹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채찍으로, 혹은 우리의 어떤 모를 일로든지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고난은 고난 당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180°달라질 것입니다.
(13)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되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고난 당할 때 실망 당하게 되지만,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믿음이 연단되어 정금같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5:3)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 환난은 결국 소망, 천국의 소망을 준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고난을 왜 허락하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섭리를 깨달을 때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은 왜 오는가?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1)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8-9)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은 환난이나 고난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진 고난을 왜 받았는지를 알았습니다.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함이라.
() 예전의 사도바울은 자기를 믿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학문과 유대교의 열심있는 자였음을 자랑하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교만하던 자였다.
 
자기를 믿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 불신앙의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모두,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그 분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심을 고난이 가르쳐 줄 것입니다.
 
환난이 없던 사람은 자기를 믿으나, 고난을 통해서 자신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를 갖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겸손하게 되었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고후 12 :10)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는 놀라운 간증을 할 수 있었.
 
그러므로,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인 것입니다.
(12:5)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고난을 잘 받아들이면 축복이 되는 것이다. 고난도 축복이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더욱 더 하나님은 가까이 와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 당할 때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만나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고 하셨다.  언제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 입니까? 고난 당할 때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입니다.
 
2) 고난을 통하여 순종의 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
(119:71)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나이다. 저희 마음은 둔하여 기름에 잠김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범이 내게는 천천 금은 보다 승하나이다. (119:68-71)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남의 아내를 취했고, 주께 범죄하였더니 그는 고난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되었고,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화) 아버지는 자녀의 행복을 원합니다
어떤 아버지도 자기 자녀의 고통을 바라지 않습니.
그럼에도불구하고 때로는 자녀가 받아야 할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을 느끼면서 자녀에게 
고통의 순간을 주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통의 순간도 먼 훗날에, 이것도 아버지의 그 사랑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 안에 심신의 고통을 내려 주실 때가 있다.
지금은 그 고통의 이유를 다 이해 못한다 할 찌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총일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조용기 목사 간증 직접들은 적이 있다.)
그가 1958년 군 입대(3)하게 되었는데, 설교준비, 심방, 교인간의 갈등으로 고민함.
잘 됐다 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군입대 했다.
그러나, 폐렴으로 시시 각각으로 피를 토하고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결국, 아이고 ! 제가 잘 못했습니다. 또 다시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 때 고난이 옮겨지고 고난 때문에 순종의 도를 배워서 원망, 불평, 탄식이 변해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서 인간의 교만과 이론과 고집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주여 !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하게 되는 것이다.
탕자가 고난을 통해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5:8-9)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예수님은 물론 완전히 순종의 분이었으나, 고난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고난은 야생의 돌을 갖고 정질하는 것과 같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불순종이 벗겨나고, 순금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있는 영광을 위해 참으신 것입니다.
사실, 고난의 겟셋마네가 있었기에 부활의 아침이 주어진 줄 압니다.
(Van Gogh) 말하기를 천국은 아름답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것은 겟셋마네 동산이다고 했.
고통의 순간이야말로 어떤 댓가를 치르고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며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3) 그릇을 크게 하여 더 귀하게 쓰시려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여기서 단련, 연단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없이 좋은 일군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한 사람들은 다 고난이라는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난 없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이해 할 수 없다.
 
본문에 <위로>라는 말이 : 10 이나 나온다.
그래서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쓰시고자 하시는 훈련이요, 연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강하게 훈련시키신다.
그래서 약한 사람은 강하게 하시고, 적은 그릇을 크게 하여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4)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려고 (8:28)
합동하여 하나님께는 영광, 우리에게는 유익이 되게 하시려고, 이런 고난도 주신다는 말이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요셉의 고난을 생각해 봅시다.
요셉은 고난 중에서도 감사했다. 형에게 팔려 간 것도, 남에게 종살이한 것도,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도 .... 다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지금은 다 모를 수 있다. 그러나 Someday 그 어느 날은 알게 될 것입니다.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 깊이, 그 섭리, 그 은혜를 우리는 다 모른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 비밀을 깨달을 때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고난이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고난은 왜 오는가?
고난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1)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라 고난이 온다.
2) 고난은 주의 법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다.
3) 그릇을 크게 하시려고, 그래서 더욱 크게 쓰실려고 단련시키는 것이다.
4) 어떤 고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고난 당할 때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인 줄 알고,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고 신앙의 승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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