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2일 월요일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예화) 이것은 실화이다.
여기 아주 믿음이 좋았던 충성스런 교회의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두 딸의 아버지였다.
그 딸들을 너무 사랑하고 키우느라고 바뻐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렛슨이다. 운동회, 점차 딸 때문에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이 성도를 사랑하사 사랑의 채찍을 보내셨던 같다.
(한국일보 미주판 1986년 10월 17일 기사)
같은 해 8월 20일 뉴욕의 반수희양을 포함한 16명을 태운 한인교회 밴트럭이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 선상에서 전복돼 반수희양을 포함한 2명이 사망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글은 반수희양의 아버지 반상순 씨의 글이다.
저는 이 시간 이 글을 그냥 읽어 드림으로 그 분의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목 :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창공을 높이 날던 한 마리의 새, 피곤한 날개를 쉴 곳은,
봉오리 피기 전에 떨어져야 하는 봉오리의 아픔을 알 곳은, 예수님 품이어라.
마음의 기쁨을 수놓던 그 손길을 그치고,
내 혈관에 피를 공급하던 심장의 박동을 멈춘 그 뜻을 알 곳은 주님의 품이어라.
사슴같이 뛰던 그 뜀을 멈추고, 그 입에 음악을 그쳐,
나의 시를 앗아가 버린 슬픔의 의미를 주님 무릎에서 물어보렵니다.
어깨를 폭 감싸던 그 손, 아직 나는 그 손길이 필요한데,
순간 순간 나를 웃겨주던 그 웃음이, 아직 나는 그 웃음이 필요한데,
“이젠 내가 업어 줄꺼야” 하며 업어주던, 그 따스한 등어리가
아직 내게 필요한데, 주님 앞에 물어보렵니다.
에녹과 함께 3백년간 동행하시다가 결국 데려가신 주님께서,
수희와는 14년 동안 동행하시다가 너무 예뻐 데려가셨나요?
한 마리의 새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신 주님께서,
아직도, 아직도 파란 새를 떨어지게 한 것은 주님 너무 사랑하여 질투하신 것인가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지금 이것은 꿈이어야 되는데, 정녕 꿈이어야 되는데,
이 꿈을 속히 깨야되는데 이게 현실이요,
수희와의 14년간이 한바탕 꿈이었다니 정말 아름다워라, 정말 아름다워라.
예수님, 수희가 빠져나간 이 마음의 구멍을 무엇으로 메워야 됩니까?
주님 제발 오셔서 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옵소서, 채워주옵소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으리라 했으니 믿고
수희를 부르면 깨어 날 텐데 수희야! 수희야!
빚어놓은 그 입술을 보고, 퉁퉁 부어오른 그 얼굴을 보고,
그 찬 손과 같은 어깨를 만져보고, 이제 절망 중에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당신의 독생자를 죽도록 버려두신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천사를 보내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천사를 보냈으면 하나님은 결코 저를 이해 못하셨을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시지요.
수희가 죽어 슬퍼하는 이 슬픔을 주님께서는 정말 아시지요.
제가 하나님의 슬픔에 참여한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
이 땅에는 얼마나 부모를 잃고,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에 떠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저로 하여금 그들의 친구가 되게 한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부모를 잃은 슬픔이 저들이 슬픔이 아니요, 내 슬픔입니다.
이제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이 저들이 슬픔이 아니요, 내 슬픔입니다.
같은 슬픔을 통하여 저들을 어떻게 위로할 지를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그러나 오늘 수희가 남겨놓고 간 아름다운 추억을 인하여 통곡하옵니다.
수희가 보고 싶어 통곡하옵니다.
활짝 웃어, 마음에 기쁨을 수 놓던 그 웃음이 보고 싶어 통곡하옵니다.
수희야, 이제 누가 아빠의 옷을 골라 줄꺼니?
검정 옷을 그리도 싫어하더니 오늘 내가 네 앞에 검정 옷을 입고 서 있단다.
이 옷이 이리도 싫은데 이게 왠 일이니?
화사한 넥타이와 와이사스를 골라주던 그 손이 눈에 선하여
눈물로 눈을 가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구나.
수희야 네 동생의 머리는 누가 빗겨준단 말이야,
아무리 바뻐도 동생 머리 손질해 주고 가던 네 손길이 눈에 선하여
이렇게 너를 잊을 수가 없단다.
바이올린을 하느라고 턱에 상처가 나고, 손 끝이 부르트던 그 기억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나는 이렇게 운단다.
수희야 얼마나 아펐니? 얼마나 엄마 아빠를 불렀니?
너 외롭게 숨질 때에 이 아빠는 어디 있었니?
내가 네 상처를 싸매고 내 피를 나누어 줬으면 너는 아마 살았을 거야,
그 때 나는 무엇을 했니? 피를 줬어야 돼, 피를 줬어야 돼.
네가 파리만 보고 무서워해도 뛰어가 잡아주던 아빠가,
나를 피 눈물로 부를 때 나는 무엇을 했었니?
나는 네게 피를 줬어야 돼, 내 피를 말이야.
수희야, 그러나 나는 알아,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너는 아빠, 엄마, 혜은이를 위해서 기도했지?
내가 그 기도 응답하고 말거야,

그러나 이 방법 말고는 정녕 나를 주님께로 인도할 다른 방법이 없었나요?

예수님, 만일 이 자리에 예수님을 모르고, 또 거절하는 사람이 있사오면 이 방법 말고,
또 다른 방법으로 저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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