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한 은혜 (히 12:5-13)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고난과 고통이 없이 살아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예수 잘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사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평안한 가운데 행복하게 살 줄로 믿고 예수 믿는 것도 있다.
그러나 고난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불청객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고난의 대명사인 “욥”은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이 다 불타 없어지고, 자식들은 집이 무너져 다 죽고 말았다.
그가 특별히 죄가 많아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사탄의 질투 대상이 되어서 고난을 당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다가 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 했을 때에 :
그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라고 우리에게 채찍질하시고 징계하시는 경우가 많다.
ㄱ)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쫒아 내셨다.
ㄴ) 인간들의 죄악이 심해서 노아시대 사람들을 다 멸하셨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셨다.
ㄷ)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함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다.
ㄹ) 솔로몬 왕은 처음같이 순종 잘하면 좋았을 것을 이방 신을 섬김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왕이 되었던가?
그러니까 하나님께 순종 잘하고 그의 뜻대로 살면 고난 없이 살 사람이
괜스레 고집부리다가 매 맞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이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복입니까?
ㄱ) 돈 많이 벌면 복 받은 것인가? 돈 때문에 망한 사람 많다.
ㄴ) 건강이 복인가?
물론 몸이 아퍼 골골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건강해서 죄 짓고 망한 사람도 많다.
ㄷ) 자식이 복인가? 아들에게 총 맞어 죽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무엇이 진정한 복인가?
성경은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자기에게 가까이 오게 하기위하여
채찍질도 하고, 꾸지람도 하시는 것이다.
만일 병 때문에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게 되었다면
그 병은 나에게 은혜요 축복이다.
만일 사업이 망해서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 하나님이 원하는 백성으로 변화되었다면
그 사업의 실패는 나에게 복이요 축복이다.
여러분! 잘 기억해 두세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만일 자식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자식은 복이 아니다.
만일 재물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그 재물은 복이 아니라 화요 저주이다.
오늘 본문은 이와같은 경우를 말씀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참 아들이 있고, 사생아]가 있다고 말한다.
참아들에게는 꾸지람도 하고, 징계도 하고, 채찍질도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다.
그러나 사생아는 채찍도, 꾸지람도 없다. 버린 자식은 때리지 않는다.
본문에는 아들이라는 말이 6번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아들을 그 사랑하는 자라고 했다.(6절)
그리고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불순종할 때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가르치며
교훈 할 때를 4가지 단계로 말했다.
1) 첫째 단계 :
자기의 사랑하는 참 아들에게 권면한다고 했다.(5절)
권면은 : 알아듣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을 사랑으로 권면하신다. 말씀으로 훈계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이러한 권면 속에는 사랑이 들어있다.
이것을 잔소리로 듣는 아이들이 있다. (Big Mouth)
2) 둘째는 꾸지람이다 :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5하)
꾸지람 (엘렌코)은: 이것은 권면보다 좀 더 강도가 깊은 것이다.
강도를 높혀서 높이 소리 지른다.
(예) 가정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고운말로 안되니까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이다.
3) 셋째는 징계이다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했다.(6절)
징계(파이데이아)는 : 훈련을 말한다. Education, Training, Discipline 이다.
(예) 좋은 군인, 강한 군사를 만들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과 같다.
적당히 훈련받으면 허약한 군사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한 영적 군사로 만들기 위하여 파이데이아(훈련) 하시는 것이다.
4) 마지막 단계로 채찍질하신다 했다.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했다.(6절)
채찍질은 몸에 피가 날 수도 있고,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몸과 마음에 고통과 아픔의 시련 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심판도 저주도 아니다. 때리시는 부모의 마음도 아픈 것이다.
그러나 채찍질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이다. 이 속에 부모의 사랑과 의지가 있다.
이것을 깨닫는 자녀가 참된 자녀가 될 수 있다.
(11절)무릇 징계가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고 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마귀의 자녀가 있다.
하나님이 마귀의 자녀, 사생아에게는 채찍질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요,
그 받으시는 아들이기 때문에 채찍질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전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 마귀의 자녀였다. 우리는 사생아였다.
그러나 이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그런데 진노의 자녀일 때의 습성과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이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고쳐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잘 고치지 못하니까 하나님은 먼저 권면하신다. ➜ 곱게 권면해도 안 고치면 그 다음 단계로 꾸지람하시고, ➜ 그래도 안 고치면 그 다음로 징계하시고, ➜
그래도 고집부리면 마침내 채찍질해서라도 고쳐주신다.
마지막 단계까지 오면 인생이 아프고 고달퍼 진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강한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여러분 잘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양보(讓步)나 포기가 없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지옥에 가도록 방치하여 놓치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강권적인 은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에 들어와 살도록 역사하신다.
이것을 볼 때 이 고난도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다.
신학자 칼빈은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말했다.
도망가면 또 잡아놓습니다.
그러나 사생아는 징계가 없다고 했다. 참 아들은 징계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릇 행하여도 징계도, 채찍도 없다면 버린 자식이다.
그릇 행할 때 아무 일도 없다면 사생아이이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 참 아들이기 때문에 나에게 필요해서 주신 고난으로 알아야 한다.
(예화) 이것은 실화입니다.
여기 아주 믿음이 좋았던 충성스런 교회의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두 딸의 아버지였다.
그 딸들을 너무 사랑하고 키우느라고 바뻐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렛슨이다. 운동회, 점차 딸 때문에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이 성도를 사랑하사 사랑의 채찍을 보내셨던 같다.
(한국일보 미주판 1986년 10월 17일 기사)
같은 해 8월 20일 뉴욕의 반수희양을 포함한 16명을 태운 한인교회 밴트럭이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 선상에서 전복돼 반수희양을 포함한 2명이 사망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글은 반수희양의 아버지 반상순 씨의 글이다.
저는 이 시간 이 글을 그냥 읽어 드림으로 그 분의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목 :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창공을 높이 날던 한 마리의 새, 피곤한 날개를 쉴 곳은,
봉오리 피기 전에 떨어져야 하는 봉오리의 아픔을 알 곳은, 예수님 품이어라.
마음의 기쁨을 수놓던 그 손길을 그치고,
내 혈관에 피를 공급하던 심장의 박동을 멈춘 그 뜻을 알 곳은 주님의 품이어라.
사슴같이 뛰던 그 뜀을 멈추고, 그 입에 음악을 그쳐,
나의 시를 앗아가 버린 슬픔의 의미를 주님 무릎에서 물어보렵니다.
어깨를 폭 감싸던 그 손, 아직 나는 그 손길이 필요한데,
순간 순간 나를 웃겨주던 그 웃음이, 아직 나는 그 웃음이 필요한데,
“이젠 내가 업어 줄꺼야” 하며 업어주던, 그 따스한 등어리가
아직 내게 필요한데, 주님 앞에 물어보렵니다.
에녹과 함께 3백년간 동행하시다가 결국 데려가신 주님께서,
수희와는 14년 동안 동행하시다가 너무 예뻐 데려가셨나요?
한 마리의 새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신 주님께서,
아직도, 아직도 파란 새를 떨어지게 한 것은 주님 너무 사랑하여 질투하신 것인가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물어보렵니다.
지금 이것은 꿈이어야 되는데, 정녕 꿈이어야 되는데,
이 꿈을 속히 깨야되는데 이게 현실이요,
수희와의 14년간이 한바탕 꿈이었다니 정말 아름다워라, 정말 아름다워라.
예수님, 수희가 빠져나간 이 마음의 구멍을 무엇으로 메워야 됩니까?
주님 제발 오셔서 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옵소서, 채워주옵소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으리라 했으니 믿고
수희를 부르면 깨어 날 텐데 수희야! 수희야!
빚어놓은 그 입술을 보고, 퉁퉁 부어오른 그 얼굴을 보고,
그 찬 손과 같은 어깨를 만져보고
이제 절망 중에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당신의 독생자를 죽도록 버려두신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천사를 보내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천사를 보냈으면 하나님은 결코 저를 이해 못하셨을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시지요.
수희가 죽어 슬퍼하는 이 슬픔을 주님께서는 정말 아시지요.
제가 하나님의 슬픔에 참여한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
이 땅에는 얼마나 부모를 잃고,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에 떠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저로 하여금 그들의 친구가 되게 한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부모를 잃은 슬픔이 저들이 슬픔이 아니요, 내 슬픔입니다.
이제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이 저들이 슬픔이 아니요, 내 슬픔입니다.
같은 슬픔을 통하여 저들을 어떻게 위로할 지를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그러나 오늘 수희가 남겨놓고 간 아름다운 추억을 인하여 통곡하옵니다.
수희가 보고 싶어 통곡하옵니다.
활짝 웃어, 마음에 기쁨을 수 놓던 그 웃음이 보고 싶어 통곡하옵니다.
수희야, 이제 누가 아빠의 옷을 골라 줄꺼니?
검정 옷을 그리도 싫어하더니 오늘 내가 네 앞에 검정 옷을 입고 서 있단다.
이 옷이 이리도 싫은데 이게 왠 일이니?
화사한 넥타이와 와이사스를 골라주던 그 손이 눈에 선하여
눈물로 눈을 가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구나.
수희야 네 동생의 머리는 누가 빗겨준단 말이야,
아무리 바뻐도 동생 머리 손질해 주고 가던 네 손길이 눈에 선하여
이렇게 너를 잊을 수가 없단다.
바이올린을 하느라고 턱에 상처가 나고, 손 끝이 부르트던 그 기억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나는 이렇게 운단다.
수희야 얼마나 아펐니? 얼마나 엄마 아빠를 불렀니?
너 외롭게 숨질 때에 이 아빠는 어디 있었니?
내가 네 상처를 싸매고 내 피를 나누어 줬으면 너는 아마 살았을 거야,
그 때 나는 무엇을 했니? 피를 줬어야 돼, 피를 줬어야 돼.
네가 파리만 보고 무서워해도 뛰어가 잡아주던 아빠가,
나를 피 눈물로 부를 때 나는 무엇을 했었니?
나는 네게 피를 줬어야 돼, 내 피를 말이야.
수희야, 그러나 나는 알아,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너는 아빠, 엄마, 혜은이를 위해서 기도했지?
내가 그 기도 응답하고 말거야,
수희야, 그러나 이 방법 말고는 정녕 나를 주님께로 인도할 다른 방법이 없었니? 수희야.
예수님, 만일 이 자리에 예수님을 모르고, 또 거절하는 사람이 있사오면 이 방법 말고,
또 다른 방법으로 저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고난은 저주인가? 아니다 그로 인하여 내가 겸손해 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그 고난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은혜요 복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가까이 오라고 주님은 고난을 주신다.
반상순 집사님은 사랑하는 딸 수희를 잃어버림으로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한 신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정금같은 신자로 태어났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는 고난을 통해 주시는 은혜는 더 큰 은혜로 임한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어둔하게 매 맞고 눈물 흘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권면하실 때 눈치 채고 돌아 섭시다.
강도를 높여서 꾸지람이나 징계의 손을 펴시기 전에 주님 앞으로 돌아옵시다.
채찍에 맞으면 누가 안 아프겠습니까?
채찍에 맞지 않고 돌아서는 자가 지혜자가 아닐까요?
누가 하나님을 대적 할 수 있겠으며?
누가 하나님의 의지를 꺽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시고 작정하신 성도에 대하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고, 인간이 항거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은혜가 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고난을 통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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