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3일 화요일

밤이지만 낮에와 같이



밤이지만 낮에와 같이. (로마서 13:11-14)

오늘 본문은 유명한 성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을 변화시킨 말씀이다.
어거스틴은 성인이요. 북아프리카 히포(Hippo)주교였다.
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이교도(異敎徒)이었고
어머니 모니카(Monica)믿음이 좋고,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기도로 어거스틴이 변화되었다고 기독교 역사가들은 말한다.)

그는 카르타고 대학에서 수사학을 공부하다가 방탕한 삶을 15년 동안이나 살았다.
마니교에 9년 동안이나 따라다니기도 하여 어머니로 하여금 눈물의 기도를 드리게 했다.
 
387년 그가 33세가 되던 해 방탕과 술 취함의 생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불량한 청년 어거스틴밀란의 정원에서 마음의 평온을 위해 열망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 소리가 들렸다. 들어서 읽어라.(toll lege, toll lege)"
그것은 마치 천사들이 자기 귀에 쟁쟁히 들려주는 멧세지처럼 들려졌다.
그래서 친구 알리피우스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가 성경을 펴보았는데,
그 성경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로마서 1311-14이었다.
말씀을 읽는 순간 변화가 찾아 왔다. 말씀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회심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방탕한 청년 어거스틴() 어거스틴이 되게 한 말씀이다.
이것이 어거스틴의 역사관이 되었고, 그의 철학이 되었고, 삶의 지표가 되었다.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주여! 내 영혼이 당신의 품안에 안식할 때까지 내 영은 안식할 수 없나이다."
 
1) 기독교의 시기, 시간, , 역사(歷史)에 대한 이해
오늘 본문에는 시기, ... 등의 말이 나온다.
시기는 헬라어로 <카이로스>라는 단어이다.
 
<시간> 이라는 말에 헬라어로는 3가지 있다. (마치 사랑이라는 말이 4가지 있듯이)
아이온 (ion) : (영원한) 시간, 매우 긴 시간.
크로노스 (Kronos) : (흘러) 가는 시간. 대우주적 시간. 신약성경 88번 나옴.
    연대기를 영어로 (Chronicle)이라고 한다.
이로스 (kairos) : (특정)한 시간. 결정적인 시간. 정한 시간. 기회로 주어지는 시간,
    의미있는 시간. 종말론적으로 찬 때'를 가리킨다.

아이온 속에 크로노스가 있고, 크리노스 속에 카이로스가 있다.
그런데 카이로스인간의 카이로스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순수 역사 (독일어 Historie : 히스토리에)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일을 모은 것.
) 의미 역사 (독일어 Geschichte : 게쉬크테) 그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역사관 이다.
() 개인의 역사를 모아 놓으면 : 자서전이나 전기집이 되고 (출생부터, 행적..등등)
개인의 신앙적 체험을 모아 놓은 것은 간증집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바로 인식하여
보다 가까워진 '세상의 종말 및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각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기록 역사 (History) '히스토리에'가 아니다.
흘러가 버린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역사는 '게쉬크테' 로서 역사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역사의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의해서 발생된 것들이다.
,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 가운데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역사나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을 단순한 History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의 귀한 인생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시간 속으로 묻히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에 담긴 깊은 뜻을 풀어내야 한다.
내 인생의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History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밝히 드러내는 '게쉬크테' (의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여기 있다.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먼 과거의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을 지금, 여기서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맞이할 수 있고,
2,000년 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면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과 승리와 행복을 자기 삶과 시간 속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이다.
 
뿐만아니라, 먼 미래의 주어질 사건인 <천국의 복>지금, 여기
이 땅에서도 영광을 누리며 하늘나라의 소망가운데 산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관은 종말적이며, 그 종말에 소망을 둔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윤회설이 아니고, 직선적이다. 돌고 도는 세상이 아니다.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으며, 알파(α)와 오메가(ω)가 있다.
즉 창조의 날이 있고, 인류의 종말이 있다.
역사의 시작이 있고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도 태어난 날이 있고 죽는 날이 있다.
기독교의 역사관 창조, 섭리, 구원 그리고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2) 구원 중심의 역사관.
11에서 <우리의 구원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구원을 위한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다. 구원의 문제이다.
 
주님은 마태 24장에는 말세에 있을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은 :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그제서 이 오리라.
우리 성도들은 구원론 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는 구원론적 역사의식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이다.
 
본문에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한다
)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우주적 종말)
) 개인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   (개인의 종말)
 
그렇습니다. (크로노스)시간은 흘러간다. 역사는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개인적인 시간도 흘러가고, 늙어간다.
그러므로 육신의 장막을 벗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예화) 어떤 의사의 명언 :
나이가 그만큼 되었으면 아프면 아픈가 보다. 쑤시면 쑤시나 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병과 같이 살고, 병을 달래면서 산다고 한다.
병을 친구처럼 같이 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라도 80노인을 20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병 치유는 80% 치유하면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100%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병과 함께 살고 병과 함께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끝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너희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
<종말 = 구원>이다. 나의 종말의 날이 곧 구원의 날, 영생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인 구원의 시간은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시간이기도 하다.
<종말의 시간은 구원이냐? 심판이냐? 로 갈리게 된다.>
 
3) 현재는 깜깜한 밤이다. 밤이 깊어간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깊은 밤을 보면서 가까이 오는 구원을 보라는 것이다.
깊어져 가는 밤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구원의 아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밤이 깊어간다는 말은 곧 새벽이 온다는 말이다.
새벽이 온다는 말은 주님 만날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다.
 
역사학 교수 : 찰스 A 베어드
일평생 연구한 <역사 공부의 결론 4가지> 로 정리했다.
) 하나님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멸하시고자 하면, 벼락을 맞아 죽게 하지 않는다.
교만하게 만든다. 쉬운 말로 성공하게 만든다. 교만하게 만든 다음, 망하게 한다.
 
)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더라.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천천히 돌지만, 그러나 세밀하게 정교하게 돌면서 심판한다.
한 사건 속에서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
한 사건이 의인에게는 구원의 사건이요, 악인에게는 심판이 된다.
 
)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다.
벌이 꽃에서 꿀을 도둑질한다. 그러나 도둑질이 아니다. 도둑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벌이 꽃을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꽃술을 옮겨 준다.
선과 악이 함께 섞여서 오묘하게 높은 차원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 밤이 깊어지면 새벽 별이 보인다.
처음에 날이 점점 어두워질 때는 별빛이 안 보인다.
그러나 더 깊어지면 소망의 별, 새벽별이 보인다고 찰스 A 베어드 교수는 말했다.
 
4) 아직 밤이지만 낮에와 같이
지금은 깊은 밤이다.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어느 면에서 보든지 인류의 밤은 깊어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깊은 타락과 방종 속에 있다. 점점 더 어두움으로 빠져 가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오는 아침을 의식하며 산다.
어두운 밤은 밤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밤은 새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어두움은 빛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어두운 가운데서도 빛을 의식해야 한다.
현재는 아직 밤이지만, 아침을 의식해야 한다.
아직 밤이지만 곧 가까이 오는 아침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낮에와 같이 단정히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예화) 깜깜한 새벽에 밖에 나가기 위해서 옷을 단장하고, 화장도 곱게 하는 사람을 본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직 밤이지만, 한 시간 후면 환해지니까, 날이 밝아지면 부끄러워진다.
그러므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여러분!
지금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곧 보여질 때가 온다.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고 주님이 아신다.
그리고 밝은 아침 햇살 아래서 우리의 모습이 밝히 보여 질 때가 있다.
(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지금은 어둡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진행되고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 거듭 다짐하고 결단해야 할 것이다.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결 론)
이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간다. 죄악의 강도가 더 깊어지고 더 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밝은 아침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
그러므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며, 빛의 갑옷을 입자.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어두운 중에서도 밝게 살고, 아침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는 성도의 삶이고, 여기에 재림의 소망이 있고, 오늘의 삶도 바르고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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