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일 수요일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마가복음 2:5-12, 고후 13:13)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고백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오순절 강림 이후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다는 신앙고백이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일신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삼신론을 주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세 분 하나님이시며, 구별되는 동시에 유일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3분인 동시에 한 분이며, 한 분이 동시에 3분이라니? 어려운 말이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이다.
삼위일체교리가 주장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doctrine) 역사 가운데 삼위일체론으로 인한 이단들이 나오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을 신비라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삼위일체론을 끝까지 다 설명하는 사람은 결국 이단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나숫자가 아니고 세 위격이 함께 연합해서 가지는 <공동체성>을 의미한다.
일체세 위격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내재해 있는 <연합>을 의미하며,
삼위의 의지와 구속 사업이 서로 상반되지 않고 통일을 이루는공동체를 뜻한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두 가지 중의 하나는 <종속설>이고, 또 하나는 <양태론>이다.
() 종속설 :아리아니즘이라고 한다.
성자와 성령은 성부보다 못한 종속된 상태에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설이다.
이 설은 삼위의 동등성을 부인함으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단설이다.
 
() 양태론 : 사벨리아니즘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한분인데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라는 이론이다.  즉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은 하나이지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여 기독교의 유일신성을 유지하려는 주장이다.

(예화) 가면 : 양태론
, 하나님이란 본질이 성부라는 가면을 쓰면 성부가 되고, 성자라는 가을 쓰면 성자가 되고,
성령이라는 가면을 쓰면 성령이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론을 인간의 이성이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서 억지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시도로 양태론을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물의 3가지 형태 - , 수증기, 얼음.
() 태양 본체, 태양빛, 태양열 = 셋이 하나이다는 예를 든다.
사람의 생각, , 행동 = 셋이 하나이다.
학교에서는 교수, 가정에서는 남편, 자녀들에게는 아버지 = 셋이 하나이다.
이러한 형태로 삼위일체를 유추하고 설명하지만 삼위일체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양태론 유추론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1)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론이 :
하나님의 구성 요소에 관한 사변(思辨)적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셋이 하나가 되며, 하나가 셋이 되느냐의 질문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삼위일체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역사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삼위일체론을 파생시킨 질문은 : 하나님에 관한 즉, 신론에 관한 질문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에 관한 질문 , <그리스도론>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이시었는가? 아니면 인간이었는?
이 질문에 대하여 신앙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을 경험하고, 성령님을 경험하고 부터이다. 예수님을 경험한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살아계실 때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행하셨다.
() 오병이어의 기적,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한 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각종 질병, 나병환자, 중풍병자, 앉은뱅이, 귀머거리...등을 고쳐 주시고 귀신도 쫓아주셨다.
이런 일들은 --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래서 그는 죄 사함 받은 증거로 고침을 받고 일어나서 나갔던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실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경험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마는 부활의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과연 예수님은 누구신가? 사도 요한도 증거했다.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는 말씀이 곧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셨다.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사람도 있었다.
325<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이 결정된 아리우스아다나시우스의 논쟁이다.
이단자 <아리우스>라는 사람의 주장은 예수님이 뛰어난 분이는 했지만, 하나님은 아니고
피조물이고 일종의 반신(semi-god) 본 것이다.
그의 반론은 : 하나님은 전능한 절대자인데, 어떻게 인간의 몸을 입으며,
또 어떻게 하나님이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느냐? 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우스를 비롯한 이단자들은 성부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고 본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면 :
우리는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골치를 썩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냐? 아니냐?>라는 물음은 --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일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불충분한 것이 된다.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은 그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자신의 허물과 죄를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죄와 허물이 있는 존재가 어떻게 다른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희생을 치를 수 
있으며그 희생이 어떻게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라는 반문이 제기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우리에게 효과적인 사역이 된 것이다.


(2)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에 대한 ( 개념 )의 혁명을 가져왔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개념에 혁명을 가져온다.
, 기독교 신앙은 삼위일체론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뒤집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삼위일체를 반대했던 아리우스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 하나님이란 존재는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이고, 따라서 저 높은 하늘에 계신 분이며,
그는 변하지 않는 분이며, 그는 고통을 당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반하여 <삼위일체론>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친히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신 분이시. 하나님은 <성령님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친히 오셔서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령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면 나를 대신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영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경험하였다. 제자들은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던 외국어 방언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으며,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다.
완전히 바꾸어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에 따르면 -- 참 하나님의 모습은 :
) 막연한 절대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분,
) 오늘도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 내 안 내주(內住)하시면서 진리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시일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위일체론에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구체적인 활동 안에 
찾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려내는 하나님의 모습은 유한한 인간과 대조되는 특성을 가진 신 이미지이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나의 개인적인 보호자와 같은 분이 되며,
우리 종족과 민족의 수호신이 된다. (무당이나 이방신들은 다 그렇다.)
 
 
이에 반하여 삼위일체론은 :
예수님과 성령님의 구체적 활동들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하나님은 저 먼 구만리장천에서 초연하게 팔짱끼고 구경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기 위하여 친히 우리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분이시다는 것이.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개혁성경)
 
(3)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주는 성경구절 (고후 13:13, 28:19)
(고후 13:13)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경구절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목사님들이 매주일 예배시간마다 하는 축도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약간의 말들이 첨가되기도 하였지만 그 뼈대는 오늘 13절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이다.
이 축도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성부 하나님이 나오고 그리고 성령님이 나온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님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
성령님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그 믿는 자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 쳐 주셨다. 그리고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 하시고 축복하여주신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삼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 론)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나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단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교리를 안 믿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삼위 일체되심을 보여주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믿고 신앙 고백한다. (사도신경)
 
삼위일체 신앙 고백은 신론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예수님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시었는가? 아니면 인간이었는?
이 질문은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하여 신앙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질문도 성령을 체험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결론은 성령도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이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성령님은 강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를 시작하셨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또한 세상과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각양 은사를 주시는 성령은 분명히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 성령님의 교통하심
가운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세분이 한분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의 선포 내용이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바르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성령님과의 교통하심 가운데 늘 승리하는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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