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축복 (1)
죽으면 산다. (요 12:20-26, 마태 10:39)
역설이란 말은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모순되는 것 같으나 그 속에 일종의 진리를
품고 있는 말이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데, 사실은 그 <역> 이라는 것이다.
<얼른 볼 때는 모순 같으나, 사실은 모순이 아닌 진리이다>
* 역설의 축복 : 오늘은 첫번째 시간으로 [죽으면 산다.]
<죽으면 산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증명하고 있다.
역설의 진리 가운데 오늘의 말씀 죽으면 산다는 이 진리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
(예화) L.A. 7-11 스토어(소매점)에서 일하는 한 불체자 남자가 있었다.
가족은 한국에 있다. 아침에 일어났으나 그 날도 정말, 정말 살기 싫었다.
할 수 없이 출근하여 상자 나르면서 일했다. 주인이 잠깐 Casher(계산대)를 보라고 했다.
그런데 강도가 들어왔다. 그래 죽여라 죽여... 그랬더니 살았다.
죽고자 하니 살았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 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의 역설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다.
그랬더니 그는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설 가운데서도 역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는 역설의 진리가 담겨져 있다.
이 역설의 십자가, 역설의 진리가 기독교 신앙의 진수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도 이 십자가의 삶을 따라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십자가의 진리를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역설의 축복과 부활의 영광이
주어질 줄 믿습니다.
역설의 축복은 =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모순이 되지만, 성경의 진리이니까>
이성적이 판단을 내려놓고 따르는 자들만이 경험하게 되는 진리이며 축복이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유월절이면 유대인들은 각 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유월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이방인 헬라인들도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특별한 사명을 갖고 온 사람들이다. 두 가지 설이 있다.
헬라 본국에서 예수님을 초청해서 한 자리를 드리고자 하여 사신으로 보냄을 받고 왔다는
설이 있고, 또 한 가지 설은 철학과 지혜의 헬라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존경하며 찾아다니던 중에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서 왔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 뵐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비교적 헬라어에 능통 할 뿐만 아니라, 헬라식 이름을 가진 빌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에게 가서 그들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하였다.
빌립은 그들의 요청을 받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말해서 협조를 구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함께 예수님 앞에 가서 그 헬라인들의 뜻을 전하였다.
이 때 두 제자의 말을 전해들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주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거절하신 것 같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고 하셨다.
<이 영광을 얻을 때>란 말은 예수님이 드디어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메시아로 추대 되거나 임금으로 영광의 자리를 얻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그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영광이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는 말씀이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것은 골고다의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십자가였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헬라 사람들을 따라 가서 그 나라에 가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존경과 스승의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한 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 그 길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헬라 나라에 가서 편안함과 안주의 삶을 살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그 길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막강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정복해서
옛날 다윗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리라고 믿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새 나라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였다.
그 나라는 사랑하는 독생성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만 성취되는 나라였다.
사람들의 눈에 십자가는 죽음이고, 치욕이고, 수치와 고통과 형벌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들의 입가에는 비웃음과 조롱의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소수의 여인들만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연민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역설의 진리를 분면히 알고 계셨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이다.
여기에 한 알의 밀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한 알의 밀알이 차가운 땅에 던져지고 그것이 흙으로 덮혀지고 썩지만, 얼마 후에 새 싹이 돋고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3일 만에 마침내 부활하시어 살아나셨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 이 길을 가야 살 수 있다.
참 생명을 다시 얻고자 한다면 옛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주님처럼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눅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밀알 하나가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내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 봄이 오면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얼어붙었던 대지가 서서히 녹으면서
새 생명의 싹들이 돋아난다. 봄은 생명을 일깨우는 계절입니다.
새 싹이 돋고 생명이 솟아나는 것을 보면 먼저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생명이 솟아난다.
(예화) 눅 18장에 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9절)은 죄인이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세리에게는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이 여기 있다.
내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깨닫고 죄를 고백할 때 용서와 살길이 있다.
만일 당신이 아직도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라면 당신은 구원을 얻지 못 할 것이지만, 나는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즉시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롬 3:28,엡 2:8-9)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살고 싶습니까? 죽으십시오. 옛 사람을 죽이세요.
정말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영생하고 싶습니까? 육신의 정욕과 욕망을 죽이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역설의 진리를 믿고 순종하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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