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7-10)
한국 사람으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을 말한다면 강영우박사를 말하게 될 것이다.
그는 14살 때 친구들과 공을 차다가 축구공이 눈에 맞았는데 그 때 눈이 실명되게 되었다.
1944년생 이니까, 그가 맹인이 되었을 때는 1958년이 된다.
6.25전쟁이 휴전되고, 몇년 지나지 않은 그 시대에는 맹인의 삶은 매우 비참하다.
지금 시대도 맹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같다. 안마사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어린 소년은 하나님을 믿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맹아학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연세 대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와서 갖은 고생 끝에 큰 성공을 이룹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장애인정책차관보>라는 최고위직에 오르게 된다.
물론 결혼도 했고 자녀도 낳아 교육도 잘 시켰습니다.
두 아들 중에 하나는 하버드 의대에, 하나는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는 은혜도 입게 됩니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의 첫아들이, 3살 때 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이런 기도를 드리더라는 것이다. 하나님 ! 나도 눈뜬 아버지를 갖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입니다.
친구들 아버지는 다 눈을 떴는데, 우리 아버지만 맹인입니다. 이 아이가 불만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 저도 눈뜬 아버지를 갖게 해 주세요.
강영우 박사는 이 기도를 듣고 아들을 불러 이야기합니다.
“얘야! 네 아버지는 눈뜬 아버지보다 좋은 점을 더 가지고 있어.
네가 잠잘 때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빠는 불을 끄고도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잖니?”
하면서 이야기합니다.
불 끄고, 점자책을 가지고 동화책을 읽어주니까, 그 때 아들은 마음속에 우리 아버지는
특별한 아버지다. 불을 끄고도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심이 생긴다.
그리고는 열심히 공부해서 그는 하버드대에 들어가게 된다는 간증입니다.
만일 강영우박사님이 실명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실명 사건이 그 당시에는 힘든 일이었지만,
지내놓고 보니➡ 그것이 그에게는 큰 축복이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하기를 :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 인간 존재의 종착지도 행복이다.
★ 행복에는 4가지 종류의 행복이 있다.
1) ( 동물 )적인 행복 :
본능적이 욕구를 충족시킴으로 얻은 행복
(예)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머고, 졸릴 때 잠자고,
갖고 싶은 것 소유할 때 오는 행복이다.
2) ( 인간 )적인 행복 :
더 고상하고 인간적이다. 즉,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행복이다.
아무리 많이 소유했어도 죄책을 느끼면 행복이 아니다.
나는 잘 먹고 잘 살지만, 나 때문에 굶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이 아니다.
내 기억 속에 나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행복이 아니다.
이것이 인간적, 양심적, 도덕적 행복이다.
3) ( 철학 )적인 행복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복이다.
즉, 행복은 깨달음에 있다. 깨달은 만큼 행복하게 된다.
4) ( 영 )적인 행복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행복이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기 까지는 행복할 수 없는 행복. 이것이 진짜 행복이다.
★ 행복에 대한 오해.
1) 좀 더 ( 잘 )살면 행복해 질 것이다는 오해.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행복하게 될 줄로 오해한다.
(예) 우리나라를 보면 40-50년 전 보다 훨씬 잘 산다.
그런데 자살하는 사람은 더 많다.
2) (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고 하는 오해.
그런데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 연예인들이다. 예쁘지요. 인기 있지요. 돈 많지요. 그런데 자살한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는 착각과 오해이다.
3) 나는 최악의 인생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 불행 )한 사람이다는 오해
이것은 오해이고, 착각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찌도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읽고 또 읽을수록 은혜가 되고, 위로도 되고 행복의 비결을 배우게 된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ㄱ) 가정도 없다. ㄴ) 그러니 자녀도 없다. ㄷ) 돈도 별로 없다. ㄹ) 인물도 별로 못생겼다.
ㅁ) 키도 작다. ㅂ) 사도의 직분에 대해서도 인정 못하겠다고 도전도 받는다.
ㅅ)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도 들어가고 매도 맞고 핍박을 받고 동족에게 왕따 당하기도 한다.
ㅇ) 오해도 많이 받는다. 그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도 비난받는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다 없어도 건강 하나 만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강에 대한 소원 세상 욕망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건강 하나 만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의 몸에는 사탄의 사자라고 하는 가시가 있다.
(가시 원어 : 스칼롭스 = 말뚝)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 칼빈 : 영적유혹, 마틴 루터 : 박해.
가톨릭 : 독신생활을 함으로 인한 이성적인 유혹.
그 외에도 안질, 말라리아 병..... 등등.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지지를 받는 설은 <간질병>이라는 설이다.
<간질병> 멀정한 사람이 막 몸을 비틀다가 쓰러지는 병이다. 조금 지나면 다시 일어난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가 <간질병>이라는 증거가 (갈 4:14절)이다.
(갈 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시험하는 것이 바울의 육체에 있었다는 데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눈이 나쁘다고 시험들겠습니까?
설교하다가 간질병이 발작되어서 거품물로 쓰러진다고 상상해 봅시다.
바울은 이 병 낫기를 원해서 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 남들의 병은 고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은 못 고침받고 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8절)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특별 기도를 3번 한 것 같다. (예) 40일 작정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왔는데,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응답이 아니라.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라는 응답이다.
너는 이것 때문에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내가 네게 주는 은혜라는 말이다.
내 은혜가 네게는 충분하다는 말이다. 부족함이 없는 은혜다. 넘치는 넉넉한 은혜다.
★ 하나님의 응답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해석이었다.
병이 나은 것이 아니고, 세상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다만, 뜻과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예) 저주냐? 축복이냐? 시험이냐? 은혜냐? 이 고통은 시험이 아니라, 은혜라는 말이다.
이 질병을 은혜로 해석하고 수용하라는 말씀이다.
(CF)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고,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 이대로 감사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할 수 있나요? <신앙적인 겸손>이 있어야 한다.
(1절) : 바울은 환상과 계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2절) : 14년 전에는 3째 하늘도 경험했다.
(4절) : 낙원에도 이끌려 갔었다.
그러므로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자만하고 교만하면 망하게 되거든요.
(예화) 성공하고 출세하고 ➡ 교만해지면 ➡ 그 다음에는 망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높아질수록 낮아져야 한다. 부요해 질수록 겸손해져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스스로 겸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예화) 혹시 나는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이 들면 -- 교만한 사람이다.
나는 정말 교만한 사람이다고 생각이 들면 -- 겸손한 사람이다.
인간이 겸손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바울>조차도 사탄의 가시가 없이는 겸손할 수가 없는 사람임을 하나님이 아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울로 하여금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 사탄의 가시를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가시 때문에>라고 원망하지 말고, <가시 덕분에>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 바울이 가시 덕분에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1) ( 겸손 )케 되는 은혜를 받았다.
(가시 덕분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종으로 살게 되었다)
2)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 기도 )의 사람이 되었다.
(하루라도 기도생활하지 않으면 지낼 수 없다)
3) 약할 때 강해지는 하나님의 ( 능력 )을 소유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
(고후 12:9 中)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는 축복의 길이었다.
(예화) 겸손한 성자, 성 프란시스, 제자 하나가 환상 중에 천국에 갔다.
큰 보좌 하나가 있었다. 주님! 이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성 프란시스의 것이다.
환상에서 깨어난 제자가 시험적으로 묻는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가장 교만한 사람이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아니 몰라서 그래. 내 속에 교만이 있고, 악이 많이 있다.
만일 나에게 베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었더라면 그 사람들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일세.... 라고 대답했답니다.
문제는 나 혼자 스스로 겸손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바울을 사랑하셔서 (교만하다 망하지 말라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고, 그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끝까지 겸손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시 덕분에 겸손하게 되었고 하나님만을 더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는 고백도 나오게 된 것이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가시가 문제가 아니라, 가시에 대한 해석이 문제이다.
가시도 은혜로 해석되어지고, 수용할 수만 있다면 가시는 오히려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로운 세상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내가 겸손한 만큼, 겸손의 수준만큼 행복해 지는 것이다.
겸손 없이는 그 누구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신앙적인 겸손이 있을 때 ➡ 주어진 모든 것이 내게 주신 은혜인 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하여 ➡ 이 사건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 때,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은혜의 성도가 될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기 도)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 때,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은혜의 성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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