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호 6:1-3, 요 13:10, 사 44:22, 히 10:17-18, 렘 29:11, 골 1:27, 롬 15:13)
지나간 한 해를 뒤돌아보면, 감사한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시 103:1)
그러나, 한편으로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죄와 허물을 청산(淸算)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필요한 것이 회개이다.
(눅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 종교개혁가들의 표어 가운데 하나는 :
[회개는 매일하는 것이다]고 했다.
★ 회심과 회개는 같은 것이 아니다.
회심(悔心)이란?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우리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회심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했던 것처럼,
회심(悔心)은 일생에 한번있는 단회적 사건이다. (Once for All)
그러나, 회개(悔改)는 매일 매일하는 것이다. (요일 1:9)
우리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손과 발을 씻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세족식을 하실 때 하신 말씀이 있다.
(요 13:10)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목욕]은 회심하여 거듭난 것이고, 구원받은 사람이다.
[손과 발을 씻는 것]은 날마다 자백하며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를 도말(塗抹)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정말 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다 씻어 주셨을까?
그렇게 의심되고 불안하다.
그렇다면, 다음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히 10:17-18)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赦)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시어 단번에 영원한 속죄(히 9:12)를
이루셨기 때문에, 또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회개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의 삶이다.
(호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이 지구상에 사는 인생들을 코로나 팬대믹으로 치시고, 찢으셨다.
코로나 팬대믹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찢고, 관계를 찢고, 건강도 찢고, 사업도 치셨다.
그러나 이틀 후에 살리시고, 삼일 후에 살려 주신다고 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후에,
제 3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서 살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회개가 사는 길이고, 회개한 만큼 소망을 갖게 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一定)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그의 나오심이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는 말은 [확실하다]는 말이다.
고난의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은 반드시 밝아 온다.
(시 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臺詞)이다.)
영어 대사를 참 잘 의역(意譯)한 것 같다.
그렇습니다.
내일의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내일 또다시 떠오는 태양을 기대하고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하셨다.
우리가 박물관에 가서 예술품의 명작이나 명화를 본다.
그러나 아는 것이 없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미술 지식이 없는 사람은 [피카소]의 명화가 왜 명화인지를 모른다.
그렇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을 더 많이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는 만큼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소망이고 평안이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소망은 배의 닻과 같다.
소망이 없으면 방황하다가 몰락하고 만다.
문제는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시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사라질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견고케 하고, 책임져 주시는 복된 인생이 된다.
(결 론)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소망의 하나님을 앙망하며 신뢰함으로 소망이
넘치는 신년(新年)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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