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확증 (롬 8:31-39 롬 5:8)
사랑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깨닫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건강할 때에도 사랑하고 있지만, 고난 중에 울고 있었던 그 때에도 나를 사랑하고 계셨고,
내가 인생의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예화) 한상일씨의 웨딩드레스 노래 가사 :
우리가 울었던 지난 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 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비바람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눈보라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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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고통도...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 때 그것을 깨달았으면 좋았을텐데 그 때는 몰랐다.
이제야 철이 났다. 이제 철이 들어 생각하니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문제는 그 사랑을 사랑으로 알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사랑을 사랑으로 깨달아질 때
감사가 나오고, 어떤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사랑을 알고, 사랑에 감격하고,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감동받고,
사랑에 응답할 때 비로소 사랑이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없다.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모르고 있을 뿐이다.
계시의 말씀은 읽어야 깨닫게 되지만, 섭리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전에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예) 병들었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그 속에 있다.
그 병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되고 구원 받았거든요.
사업에 실패했나요?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이고, 섭리, 손길이었던 사랑이다.
그 실패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진실한 신자가 되었거든요.
이렇게 사랑은 깨달아야 사랑이다. 모르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을 알 때 감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고 싶어 하신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아달라는 말이다.
(사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였고 사랑하고 계신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셨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확실한 증거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받고 있는 시련 속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우리가 알기를
바라고 있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 은혜가 은혜 됨을 깨닫기 원하신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모든 것 (사건,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은사로 주신 것이다.
은사는 선물이다. 선물의 의미는 깨닫기까지 선물의 의미를 모른다.
의미를 아는 자만이 선물은 소중한 것이다. 사랑을 알기까지 효력이 없다.
모든 것은 계시적 사건이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형편 속에 사랑의 계시가 있다.
문제는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지 못하면 사랑을 깨달을 수 없다.
건강할 때는 아픈 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보니
아픈 자의 마음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여기 병석에 있어보니,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사건은 나를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비우게 하기 위해서,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깨달아야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을 받았어도 깨닫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어야 비로소 <은사>이고 <선물>이다.
또한, 사랑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느끼고 깨닫고, 사랑하면서 배운다.
(예) 너도 나중에 자식 키워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거다.
자기도 자식을 사랑하면서 받은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일생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사랑을 일생동안 받았어도 모르니까 불행하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화)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은사로 주셨다고 깨달았다.
바울은 말씀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감옥에서 찬미하는 가운데 옥문이 열리는
기적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는 은사의 개념이 :
육체의 가시, 사탄의 가시까지도 하나님의 은사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놀라운 신앙이다.
치명적인 간질병, 때때로 쓰러지는 부끄러움까지고 은사라고 고백하고 있다.
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7)
그러니까,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내가 약할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셔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나의 질병도 은사라는 말이다.
또한, 로마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은사라고 한다.
왜? 시위대 고관직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으니,
이것도 은혜이고 사랑이고 은사라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 책이다.
그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 주셨다.
특별히 로마서 8장에는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과 은사가 계속 나타난다.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없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은 그 앞 (35절)에 나오는 여러 가지 시련들이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떻게 이기는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승리는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복이 승리가 아니라,
승리는 용서가 승리이고 사랑이 승리다.
용서하는 자, 사랑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눅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것이 승리이다. 참된 승리이다.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다.
(요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시다.
본문에 또한 귀한 말씀이 있다.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화) 우리는 우리가 잘 해서 뭔가 된 줄로 착각한다.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 론)
(예화) 스덱 (책, End beyond/끝을 넘어서...) 이런 말이 있다.
불행은 축복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라.
행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고,
역경은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적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항상 감사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은혜를 은혜 되게 하고, 사랑을 사랑으로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고난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고, 더 큰 복을 얻게하는 과정이다.
우연은 없다.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주어지는 은사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 속에서 이제와 조용히 생각해 보니,
사랑 아닌 것이 없고,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이 사랑에 감격하고, 그 은혜, 그 섭리를 믿고 바르게 응답 할 때
여기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 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중보기도 해 주심으로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확실한 승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고,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사는 데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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