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물리치라.
(벧전 5:7, 빌 4:6, 마 6:34, 약 4:7, 히 4:16)
티벳 나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염려해서 염려가 없어진다면 염려가 없겠네.”
그렇습니다.
염려해서 없어질 염려는 없다는 말이다.
염려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염려는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몸과 마음에 피해를 준다.
성경은 염려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한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眷顧) 즉, 돌보심이니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는 실체(實體)이고, 힘이다. 염려는 공상이 아니다.
염려로 인하여 마음의 평강을 빼앗긴다.
염려가 기력과 힘을 무력화시킨다.
수동적으로 염려에 끌려 살지 말고, 맞서서 물리쳐야 한다.
성경은 염려를 인격화시켜서 그 배후에 사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려를 지나치게 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까지 한다.
이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그것을 알고, 염려 마귀를 맞서 대적(對敵)하며 물리쳐야 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미움과 분노도 일종의 힘이다.
그 사람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령이 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염려가 힘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긍휼, 사랑은 더 강력한 힘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와야 한다.
(히 4:16)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염려와 싸워 이길 힘을 얻기 위하여 주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에 힘씀으로 은혜와 긍휼의 힘을 받아야 한다.
(결 론)
염려, 걱정, 근심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믿음이 적은 것]을 책망하셨다.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고, 믿음이 적어서 문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막 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모든 염려를 다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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