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예정과 자유의지의 조화(調和) / 롬 9:28-33, 엡 1:4-5, 왕상 18:21, 요 1:11-12, 행 13:48, 갈 5:13

예정자유의지조화(調和)

(롬 9:28-33, 엡 1:4-5, 왕상 18:21, 요 1:11-12, 행 13:48, 갈 5:13)

하나님주권적인 예정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주제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인생관(人生觀) [view of life] 라고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세계관(世界觀) [world view] 라고 한다.

인생관이나 세계관에는 3가지가 있다.

1) 운명론(運命論) fatalism

이미 모든 것이 결정(決定) 되어져 있다고 보는 인생관, 세계관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보며, 숙명론, 결정론이라고도 한다.

마치 영화가 촬영한 돌아가듯이 정해진대로 간다고 보는 인생관이다.

2) 우연론(偶然論) casualism

모든 것은 우연이고, 우발적(偶發的)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노력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요행을 바란다.

3) 주권론(主權論) sovereignism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그가 섭리하고 통치하는 가운데 일어난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결국 인생관, 세계관은 이 3가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의 주제] 예정자유의지의 문제는

신앙인이라면, 한번 쯤은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 인간의 구원하나님예정인가?

아니면,자유의지예수님믿음으로 구원받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만일 하나님구원예정해 놓은 사람이라면, 그가 를 짓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결국에는 구원받을 것이고, 만일 하나님이 예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기계론적 예정론이 되는 잘못이다.

하나님예정을 그런 식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정론[인격적 예정론]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인격적인 존재이시고, 인간인격적 존재이다.

예정된 자는 어떻게 살든지 결국에는 구원받을 것이고,

예정되지 못한 사람은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운명론과 같다.

그러나, 성경적인 예정론 [기계론적 예정론]이 아니고, [인격적인 예정론]이다.

모든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함께 어우러져서 하나님의 이 성취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 자유의지조화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를 성경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롬 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이루사 필(畢)하시고 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고, 끝내신다는 말씀이다.

★ 성경예정(豫定)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분명하게 있다.

(엡 1:4-5)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주시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豫定)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니까, 기독교강요를 쓴 요한 칼빈예정론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이미 나와 있다.

(롬 8:29) 하나님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定)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리 아신 자]란? = 예지(豫知)이고,

[미리 하셨다]는 말은 = 예정(豫定)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주권예지, 예정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고, 예정하신 일이 아니면, 성사(成事)될 수 없다.

공중 나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마 10:29)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강조하는 말이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되며

여호와께서 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虛事)로다

이 말씀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롬 9:28-33)유대인이방인이 나온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의(義)구원받으려고 했고,

이방인은 하나님도 모른 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율법을 지킴으로 를 이루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의를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義).(30절)

(31-32절)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한가지 예를 들어 본다.

(왕상 18장)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도합 850:1)로

갈멜산에서 영적 전쟁을 한다. 그 영적 전쟁은 제단에 송아지를 올려놓고,

하늘에서 응답받아 보자고 했다. 엘리야의 하나님참 신인가? 바알인가?

로 응답하는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 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의지행사하지 못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주저했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던 예(例)이다.

(렘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이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요 1:11-12)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 안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님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과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다.

예수님영접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영접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들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예정 아래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내 편에서는 원함, 믿음의 결정,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내 마음으로부터의 예수님을 믿기로 하는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은 결정이다.

신앙은 예수 믿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성경 한 구절 안에 예정자유의지가 다 들어 있는 구절이 있다.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작정된 자예정을 말하고, 믿더라는 말은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된 자는 예수를 믿는 쪽으로 결정하고, 선택하게 된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보아서, 나는 예정된 자인 것이다.

이렇게 성경 안에는 예정자유의지에 관한 말씀이 있다.

(다음의 말씀도 보자)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예정된 자이고,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이 말은 자유의지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예정자유의지조화를 이룬다,

분명히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서 예수님께 나오는 자가 있고, 끝까지 거부하는 자가 있다.

(사 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말이다.

(예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다.

큰 연못 안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며 움직인다.

연못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보고, 그 안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을

자유의지로 보자. 문제는 물고기가 연못에서 으로 나오면 자유를 잃고 죽게 된다.

이와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을 떠나 살면 자유를 잃고 죄의 종으로 비참하게 살다가 죽는다.

물고기가 연못 안에서 생명자유를 누리듯이,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생명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화)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본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어느 멋진 집을 지나가는데 이런 글귀가 문간에 써 있다.

누구든지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초대합니다.

문구를 본 사람들 가운데는 2종류가 있다.

그 집 안으로 들어와 보는 사람들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이런 말이 써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연못 예화집 예화예정자유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지성(知性)으로는 하나님예정을 이해할 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 내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사후(事後)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보면, 분명하게 하나님의 예정선택 속에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믿기 전(前)에는 내가 예정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저 사람도 예정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힘써 복음을 전하고, 전도해야 한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면 :

예정은 하나님의 신비한 주권적 영역이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다음에는 아∼! 내가 예정되어 있는 자임을 깨닫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의지예수님께로 향해서 그를 믿으라고 요청하는 구절이 많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벧전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또한, 자유의지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에서도 적용된다.

에 매여 살던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총의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어디에, 무엇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가?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주님의 십자가 은혜사단으로부터 참 자유가 주어졌다.

자유를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결 론)

하나님의 예정자유의지의 문제는 어려운 주제이다.

어떻게 예정자유의지가 조화를 이루는가?

성경에는 이 두 가지를 다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주권예정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자유은혜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게 주신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영혼 구원하는데, 사용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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