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을 얻으려면 (마 11:28-30)
우리는 때때로 어떤 특별한 행사나 결혼식 같은 일에 [초청] 받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오라"고 [초청]하신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죄 용서 받는 길은 하나님께 나와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와서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요일 1:9) 흰 눈처럼 깨끗하게 씻어주신다고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초청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목마른 인생들아, 내가 생수다.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의 내면적 갈증, 영혼의 목마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무거운 죄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든 인류를 향한 메시야의 절대적인 초청이다.
“다 내게로 오라” 고 하신다.
단순한 초청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운 초청이다.
모든 인생은 반드시 주님께로 가야 한다.
예수님은 인생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이것이 인생이다.
모든 인생은 수고하고 짐을 지고, 멍에를 멘다.
이 말은 마치 무거운 짐을 실고 끌려 가는 소를 생각하며 말씀하신 것 같다.
소가 무거운 짐을 실은 달구지에, 어깨에는 멍에를 메고 코에는 고삐에 매여
힘들게 간다. 때로는 힘들어 못 올라가는데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린다.
불쌍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인생을 정의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전 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쉼이 필요한 인생이다.
육신의 쉼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쉼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면, 아무리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29절)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내가 너희에게 마음의 쉼을 얻게 해 주겠으니, 내게로 오라는 초청이다.
누가 마음의 쉼을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계속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로 다가오는 음성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쉼이 있습니까? 이 쉼을 누리면서 사십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님이 주시는 쉼을 누리지 못하고
피곤하고 무거운 삶을 사는 성도들이 많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안식을 누리며 사는 신앙생활이 필요하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려운 일들이 가로막고 있다 할 찌라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쉼이 필요하다. 이 쉼을 찾아야 하고, 이 쉼을 갖고 살아야 한다.
실제로 주 안에서 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쉼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1)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쉼을 얻는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내게로 오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쉼을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하고,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하고, 어떤 선행을 해야 구원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만큼의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모든 인간이 선을 행하기에 완전 부패했고, 전적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을 행할 수 없다.
이것을 알 때, 우리 마음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눈에 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우리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무거운 짐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적부패, 전적무능)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라, 하지 말라]고 하는 율법의 문제는 내가 책임 져 주겠다.
그 대신 너희는 나를 믿으라.
그리하면, 내가 영생을 선물로 주겠다는 약속이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영혼은 자연적으로 쉬게 되고,
우리 마음에 있던 무거운 율법의 짐은 다 사라진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압박과 무거운 율법의 짐에서 해방받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이 사실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만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놀라운 구원의 도리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런 분의 신앙생활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시간,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주시는 다른 멍에를 멜 때, 쉼을 얻는다.
(29-30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나의 멍에를 메라] 고 하셨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아무런 멍에도 메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무거운 멍에는 벗겨 주시지만, 다른 멍에를 주신다
주님이 메워 주시는 멍에는 쉽고, 가벼운 멍에이다.(30절)
내 멍에가 [쉽다]라는 말은 편(便)고, 잘 맞는다는 말이다.
소가 멍에 없이 일하면 매우 힘들다.
소는 멍에가 있어서 편리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멍에가 어깨에 잘 맞으면, 같은 짐을 지고 가더라도 훨씬 편하다.
멍에가 목에 안 맞으면 작은 짐이라도 아주 힘들다고 한다.
소의 크기와 싸이즈가 다 다르다.
멍에가 소의 목에 잘 맞으면 웬만한 짐도 끌고 간다.
그러나, 멍에가 소의 목에 안 맞으면 소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목이 붓고, 살갖이 벗겨지고 피가 난다.
주님은 우리가 아주 쉽게 멜 수 있는 멍에로 교체해 주신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면 쉼을 얻을 수 있다.
행복하게 멍에를 멜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런 것을 Happy Burden, 행복한 짐 이라고 한다.
주님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 하셨다.
온유하고 착한 주인이 만든 멍에는 메기가 쉽다.
그러나, 고약한 주인이 만든 멍에는 소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목에다 얹어놓고 짐을 실어서 끌고 가게 만든다.
소를 사랑하는 주인은 소에게 씌운 멍에를 벗기고, 소 어깨와 목을 조사한다.
목이 부었는지, 껍질은 벗겨지지 않았는지? 자상하게 살피고, 돌보아 준다.
잘 안맞은 것 같으면 다시 고치고 다듬어서 그 소에게 잘 맞도록 가볍고
쉬운 멍에로 바꾸어 준다.
주님께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 주신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은 우리의 멍에를 쉽고 가볍게 만들어 주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시각과 관점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현실을 보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마음가짐을 바꾸어 주신다.
사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여도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수 잘 믿는 가정이 하루 아침에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 나의 문제,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보는 눈을 바꾸고,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해 주신다.
“합동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될 것이다고 믿는 마음이 생긴다.
같은 문제를 놓고도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감사거리가 보이고 기뻐할 마음이 생기니,
자연히 내 멍에는 쉽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각과 관점으로 바꾸어 주심으로 마음의 쉼을 얻게 해 주신다.
3) 주님을 배움으로 쉼을 얻게 된다.
배우라고 하셨다.
주님의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을 배워야 한다.
성품이 완악하고, 교만한 사람은 마음이 거칠고, 편하지 못하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고, 쉼을 얻는다.
주님의 성품을 배우고, 말씀대로 살면, 여기에 참 평안과 안식이 있다.
평안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주님을 배워서 온유하고, 겸손히 말씀 따라 살면 내 마음에 평안을 지킬 수 있다.
문제는 내 고집대로 살고, 딴 길로 가니까 마음에 쉼이 없고, 평안도 없어지는 것이다.
끝으로, 수수께끼 하나 내보겠습니다.
[지면 질수록 가벼워지고, 벗으면 벗을수록 무거워지는 것이 무엇인가?]
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지면 질수록 우리 인생이 가벼워지고,
말씀을 벗으면 벗을수록 인생의 삶이 무겁고 힘든 것이다.
(결 론)
왜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까?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해결자이시기 때문이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세상은 재미는 줄 수 있지만, 참 기쁨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재물은 편안은 줄 수 있지만, 참 평안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하나님만 우리에게 참 평안과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안식은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과 가까울수록 쉼과 안식 즉, 구원이 넘친다.
삶이 곤고하고 무거우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요. (빌 4:6-7)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참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다.
②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멜 때, 참 안식을 얻는다.
③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배우고, 주님의 품에 안길 때,
여기에 진정한 안식과 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이 세상에서도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영원한 안식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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