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8 과)
제 8 과 :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본문 말씀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대학생이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하여 어느 제재소에 취직을 했답니다.
주인은 그 학생에게 체인 소 (Chain-Saw), 톱을 주며 뒷 뜰에 있는 나무들을 자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주인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데 몇 시간 후에 그 학생은 불평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서
항의를 합니다. “이 톱이 너무 안 들어서 나무가 잘라지지가 않습니다.”
주인이 그 체인 소(Chain-Saw)를 검사하기 위하여 엔진을 발동시키는 줄을 잡아당기려고 하니까
그 학생이 물었습니다. “그 줄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
그 학생은 엔진으로 작동되는 체인 소 (Chain-Saw)의 엔진을 걸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기독교 신앙생활은
엔진을 발동시키지 않은 채 체인 소 (Chain-Saw)를 쓰는 것처럼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시면 기독교 신앙생활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어지는지 모릅니다.
제가 성령을 받을 무렵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령 받는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주일 대 예배를 드리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물론 개인 기도도 없었고 성경을 읽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977년 8월 20일 새벽에 제가 성령을 받고 삶이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제가 워낙 예수를 믿지 않고 엉뚱한 짓만 하던 집사였기 때문에 나의 변화를 보고
온 교인들이 놀라버렸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구나!”
그 다음 날부터 교인들이 성령 받고 변화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몇주 후 주일 대 예배 시간에는 전 교인이 통곡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령을 받고나니까 서로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주일 대 예배] 밖에 없던 교회에
주일 저녁 예배가 생기고, 수요 기도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금요 철야 기도회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모자라서 토요일 저녁에는 어느 성도님 가정에서 모든 성도들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를 한 다음 3시간, 4시간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 하던 헌금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교회의 집사였지마는 헌금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나니까 일주일 동안 번 돈 가운데서 경비와 생활비를 제하고
남는 돈을 모두 헌금 봉투에 넣어서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그 때 저의 마음은 마치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간 아이가 한 학기를 마치고
일등한 성적표를 받아 가지고 아빠 엄마에게 보여드리기 위하여
집으로 빨리 가고 있는 심정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헌금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며 성경을 탐독하며 모든 이웃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전혀 힘이 들지 않고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고
그것이 바로 천국 생활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생활이 힘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발 떼기를 주저하지마는
성령받고 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 생활은 너무나 쉬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국 생활로 변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마치 스키장에서 걸어서 스롶(Slope)을 올라가는 사람과 리프트(Lift)를 타고 스롶(Slope)에
올라가는 사람의 차이와도 같은 것입니다.
★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해 주실까요?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해 주시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믿는 성도 개개인을 위한 일이요,
2) 둘째는 공동체 즉, 교회를 위한 일입니다.
오늘은 믿는 성도 개개인을 위하여 해 주시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섯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
1) 첫째로, 증거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들에게 증거 하는 일을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서 증거 해 주시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①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5:26절) 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내 속에서 나 아닌 다른 영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에 예수가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1977년 8월 20일 새벽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씀을 드릴 때 제가 눈으로 하나님을 본 것도 아니고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몸이 화끈해지거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르르 하지도 않았습니다.
환상을 보거나 혹은 방언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느꼈던 사실은 마치 가을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나뭇잎들이 단풍이 든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어제까지 그렇게도 안 믿어지던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님께서 나의 심령가운데 들어오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가 믿어진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또한 그 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확신하려는 단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그 모든 사실들이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확실해 진다는 뜻은 그냥 믿어진다는 뜻이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나의 심령 가운데서 증거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② 둘째로 성령님께서 증거 해 주시는 것은 :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롬 8: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이 추상적으로 들리지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며
구체적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심령 가운데 내가 아닌 다른 영(즉, 성령)이 증거하시기를 :
"예수 믿는 너는 하나님의 자녀" 라고 증거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원래 낳음을 받은 자는 누가 나를 낳았는지 증거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기를 낳을 때 그것을 자기 스스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이 나를 낳으신 사실은 부모님만이 증거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낳음을 받은 사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낳음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낳으신 사실을 증거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시고
우리는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믿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두 번째 일은) :
2)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일입니다.
(요 14:2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말씀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일, 두 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뜻에도 역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첫째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때로는 성령님께서 사업에 대한 것도 지시해 주십니다.
어느 곳에 투자를 하려고 할 때 투자를 하라, 하지 말라는 지시도 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해 주실 때 이미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주셨고 또한 판단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참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심을 가르쳐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 깨달아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순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② 둘째는 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은 기억나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안다는 말과 기억한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지식에는 행동이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이 기억날 때만이 행동에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 역사 해 주지 않으시면 성경 말씀을 아무리 읽어도
인쇄된 활자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면 성경 말씀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세 번째 일은) :
3) 성령님은 우리를 책망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6: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에, 책망하신다는 단어의 뜻은 나무라서 깨닫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나무라서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먼저 우리가 죄인 됨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죄인 됨이 깨달아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필요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죄인 됨이 깨달아지기 위하여는 반드시 하나님의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어야 하는데 성령님께서 그 역할을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임하시거나 감동을 주시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죄인됨이 깨달아지며 회개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로 있을 때 한번은 주일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수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국민학교 일학년생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집회 때 성령이 임하시니까 이 아이들이 모두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며
회개하는데 국민학교 1,2학년생들도 콩크리트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이 "I am such a sinner!"라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철없는 아이들도 죄인됨을 깨닫고 통회 자복 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도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면
심령 가운데 기쁨과 평강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통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 인줄 알면서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죄] 인 줄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나면 내가 알든 모르든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한가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기 전의 인간 양심은 어디까지나
혼에 속한 양심으로 이것도 역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겉 사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성령을 받고 나면 같은 양심의 소리가 성령님의 음성으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네 번째 일은) :
4) 성령님은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요 16:13절) 상반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런데 여기서 진리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우리 예수님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 자연인은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성령을 받고 나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버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끊임없이 예수 안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한번 간증을 드린 적이 있지마는 한번 더 되풀이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성령을 받은 날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모두 새롭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 때 비로소 내가 42년 동안 이 세상에서 찾고 찾던 것이 :
바로 이 평강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기뻤지마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예수님을 다시 놓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 기쁨과 평강도 사라져 버릴텐데.”
그런데 그날 성경을 펴 보면서 눈에 띈 성경구절이 바로 (요 16:13) 상반절이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저는 그 성경 말씀을 보자 바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안심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니
제가 예수님을 떠나서 갈 곳이 없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다음에도 믿음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다섯 번째 일은) :
5)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니다.
(롬 8:2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실,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 두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이 두 분의 기도는 각각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 해 주십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사탄, 마귀가 반드시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하나님, 저 김 목사를 보십시오. 저 김 목사는 오늘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의 공의성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 김 목사의 기도를 절대로 들어주시면 안됩니다.”
그 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대언 해 주십니다.
“김 목사가 오늘도 죄를 지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제가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아버지께서는 김 목사의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요1서 2: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성령님의 기도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무엇이 우리들에게 꼭 필요하며,
무엇이 우리들에게 해로운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무엇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자기에게 로운지 알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적으로는 우리들에게 해로운 것인데도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잘못 알고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난한 목사님이 양복이 한 벌밖에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양복바지의 다리 부분 밑이 다 헤어져서 실밥이 늘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 목사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종인데 바지가랭이가 다 떨어져서 실밥이 늘어져 있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새 양복 한 벌만 주시옵소서.”
그 때 성령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목사에게 새 양복을 절대로 주시면 안됩니다.
저 목사에게 새 양복을 주시면 그 양복 때문에 세상 것을 탐하기 시작하여 세상으로
돌아가기 쉬우니 그에게 절대로 덕이 되지 않습니다. 새 양복은 절대로 주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롬 8:2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여섯 번째 일은) :
6) 능력을 주십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마는 능력이 결코 기독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기독교 신앙에는 능력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 4:20절) 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그런데 그 능력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 1: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반드시 능력을 받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는 목적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끝맺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임하셔서 해 주시는 일이 크게 여섯 가지입니다.
① 첫째, 증거 해 주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② 둘째,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십니다.
③ 셋째, 우리들을 책망해 주시고, (죄, 의, 심판)
④ 넷째,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⑤ 다섯 번째,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⑥ 여섯 번째,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그 이외에 우리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받고 또한 성령님의 도움심을 받으셔야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시기 위하여 성령님을 뜨겁게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신앙생활에 성공하시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감 사 합 니 다.
다음 시간 (제 9 강)에서는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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