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일 토요일

★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 (1)

        기독교 역사관 (2)

기독교 역사관특징 (1)

지난 시간 서론에 이어서 :

[기독교 역사관특징]4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중에서 첫 번째 특징만을 말씀드린다.

1) 첫째로 기독교역사성을 강조한다.

기독교역사적인 종교이다. 이것이 대전제(大前提)이다.

기독교역사관은 한 마디로 말하면 :

인간 역사발전 과정인간하나님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이다.

즉, 시간영원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계시하시고

행동하심으로 발생한 일들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이다.

기독교 역사관기독교 신앙없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떻게 초월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온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의 역사관이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이론으로 본다.

기독교가 가르치고 있는 모든 구원의 사건들이 천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인류가 살아온 시간공간의 이 지상(地上)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것을 강조하고 첫째 전제이다.

헬라 철학에서는 현상계예지계분리시키고, 이원화(二元化)시킨다.

현상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은 의미가 없다.

영원한 의미, 예지계(睿智界)초자연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만 의미가 있고,

이 세상의 역사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희랍의 종교들은 시간영원분리하고, 현상계예지계분리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관시간영원역사 선상에서 만나는 것으로 본다.

영원역사 속에 침투 해 들어오고, 하나님이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심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만나신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두철미 역사적인 하나님이시다.

저 다른 세계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역사 선상에 들어오셨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철두철미 역사적인 종교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몇 가지 를 들어본다.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하실 때 어떻게 이루셨는가?

구속의 경륜을 이루려고 하실 때, 보잘 것 없는 유대 민족을 택하셨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민족을 택하셨다.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그들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유대 민족, 히브리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시며,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을 가지고 성취하려고 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나, 천상(天上)에서 어떤 일을 하시지 않으셨다.

아들유대 땅에 보내셨다.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름이 나오는가? 역사적으로 그 때를 말하기 때문이다.

디베리우스 황제라는 말이 나오는가? 역사적으로 그 때를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이 역사 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갈 4:4)고 했다.

[때가 차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실 때,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성취하셨다.

그런데, 초대 교회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육체적인 것은 다 이고, 하다. 영적인 것, 천상의 것만이 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이 육체적인 세상에서 이 교회라는 제도를 통해서는

만날 수 없고, 초역사적인 그 하늘의 세계에 들어가는 입신을 통해서 만난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 세상에서와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예수님도 참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인 것 뿐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정말 죽으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죽으신 것처럼 보인 것 뿐이다.

이것이 초대교회 노스틱주의자,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반역사적인 종교관이고,

구원관이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자들을 대항해서 싸운 기독교 교부가 있었다.

최초로 기독교의 역사성을 강조했던 교부이다. 이레니우스 교부이다.

이레니우스 교부영지주의를 반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찾아오셔서

인간 구원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 땅 위에서 이루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을 향해서 반문했다. (이단 논박 4권 33장 4절)

하나님이 인간 구원경륜땅 위에서 이루셨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을

강조했다. 이레니우스가 기독교의 역사성을 강조한 최초의 교부이다.

또한, 성 어거스틴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반역사적 구원관반대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적으로 실현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초대 교회 때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ㄱ) 하나님 나라는 그저 마음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ㄴ) 하나님 나라내세에서만 이루어진다.

ㄷ) 하나님 나라는 초월적인 어떤 신비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진다. (영지주의자)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 어거스틴하나님 나라역사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세(現世)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의 도성 13권 16장)에서 기독교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역사 신학자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도 역시 기독교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The Christ and time] 라는 이 있다. 그리스도시간에 대한 책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역사성반대했다.

불트만부활 사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초역사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와같은 불투만이나 칼 바르트 같은 사람들의 주장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오스카 쿨만기독교의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불트만을 가리켜 현세의 영지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시간 속에서의 발전 과정을

하나의 틀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불트만비역사적 실존주의적 역사관비판한다.

시간이라는 것, 역사라는 것은 그저 그림의 틀에 불과하다. 별 가치가 없다고 하는

불트만비역사적인 실존주의오스카 쿨만은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The Christ and time] (32페이지)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건을 과거, 현재, 미래

포함하는 시간 역사 분리해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독일의 신학자 파헨 보르그란 사람도 기독교의 역사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기독교역사적 종교가 아니고, 불트만칼 바르트가 주장한대로

기독교가 초역사적인 그런 종교라면 기독교는 미신이 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는 철두철미 역사적인 종교이다고 그는 주장했다.

모든 신학적 질문들과 해답역사 안에서 이해할 때 그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이 말은 모든 신학적 문제나 성경적 사건이 그 시대마다 역사시간 안에서 이해

할 때 그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불트만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배격하고,

또한, 기독교 신앙내용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잘못된 신학적 주장을 대항해서

기독교의 역사성을 변호하고 지켜 나가야 한다.

기독교 역사관특징 : 첫째로 역사성 강조한다.

다음 시간에는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2)를 공부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