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라.
(롬 9:11-18, 렘 10:23, 엡 1:5, 딤후 1:9, 삼상 2:6-7, 롬 11:36)
(롬 9:15)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롬 9:18)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이 두 말씀 안에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적 섭리 아래서 살아가는가?
아니면, 내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서 살고 있는가?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다 말씀하고 있다.
(렘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그렇습니다.
걷는 것은 내가 걷지만, 그 걸음을 지도하는 분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성경에 [예정]이라는 말이 있는가? 있다.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에 [예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구원받도록 예정되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행위가 의롭고, 성품이 착해서 예정된 것도 아니고,
행위가 불의(不義)해서 예정에서 빠진 것도 아니다.
[예정]이라는 말은 행동(行動) 이전(前)의 말이다.
구원이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나의 행위에 따라서 구원을 얻었다가 놓치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 예정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
(롬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9장에 에서와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1절)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심이라.
(13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다고 했다.
출생 전(前)이니까, 행동이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예정되어서, 그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前)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 구원받은 것,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다.
예정대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다.
내가 김(金)씨로 태어난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다.
내가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출생, 성장, 결혼, 거주지 등등 그리고 예수 믿게 된 것.
이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우리는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출생되었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찌니라) (마 19:6)
어디에서 살고, 어떤 사업하고, 예수 믿어 교회 나오고 신앙생활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욥 23:13-14)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더 낫겠다고 말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의 예정 안에 내가 있음을 알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 내 인생도 맡기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
다니엘 4장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 이야기가 나온다.
천하를 호령하던 막강한 바벨론 왕국의 왕이었다.
그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이렇게 말한다. (29절 이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것은 (단 4:26) 때문이다.
(단 4:26)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느브갓네살 왕도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구나,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깨닫게 되었을 때,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 4:35)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만국을 다스리시고, 우리는 그의 통치 아래 살고 있다.
인생의 생사화복(生事禍福)이 하나님 손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을 계획하고 인생을 설계(設計)할 찌라도,
실행(實行)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를 묻고, 답을 기다려야 한다.
내 뜻과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그냥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도, 사업체도, 건강도, 가정도, 교회도 지켜주시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롬 9:16)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칼빈주의 사상,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되다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결 론)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렇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신다.
내 인생의 길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했다.(렘 10:23)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로 여쭙고, 응답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고, 마음의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된다.
주권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평강 가운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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