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축복 (2)
약할 때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1-10)
역설이란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데, 사실은 그 <역>이라는 것이다.
<얼른 볼 때는 모순 같으나, 사실은 모순이 아닌 진리이다>
지난 시간에는 : 죽으면 산다. (요 12:20-26)에 대하여 말씀 드렸다.
오늘은 [약할 때 강함이라.]는 역설적 진리의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말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약하면 약하지 어떻게 약한데 강하단 말인가?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본문 10절에서 한 고백이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면서 바울은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이런 고백을 한다.
왜 이렇게 고백을 했을까요? 그 이유를 9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 때문에 아퍼하고 연약해 짐으로 하나님을 더 많이 찾게 되고
부르짖다보니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약함을 통해서 크게 임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 어느 것이 더 강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러면 내 능력으로 사역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는 것이 나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고 했습니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 할까요?
가장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이다.
가장 배우지 못하고, 몸에도 질병이 있어서 병약하고, 세상적인 연줄도 없고...
그야말로 가장 외로운 고아와 같은 사람이다.
고아처럼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의지 할 것이 없으니 오직 주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연약하여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약하면 약할수록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은혜 받는 사람은 :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깊이 깨닫는 사람이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다.
더 불쌍한 사람은 :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아야 귀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오직 주님만 깊이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예화) 목회자 세계, 선교사의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무언가 자신은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고, 말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큰일을 이루지 못하며,
도리어 여러 사람들과 좌충우돌 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이 있다할 찌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시는 것이다.
(예화) 영국과 미국에서 전무후무하게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종이 있다.
드와이트 엘. 무디라고 하는 목사님이시다. 이 분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가 쓰는 편지에는 언제나 문법적으로 오류 투성이었다. 그는 외모도 뛰어나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코 냉냉이 소리, 비음이 많이 섞인 매력적이지 못한 음성이었다.
신문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나서 내린 결론을 이렇게 신문 기사에 올렸다.
“나는 무디에게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 하였다. 왜 그가 그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지?”
나중에 무디는 그 글을 읽고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능력 외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고 말했다.
이러한 비밀을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울은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예) 가말리엘 문하, 가문, 율법에 흠이 없는 자.
바울은 열정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서신을 보면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글이 논리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것 의지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의지했는가?
(고전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것이 바울의 바울 됨의 원리이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는 가졌지만, 하나님의 것을 위하여 버렸습니다.
(빌 3:3-9)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이처럼, 사도바울은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봐
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우리는 어차피 전지하지 못하다. 조금 아는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전능하지 못하다. 우리의 능력만 전적으로 의지하면 실패한다.
(예화) 야곱은 얍복강에서 주의 은혜로 변화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강해진 것이 아니다. 약해진 것이다.
환도뼈가 위골되었다. 그 이후 남은 평생을 절뚤발이로 살았습니다.
절뚝거리면서 그는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야곱은 자기의 재주만을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꾀를 쓰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약해짐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 것이다.
(예화)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모세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의 궁에서 40년 동안 배운 학문과 무예와 실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그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알았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는 그는 무능함의 목록들을 나열하였다.
도망자라는 것이다. 말을 못한다. 권위가 없어서 자기 동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 약함에 치우져 하나님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 할 수밖에 없다.
모세의 약함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 것이다.
(예화) 기드온의 300명 용사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삿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미디안 군대 = 135,000명이나 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 군인들을 개울로 데리고 가서 물먹는 것을 통해서 300명만 선택하게 하셨다.
그리고 힘있는 무기로 무장시키지 않았고 부서지기 쉬한 항아리와 횃불을 준비하였다.
인적자원을 제한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 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결 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바울을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귀한 종이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큰 복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가난하게 살았다. 가정도 없다. 가족도 없다. 건강도 없다.
그런데 그는 겸손의 복을 받았다. 그래서 은혜를 풍성하게 지속하는 복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복,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사는 복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복을 받았습니까? 자신의 약함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사용했다.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 은혜가 은혜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그렇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바울을 그렇게 겸손하게 만들어 사용하게 하기 위하여 사탄의 가시 곧 육체의 질병을
그의 몸에 곶아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질병은 오히려 능력이 되었고, 자랑이 되었던 것이다.
그 질병 때문에 오히려 교만할 수 없었고, 겸손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이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나의 약함은 나의 아픔이 아니다. 나의 약함은 나의 고통이 아니다.
나의 약점이 부끄러움도 아니다. 인생의 큰 문제도 아니다.
나의 약함이 오히려 능력이다. 약할 때 강함이라.
본문의 말씀 7절-10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함께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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