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0일 토요일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시편 51:10-12)
 
지금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과 얼마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물리적인 공간의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 말입니다.
 
리학자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과 거리를Personal Space"(개인 공간) 이라고 한다.
이 개인 공간은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범위의 공간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공간을 4가지로 구별한다.
1) 밀접 거리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 마치 연인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그런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1+1= 2 가 아니라, 1이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요. 그것이 믿음이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밀접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신뢰가 있고, 평안도 있다.
나도 그대를 믿고 그대도 나를 완전히 믿어준다는 것을 알 때,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다는 밀접한 관계이다.
 
2) 인 거리이다.
이것은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이다. 내가 마음을 열면 된다.
배우자와 한 평생 같이 살지만,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없다.
사람이 하나인 것 같은데 하나가 아니다. 밀접한 것 같은데 하나가 되지 못한 관계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한 평생을 살을 맞대고 살면서도 못 믿어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리가 있기 때문인데이 거리가 개인 거리라는 것이다.
 
3) 사교 거리이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원하던, 원치 않던,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혹은 사업상으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서로 만납니다.
그것은 함께 만나지만, 결코 신뢰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사교상 필요해서 만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거리이다.
 
4) 공중 거리이다.
이 경우는 선거 운동할 때 입후보자들이 유권자들 앞에서 마이크 대고 떠들며 말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그의 말을 듣지만, 성실히 듣지도 않고, 그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관계를 공중 거리이다.
공간적으로는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은 전혀 멀리 있다.
 
여러분은 이웃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밀접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몇 분이나 있습니까?
내가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으며, 상대방은 나를 얼마나 믿어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신뢰성이란? 마음의 거리가 전혀 없는 믿음의 상태를 말한다.
내가 신뢰성이 있는 사람, 믿음직스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정직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회는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거짓말 잘 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늘 감시원이 따라 다닌다. 누가 나의 감시원인지도 모른다.
부모도 자식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보통 영어로 3 Totality 로 설명한다.
Total Acceptance (전적 수락),
Total Commitment (전적 위탁),
Total Discipline (전적 따름).
전적으로 수락하고 전적으로 맡기고 따를 수 있을 때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줄 압니다. 얼마나 철저히 믿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할 때 오는 댓가가 근심과 걱정이다.
 
내가 나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때 이것을 진실이라고 하고, 정직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때 이것을 신뢰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주니, 고마워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한다.
 
1) 정직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성도가 복 받는 길이다.
십계명에서도 9계명에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직은 하나님의 계명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받는 길이며,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딤후 1:5)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5: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15: 1-2)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반대로 사탄 마귀의 특징거짓과 속임이다.
(8:44)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거짓말은 사탄이 하는 것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에 사용된 것도 거짓 증언이었다.
)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데에 사용한 것도 거짓 증언이었다.
)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데에 동원된 것도 거짓 증언이었다.
이 거짓말, 거짓 증언은 바로 사탄가장 즐겨 사용하는 악랄한 계교 이다.
거짓말처럼 습관화되기 쉽고 중독성 강한 것도 없습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습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하여 또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다.
거짓말은 습관이 되기 쉽다. 거짓말은 한번 습관 되면 양심의 가책 없이 잘하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습관은 상황이 조금만 곤란해지거나, 불리해 지면 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넘어간 것이다.
 
(예화) 거짓말 대회가 있었다. 누가 1등 했을까요?
거미줄에 큰 바위가 걸렸다. 개미가 코끼리를 삼켰다.
두부를 먹다가 이빨이 부러졌다. 등등
1: 나는 한번도 거짓말 한 적이 없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은 거짓말하고 산다는 말이다.
 
(예화) 이탈리아 사람 단테가 쓴 <신곡>은 매우 유명한 명작 중의 명작이다.
단테는 인간의 본성과 죄, 구원의 문제를 그토록 아름다운 음률에 실어 깊이 있게 파헤쳤다
<신곡> 전체는 빛나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어둠의 숲 속에서 단테를 물어 죽이려던 세마리 짐승이 나온다.
그 중에 표범은 탐욕, 사자는 오만, 늑대는 사기의 상징이다.
단테는 이 중에서도 사기, 거짓을 가장 나쁜 것으로 보았다.
 
단테의 지옥은 가장 죄질이 가벼운 사람을 제일 위에, 가장 나쁜 사람을 맨 밑바닥에 놨다.
맨 위에 있는 것은 육체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 자들이고 제일 고통스러운 지옥 밑바닥에
가는 사람들은 사기꾼과 배신자들이다.
단테가 사기꾼을 살인자보다도 밑에 둔 것은 사기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고귀한 지능을 악용(惡用)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사악한 것이란 판단에서 였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철저한 참회의 기도이다.
시편 51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10절이다.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경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800이나 나온다.
다윗도 의인은 아니다. 온전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말할 때마다 표현한 말이 정직한 다윗이다고 말한다.
(왕하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왕상 15:11)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다윗의 특성은 정직이다. 다윗은 본래 정직한 이다. 그런데 그 정직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그가 범죄 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큰 죄를 지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서 신하를 속이고, 군대를 속이고,
나라를 속이고, 역사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죄를 감추었다.
결국, 다윗은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도 감쪽같이 감추었다.
다윗은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그 여자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만사태평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다윗의 왕국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만세반석에 세워진 왕국이다.
그렇게 감쪽같이 간음, 살인을 저지르고 온 백성을 속인 다윗은 여전히 등등하게 살아있는
왕이었다.
런데 죄는 이상한 특질이 있다. 죄는 주인을 찾아간다
그 값을 치를 때까지 찾아간다주인이 죄를 부정해도 죄가 주인을 찾아낸다.
 
이제, 성경은 그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12장에 여호와 보시기에 다윗의 소위가 악하였더라.”
다윗의 행위가 사람도 속이고, 부하도 속이고 백성도 속였지만
자기 양심과 여호와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냈다. 선지자는 다윗의 범죄를 지적하였다.
 
이 순간 다윗은 결정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다.
) 이 선지자, 영감만 죽이면 끝이다. 누가 나에게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 만일, 내가 사실을 인정한다면 나는 왕좌에서 쫓겨날 찌도 모른다.
) 백성들 앞에서 무슨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왕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고,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나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여러분! 
죄를 짓고 나서 정직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에 다윗은 <정직>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정직하기가 어려워서 밧세바의 남편까지 죽인 것이다.
정직과 진실을 지키기가 어렵지만, 이것이 없다면 인격과 신앙에 문제가 생긴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인격이 파괴된다. 기도도 되지 않습니다.
두 점사이의 최 단거리는 직선이듯이, 바른 인격의 최단거리는 정직이다.
일본 말에 명예, 건강, , 재물 보다 더 귀한 것은 정직한 인격이다는 말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예수 믿지는 않지만, 비교적 많이 정직한 것같다고 한다.
 
2) 정직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윗은 이 시간만큼은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 시간에도 정직하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게 됨을 알았다.
그래서 기도한다. 간구한다.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의 창조적 은혜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아니고서는 정직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여기에 창조(=바라)라는 말은 (1: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단어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본래적으로 내 안에는 정한 마음이 없다. 정직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정직>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명 없이 책임지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참회록 속에 자기의 잘못을 누구 때문이라고 탓을 돌리지 않았다.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본래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본래적인 죄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직했을 때 따라오는 후속 결과나 불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정직한 자의 용기이다. 쉬지 않은 용기이다.
이제 정직히 인정하면 <나는 보좌에서 쫓겨 날 것이다.>고 하는 후속 결과를 알고도
정직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용기 있는 사람이 다윗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한 것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나 사울 왕과 다른 점이다.
 
못했지만, 죄를 지었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정직할 때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하셨다.
 
(예화) 한번은 안중근의사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그릇을 깨뜨렸다.
하인들이 와서 우리가 깨뜨렸다고 하세요. 우리가 벌을 받을 께요.”
아니다. 내가 분명히 깨뜨린 것이 확실하니, 정직하게 말하고 내가 벌을 받겠다고 했다.”
그날 밤 아버지에게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깨뜨렸다고 하자고 했잖아요?
그 때 안중근은 말하기를 종아리는 아프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여러분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버지를 속이고 매를 안 맞겠습니까?
매는 맞지만 정직하고 마음 편한 쪽을 택하겠습니까?
그래서 정직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3) 정직하면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직이라는 개념은 구원이라는 개념과 통한다.
다윗이 정직한 영을 회복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 달라는
구절과 함께 나옵니다. 이 정직의 회복이 구원의 회복이다. 회개는 회복의 관문 이다.
그래서 정직은 큰 신앙이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이 없이는 정직할 수 없고, 정직하지 않고서는 회개 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날 심판하기 전에, 내가 나를 심판하는 것이 회개이며, 정직이다.
정직한 회개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여러분 ! 정직하면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정직하면 해방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때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신비로운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가구를 바꿔라.
한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일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정직에 있습니다.
 
(예화) 아브라함 링컨은 정직한 사람이다.
그가 젊었을 때 상점에서 일할 때 손님에게 거스름돈 1센트를 덜 주었다.
그 날 밤에 그는 3마일을 걸어가서 돌려주고 돌아왔다.
1센트에 내 양심을 팔 수 없다고 말했다.
 
(예화) 민족 지도자 도산 안창호선생은 평생 신조가 정직과 성실이다.
그는 우리 조선 민족이 가난해도 정직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면 그것이 애국이다 고했다.
부정직과 비성실이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고 했다.
 
(잠언 307-8)을 보면 아굴이 죽기 전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나온다.
1) 첫째는 :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2) 둘째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이것은 인생을 살아보니, 결국 허탄한 말, 거짓말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정직은 삶의 지혜입니다. 정직은 큰 행복의 길입니다. 정직은 복의 근원입니다.
 
다윗을 정직해서 복 받은 사람이다. 정직은 용기의 근본이다.
정직은 평안의 뿌리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큰 업적이 아니다.
하루 하루를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
 
(결 론)
우리에게는 소원이 많을 것이다. 큰 집, 좋은 차, 돈 버는 것입니까? 다 좋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며 사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결심하고 있습니까?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합시다.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그렇게 살 때 여기에 진정한 평안과 용기와 행복이 있고,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자유로운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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