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1) (부제 : 가장 중요한 것)
(눅 16:19-31, 요일 2:15-17, 히 12:1, 롬 10:3, 딛 3:5, 마 5:29)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며 산다.
“삼천포로 빠졌다.” 는 말이 있다.
삼천포에 사는 사람은 이 속담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광주에서 순천을 지나 진주에서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진주에서 삼천포로 가는 길이 더 넓어서, 넋 놓고 가다가
그만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이다. 착각한 것이다.
지금은 도로와 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없다고 하지만,
옛날에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프로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데, 다양한 구질을 던진다.
직구, 슬라이더, 너클 등등 타자를 속이는 공을 던진다.
타자가 직구 공인 줄 알고, 방망이 뱃트를 휘둘렀는데, 공이 밑으로
빠지는 공을 휘둘러서 헛 스윙을 하면, 스트라이크가 되고,
공이 볼인 줄 알았는데, 가운데로 들어오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이번에 착각해서 실수했지만, 그 다음에 잘 치면 홈런도 칠 수 있다.
야구 경기처럼, 어떤 착각은 다시 해 볼 수 있지만,
어떤 착각은 영원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착각이 있다.
[착각] 중에서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이 구원 받은 줄 알았는데,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경우이다.
지옥에 떨어진 다음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죽은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았어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떨어지면, 가장 불쌍한 인생이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믿는 신자인가? 불신자인가?
지옥에 떨어졌으니, 불신자 아닌가?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신앙 생활을 한 신자(信者)처럼 보인다.
(고급 신자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신자임에 틀림없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교인이다)
★ 어떻게 이 부자가 신자(信者)인 줄 아는가? (증거)
1) 13-14절에서 :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13절) 말씀을 했더니, (14절)에 바리새인들이 비웃다.
그래서 말씀하신 또 하나의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본문의 부자는 문맥상 바리새인이다.
2) 부자가 기도하고 있다.
3)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 라고 부렀다. (24절, 30절)
그러니까,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생각했고, 구원받은 줄 알았을 것이다.
4) 나사로에게 긍휼을 베풀었다. (20-21절)
여러분 집 문 앞에 문둥병 걸린 거지가 날마다 앉아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경찰을 불러서 쫓아낼 것이다.
그런데, 이 부자는 쫓아내지 않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었다.
5) 자색옷을 입었다. (19절)
그 당시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종교 지도자들이나 입을 수 있는 옷이다.
6) 모세와 선지자를 익히 알고 있다. (29절)
그는 이렇게 신자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분명히 교인이다.)
그러나, 죽었는데,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지옥에 갔다. 착각한 것이다.
수 많은 이단들은 자기 마음대로 믿고,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고 있다.
★ 그러면, 왜 이 부자는 지옥에 갔나?
1)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 (19절)
신앙생활 하면서도 옳지 못한 세상 재미 못 끊었다.
춤바람, 디스코, 도박, 술잔치... 등등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어 얽매인다.
그런가하면, 죄는 아니지만, 무거운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일하는 것이 죄가 아니지만, 너무 일에 빠져 있으면
주일도 못 지키게 된다. T.V. 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너무 많이
테레비를 보고 연속극에 빠지면, 기도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스포츠,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죄는 아니지만, 조절 못하고, 절제 못하면 신앙의 경주에 무거운 것이 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자기 의(義)를 내 세웠다.
왜 하필 나사로를 보내 물 한방울이라도 찍어 보내 달라고 했을까?
그래도 나는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를 도왔다는 것이다.
자기의 의(義)를 내세우는 것이다.
(눅 16:15)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옳다 인정해 주셔야지, 스스로 옳다하는 것이 문제다.
(롬 10:3) 하나님의 의(義)를 모르고 자기 의(義)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를 힘입어 구원받는 것이지,
자신의 의(義)나, 선행을 내세워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느니라.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부자가 지옥 간)
3) 더 결정적인 것은 회개하지 않았다. (30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회개]이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할 수 없다.
4) 너무 늦게 깨달았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 부자는 지옥가서 깨닫고, 후회하고 있다.
그는 지옥가서 기도하고, 지옥가서 전도하고 있다.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했다.
(공부, 전도, 봉사, 구제, 기도...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다.)
특별히 효도(孝道)도 때가 있다.
십계명 가운데, 다른 계명은 언제든지 다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제 5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때가 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기회가 없다. 효도하고 싶어도 못 한다.
★ 고대 시조 가운데, 정철의 효(孝)에 대한 시조가 있다.
어버이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 하여라.
돌아가신 후엔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이고 진 저 늙은이 짐을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거든 짐을 조차 지실까?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재 아니라도 품은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조상에게 [제사] 안 드린다고, 기독교를 불효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기독교처럼 [효]를 강조하는 종교도 없다.
효도는 부모 살아계실 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여기 부자는 너무 늦게 깨닫고, 회개의 기회도, 전도의 기회도
다 놓치고, 지옥가서 그제서 애닯퍼하고 있다.
5) 이 부자의 신앙은 [기적 중심]의 신앙이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면 내 형제들이 믿을 것입니다고 고집한다.
아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 (구약 성경)
아닙니다.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고집 부린다.
이 사람은 말씀보다 이적 신앙을 고집하고 있다.
이 못된 부자는 지옥까지 가서도, 제 고집 못 버리고 있다.
(요한복음 11장) 마르다,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렸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모의했다. (요 11:47)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이야기이다.
신학자 벵겔은 말하기를 :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이지, (롬 10:17)
죽은 자가 돌아오는 유령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 현대인의 문제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불확신이 문제이다.
내세관이 불투명하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문제가 바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희미한데 있다.
ㄱ) 말씀보다는 기적을 추구하고,
ㄴ) 내세보다는 현세를 더 강조하고,
ㄷ) 회개보다는 꿈과 소망을 주장하고,
ㄹ) 하나님의 의(義)보다는 자기의 의(義)를 내세우는 것이 문제이다.
꿈을 가지라. 할 수 있다는 설교는 많이 흘러나온다.
그런 설교도 좋고, 필요하다.
그러나 회개에 대한 설교가 줄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교회마다 숫자 놀이에 매여 있다.
오늘날의 교회가 회개 없이 축복과 꿈만 강조하는데 문제 있다.
철저한 회개가 없이는 축복도 없다.
참 애통이 있은 후에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 5:4)
지옥의 두려움을 바로 알 때, 회개가 나오는 줄 압니다.
★ 그러면, 지옥이 어떤 곳인가?
① 뜨거운 불이 있는 곳이다.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이라고 했다. (계 20:10)
② 물 한 방울의 자비도 없는 곳이다.
나사로를 보내어 물 한 방울 요청했으나, 거절되었다.
③ 영원한 고통이 있는 곳이다. 끝없는 고통이 연속된다.
이것이 정말 무섭다. 1억 년이 지나 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
④ 다시 나올 수도 없다.
⑤ 다시 죽을 수도 없다.
(마 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 말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지옥만큼은 오지 말라는 말이다.
지옥 간 사람은 여기만은 절대로 오지 말라고 말할 것이고,
천국 간 사람은 꼭 오라, 너무 좋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지옥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몸과 마음이 가장 괴로웠던 그 고통을
1억배 증폭시킨, 그 고통이 영원히 계속 되는 곳이 지옥이다.
천국은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그 기쁨과 행복을 1억배 증폭시켜서,
그 기쁨과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 천국이다.
♬ (새 245장 / 구 228장)
1.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이 세상 추운 일기가 화창한 봄 날 되도다.
2. 이곳과 저곳 멀쟎다 주 예수 건너 오셔서
내 손을 잡고 가는 것 내 평생 소원이로다
[후렴]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 산 위에서 보오니 먼 바다 건너 있는 집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
★ 인생의 5가지 [엄숙한 사실]이 있다.
① 인생은 모두 다 죽는다는 사실이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거지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다.
죽음 앞에 피할 용사 없고, 죽음 앞에 도망갈 장사 없다.
죽으면 끝인가? 아니다.
② 죽은 다음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③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④ 문제는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지금 (Here and Now)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 해야 한다.
3살짜리 아들이 아빠에게 질문한다.
“아빠, 내일이 뭐야?”
“응 내일은 오늘, 코 자고, 일어나면 그게 내일이야.”
아기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말한다.
“아빠, 아빠, 오늘이 내일이야?”
“아니,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오늘 코 자고, 일어나면 그게 내일이야.”
그래서 또 아기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묻는다.
“아빠, 아빠, 오늘이 내일이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이 아니라, 항상 오늘을 사는 것이다.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결 론)
사람들은 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와 착각(錯覺) 속에서 살고 있다.
지옥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가 있고, 자기의 의(義)를 내세우면서,
나야말로 지옥에는 가지 않을 줄로 착각하고, 참 회개가 없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내세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문제는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착각]은 자유이지만, 착각의 차이는 천당과 지옥 만큼이나 큰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그런 착각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왜 성경에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을까요?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 (마지막으로 예화 하나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인도에 3명의 학자가 있었다.
한명은 철학자, 두번째는 천문학자, 세번째는 심리학, 생물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3명의 학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뒷짐 짓고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나, 건너가야 했다.
“사공, 우리를 배에 태워 강 건너편으로 가게 해 줄 수 있겠소?”
뱃사공이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꼈다.
“날씨가 안 좋은데요? 괜찮겠습니까?”
“좋소, 그냥 태워주시오.”
그래서 3명의 학자들을 태우고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조금 가고 있는데, 첫 번째 학자가 묻는다.
“사공! 철학에 대해서 아시오?”
“아, 네, 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와서 잘 몰라요.”
“허허, 인생 반을 헛 살았군.”
또, 조금 있다가 다른 학자가, “사공! 천문학에 대해서 아시오?”
“아, 글세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요.”
“허허, 인생을 헛 살았군.”
또 조금 지나서, 마지막으로 다른 학자가 묻는다.
“사공! 심리학, 생물학에 대해서 아시요?”
“아, 글쎄 저는 잘 모른다니까요?” 사공이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그 때, 갑자기 먹구름에서 비가 내리며 강에 바람이 불어서 배가 뒤집혔다.
전부 강물에 빠진 것이다.
학자들은 수영할 줄 몰라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파도가 너무 심해서 사공이 학자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그 때, 사공이 학자들에게 묻는다.
“박사님들, 수영학 아시오?”
“몰라요. 꼬로륵...” 하고 다 빠져 죽게 되었다.
그 때, 사공이 하는 말 : “인생을 다 잃어버린 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귀, 명예, 권세, 지식을 다 가졌어도,
예수님 한 분, 놓치면 인생을 다 잃은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주(主)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신앙 생활 잘 하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저 좋은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 (새 489장/ 구 541장)
1.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2. 주가 내게 부탁하신 모든 역사 마친 후
예비하신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할렐루야 부를 때
나도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여 부르리
4.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일을 힘쓰고
썩을 장막 떠날 때에 주의 얼굴 뵈오리
[후렴]
빛난 하늘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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