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떤 랍비가 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다.
가도 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할 수 없이 산 아래 중턱에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다 묶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을 알려 주는 알람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랍비가 천막 속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잔대가
넘어지고 그만 불이 꺼졌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어놓고 기도를 하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맹수들이 와서 나귀와 닭을 죽여 버렸다.
찢어진 천막을 챙겨서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바로 동네 가까이에서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갔더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 났다.
어제 밤에 강도 떼가 이곳을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그야말로 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
만일,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 내어 울었더라면
강도가 여기까지 올라와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것이다 고 생각했다.
랍비는 이 세 가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잃어버린 것보다는 가장 중요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드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때로는 역경과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내게 주시는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나간 일년 동안에도 지켜 주시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다.
이 말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종교] 라는 말이 된다.
본문 (15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 가 되라 고 하셨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과 나는 "감사 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마음의 태도는 그 사람의 운명과 행복을 결정한다.
전자의 사람은 항상 마음이 행복하다.
후자의 사람은 항상 원망과 불평이 있으니 불행한 인생을 산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큰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면 그 날이 행복하다.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 (시 103:2)고 하였다.
감사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하여 넘친다.
감사가 있는 곳에 참 믿음이 있다.
감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본문을 통해서 감사절에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 보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의 ( 평강 )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감사보다 먼저 앞서야 할 것이 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 저절로 감사할 수 있다.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린 사람은 감사할 수 없다.
여러분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평강이 나를 주장하도록 두 손 들고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의 평강이 임하고 자연스럽게 감사가 나오게 될 것이다.
평강은 믿는 사람들의 표식이요. 특징이다.
정근모 장로님은 과학기술처 장관, 원자력 박사, 23세 MIT 박사가 되었다.
그는 천재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보다는 진실한 크리스챤이 되고 싶다]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말한다.
나는 돈도 가져보았고 명예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행복이 없다고 했다.
예수 믿고 보니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고백했다.
평강이 없으면 감사가 되지 못한다.
왜 평강이 없는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주장하도록 손들고 항복하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세요.
그러면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2) 너희는 감사하는 자(者)가 되라.(15절 하)
감사하라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者)가 되라.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다.
너 자체가 감사야! 너는 감사밖에 없어.
감사 외에는 할 말이 없는 존재야!
중국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신학적으로도 안 맞고, 교리적으로도 안 맞으나
주는 교훈이 있어서 예를 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 저승사자 앞에 왔다.
그런데 먼저 죽어서 온 두 사람이 있다. 모두 3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희들은 아직 죽을 기한이 되지 못했는데 실수로 먼저 왔다.
그래서 돌아가라.
그러나 장례식 끝나고, 돌아갈 육체도 없고, 미안하다.
그 대신에 무슨 소원이든지 하나씩만 말하면 그 소원을 갖고 다시 태어나게 해 주겠다.
① 첫번째 사람은 돈 주세요.
저는 평생 가난해서 죽도록 고생만 했는데 이번에는 돈 많이 주세요.
② 두번째 사람은 권세를 주세요.
저는 밑바닥 인생만 살면서 설움 많이 당했는데 권세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한 평생 누릴 권세를 가져라.
③ 세번째 사람은 말하기를 저는 돈도 필요 없고, 권세도 필요 없습니다.
조그마한 소원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물 좋은, 산 밑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무병장수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저승사자가 화를 버럭 내면서 하는 말이 :
이 나쁜 놈, 그런 곳이 있으면 내가 가겠다. (ㅋㅋㅋ)
그렇습니다.
이 땅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돈 있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행복하지 못하다.
날마다 하루 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어느 여(女)교수의 간증이다.
6.25전쟁 때 아버지는 딸을 낳고 군대에 나갔다가 전사하셨다.
어머니는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어 떡 행상 장사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딸을 키웠다.
딸이 똑똑해서 미국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고 돌아와 유명대학 교수가 되었다.
교수 신랑 맞이해서 결혼해서 이제는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어머니 나 키우느라고 고생 많이 했는데 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서 그렇게 하게 되었다.
어머니 모시고 7순 잔치를 하게 되었다.
잔치 잘 마치고 이 딸 교수가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엄마 ! 그 동안 나 키우느라고 너무 너무 수고 많았어.
엄마 너무 늙었어. 전에는 커 보였는데 이제는 작아졌어.
엄마!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 드릴게... 차? 돈? 집? 뭐든지 말해...”
엄마는 딸을 한 참 쳐다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정말 내 소원 들어줄래?
“얘야! 나와 함께 교회가자.”
“그래 엄마 나도 엄마와 함께 교회 갈게”
그래서 전에는 버스 타고 교회 갔는데 이제는 좋은 차 타고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새 교우 환영 실에 어머니와 교수 딸이 들어갔다.
그 때 누가 달려와 말을 겁니다.
T.V.에서 봤어요.
우리 딸이 다니는 대학은 별로 안 좋은데 편입이 안 될까요?
그런데 옆에서 여 집사들이 수군거리는 말이 들려옵니다.
“아이고 기분 나뻐? 교수 박사면 다야? 되게 목에 힘주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권사님들이 하는 말이 들려온다.
“과부 권사가 딸 데리고 왔다고 더럽게 재네...”
이 때 이 교수 딸은 엄마를 강제로 끌고 나와서 집으로 갑니다.
“딸아 ! 무슨 일이 있었니? 왜 그래?‘
그래서 딸이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 합니다.
나 엄마 소원 들어줄려고 교회 나갔는데...
엄나 나, 다시는 교회 안 갈 거야.
그 때 엄마가 말합니다.
“애야 내 말 잘 들어라. 나는 한평생이 교회 다녔고, 예수님 한 분이 좋아서 교회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소리 들어도 나는 예수님 좋아서 예수님께 감사해서 다녔다.
감사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오셨지만, 마음은 바다같이 넓구나.
나는 박사요 교수인데, 난 어머니만 못 하구나 내 마음은 바늘 구멍보다 좁구나..
그렇구나, 어머니가 수 십년 교회 다닌 것이 예수님의 평강 때문이었구나.
감사하는 마음은 넓은 마음이구나...
주님의 평강이 있는 엄마의 마음은 거인의 마음이다.
그 순간 그렇게 작아 보이던 엄마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큰 마음이요. 주님의 마음이요. 그 사람이 거인입니다.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습니다. 인생을 짧습니다.
우리도 [나인홀드 니버]의 기도를 드려 보면 어떨까요?
고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시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고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것이 지혜로운 마음이고, 넓은 마음이다.
화목하는 마음이요. 감사하는 마음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초점이다.)
감사가 체질이 되어야 하고, 감사가 성품이고, 감사가 인격이 되라는 말이다.
3)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 찬양 )하라.(16절)
감사를 ( 표현 )하라는 말이다.
감사한 마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찬양으로 표현해야 한다.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노래는 부려질 때까지 노래가 아니다.
종은 종 소리가 날 때까지 종이 아니다.
감사는 감사를 표현할 때까지 감사가 아니다.
감사를 못하면 불평이 생긴다. 감사와 불평은 가까이 있다.
빛이 떠나면 어두움이 찾아오듯이 감사를 못하면 불평이 찾아온다.
우리의 손가락을 불행을 카운트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찾는데 사용해 보세요.
그러면 어느 사이에 행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감사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 찬양이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4)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 다 ) 감사하라.(17절)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다] 감사하라.
이 말씀은 절대 감사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환경을 초월한 절대 감사를 할 수 있나요?
(17절)이 해답이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으면 절대 감사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서는 감사할 수 없다.
어떻게 환난과 질병, 실패하고 억울함을 당할 때에라도 감사를 할 수 있나요?
내 힘으로는 감사가 되지 못한다.
그를 힘입어 믿음으로 감사하면 감사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환경 따라가면 감사할 수 없다.
돈 따라가면 감사할 수 없다.
형통할 때만 감사한다면 감사할 수 없다.
절대 감사란?
형편에 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절대 감사는 구원받은 감사이다.
[헬렌 켈러 여사]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삼중고 장애를 가지고,
정말 힘든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났다.
신앙인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다.
꽃밭에서 향기를 맡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핸디캡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저는 듣습니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불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시한번 17절을 봅시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다] 라는 말에 줄치고 동그라미를 해 놓으세요
(결 론)
감사는 은혜를 아는 신앙이고, 신자의 행복이고, 승리이다.
1) 그리스도의 ( 평강 )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2)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이 초점이다.) (15절하)
3)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으로, 말로, 물질로, 행동으로 표현하라) (16절)
4)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전부[ 다 ] 감사합시다. (17절)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여기에 참믿음이 있고 행복이 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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