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3일 금요일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2 과): 예수님은 누구신가? (골 1:15)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2 과)

제 2 과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본문 말씀: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참고로) : Encounter 모든 강의는 좀 길지만, 끝까지 찬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 생활큰 도움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며 꼭 알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은 기독교 신앙생활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 신앙생활궁극적인 목적을 모르시면 신앙생활의 참 기쁨도 모르고

또한 신앙생활을 꼭 지속해야 할 이유도 잘 깨닫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끝까지

지속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천국 가는 Visa를 받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왜 우리가 천국 가는 Visa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원한 시간을 그 무서운 지옥에서 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보내기 위하여 천국 가는 Visa를 받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그런데 천국 가는 Visa를 받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어떻게 천국 가는 Visa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하여 여러분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첫째, 예수님은 누구신가?

2)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해 주신 일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까지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의 귀에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지금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 역사 )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약 2천년 전에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유대 나라에 사셨던 사실은 성경 뿐만 아니라

일반 세상 역사책 속에도 나와 있는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인간의 역사 가운데 우리와 똑같이 사셨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2) 둘째로 : 그 분은 바로 무한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분을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쉽게 말하면 “바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천국으로 가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의아심부터 가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시집도 가지 아니할 텐데 어떻게 아들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기독교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저 먼 나라 유대인들의

허황된 신앙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이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기 위하여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뜻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개념입니다.

개미들에게 인간 사회에 관한 일을 말해 준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개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들에게 계시해 주실 때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개념도 그런 것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제가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개념을 우선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정 삼각형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정 삼각형 한 가운데에 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원 속에 하나님이라고 써 넣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삼각형에는 세 개의 꼭지가 있는데 제일 위 꼭지가 성부라고 가정해 보시고,

왼쪽 저변에 있는 꼭지가 성자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오른쪽 저변에 있는 꼭지가 성령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성부, 성자, 성령님하나님이라는 원 사이에 이콜(Equal)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각형의 세 변에는 같지 않다부호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은 그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도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성부 하나님하나님이시고, 성자 하나님하나님이시고,

성령 하나님하나님이신데,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다르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 다르시고, 또한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한 분이신데 그 속에 서로 다른 삼위, 즉 세분의 인격체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한 분이신데 그 한 하나님 속에 또 각기 다른 세분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인 것입니다.

무리하게 설명을 시도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 햇빛이 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암실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암실 벽에는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온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구멍에 프리즘 (Prism)을 가져다 대면 햇빛은 분명히 하나인데 암실 안에서 보는 사람 눈에는

일곱 가지 색깔로 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한 분이신데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을 인간의 인식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볼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보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설명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인식에 비치시는 하나님, 우리 인간의 이해라는

차원에서의 설명인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1) 첫째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입니다.

본질이 없는 존재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 있어야 합니다.

2) 둘째는 본체 내지 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무형의 관념이 아니시라면 반드시 하나님으로서의 본체형상이 있어야 합니다.

3) 셋째는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위하여 반드시 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없으면 그것은 물질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본질로서의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성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체 혹은 형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 반면에 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

성부 하나님은 본질로서의 하나님이요,

성자 하나님은 본체 혹은 형상으로서의 하나님이요,

성령 하나님은 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측면에서 볼 때 성부 하나님,본질로서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하나님의 본질은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스스로 있는 자 (출 3:14)”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있는 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대로 개미가 인간을 알 수 없는 것보다는 :

인간이 훨씬 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하여는 반드시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형상으로서의 하나님’

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그 분이 바로 성자 하나님”, 즉 우리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 분이 바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서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그 속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골로새서 1:1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지만 우리 인간에게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

“형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4: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빌립보서 2: 6절 상반절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또한 히브리서 1:3절 상반절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

바로 예수님피조계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재미있는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시고 마지막 날 밤 제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그 때 빌립이라고 하는 제자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 14:8)”

성경을 보면 빌립이라는 제자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요 이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주님께 드린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주님 그렇게 말씀으로만 푸짐하게 약속하지 마시고 주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주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한번 쯤 보여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그렇게 안타깝게 말씀 안 하셔도 우리가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빌립의 이러한 요구는 육체를 가진 모든 인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빌립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무슨 뜻일까요?

“너희들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서의 하나님

내가 이 땅에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어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들이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내가

이 땅까지 왔는데 어떻게 또 하나님을 보이라고 하느냐? 나를 본 자는 바로 하나님을 본 것이니라”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은 바로 우리 인간 사회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누구이시겠습니까? 으로서의 하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말씀은 다음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본체로서의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는 :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기 전에 기독교에 대하여 그렇게 문외한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성경을 세 번씩 통독해 보고 기독교 서적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도 예수를 믿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교리들이 너무나 불합리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한 기독교의 교리 중의 첫 번째가 바로 성육신 교리였습니다.

성육신의 교리란 2천년 전에 이 땅에 사셨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교리입니다.

저는 그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제자들이 자기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자기네 선생이 하나님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면 쉽게 이해가 되겠는데

어떻게 하나님인간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처럼 인간들 사이에 사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란 의지할 곳 없는 노약자아녀자(兒女子)들이나 믿고,

의지하도록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나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New York에 사는 어떤 언론인의 간증을 듣고 크게 깨달은 것 있었습니다.

그 언론인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교육도 많이 받고 또한 학식도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도 교회를 몇 번 나가 보았지만, 성육신의 교리가 믿어지지 않아서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은 금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이었습니다.

눈보라가 몹시 불어닥치는 추운 겨울 밤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성탄절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갔고,

그 언론인은 혼자 집에 남아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언론인이 ‘무슨 소리인가’하고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창문 밖에는

조그마한 참새 새끼 한 마리추위에 떨며 어두움에 질려서

불빛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유리창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언론인이 참새 새끼를 보았을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참새 새끼는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론인은 어떻게든지 그 참새 새끼를 도와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가서 차고에 문을 열고 차고에 을 켰습니다.

참새 새끼가 그 불빛을 보고 차고로 날아 들어오면 밤새도록 차고 문을 닫아서

추위를 막아주고 또을 켜두어서 어두움도 없애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참새 새끼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고 안으로

날아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언론인은 그 참새 새끼를 차고 안으로 억지로 몰아 넣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서 손을 휘저었습니다.

그 참새 새끼는 그 언론인이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로 잘못 생각하고

높은 창문구석으로 날아 올라가서 창문 구석에 몸을 박고 떨고 있었습니다.

그 언론인은 하는 수 없이 차고에 다시 들어가서 긴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서

그 빗자루로 참새 새끼를 차고 안으로 몰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 참새 새끼는 그 언론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그 언론인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줄 잘못 생각하고

오들오들 떨며 그 창문 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 언론인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생각했답니다.

“내가 참새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내가 참새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내 뜻을 전해 줄 수가 있을텐데...! ”

그 때 그 언론인의 마음속에 성육신의 진리가 파고들어 왔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영접하고 좋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도와주기를 원하셔도 우리가 그 분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그 분의 을 전달해 주시는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까지 오시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까지 오신 두번째 목적은 :

2) 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받을 형벌대신 받아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이 다음 시간에 더욱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 이외에도 대종교로 인정받고 있는 종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 유교, 회교 등입니다.

이런 종교를 창시한 분들은 모두 전 인류를 구원하거나 좋은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성실하고 정직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아닌 것을 자신들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직 기독교를 창시하신 예수님만이 자신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주장하셨고 (요 6:51),

또한 아버지하나다 (요 10:30)” 라고 주장하셨으며,

자신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었다 (요 3: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자신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거나 거짓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의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라면 예수님은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맙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시면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았을 텐데 어떻게 모든 인류를

속이기 위하여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사기꾼의 입에서 2,000년 동안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신 그 아름다운 말씀들이

과연 흘러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말씀을 끝맺겠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봄으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는 :

다음 시간 (제 3 강)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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