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4일 화요일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9 과) 성령을 어떻게 받는가?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9 과)

제 9 과 : 성령어떻게 받는가?

본문 말씀 : 행 2:38-3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는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성령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 이유들은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성령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곳이 다섯 군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8장, 9장, 10장, 19장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군데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받는 사람성령 받는 것을 알았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경험인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았지만, 자신이 언제 어디서 성령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 말씀입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참으로 작은 씨앗입니다.

언뜻 보면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받되 겨자씨 한 알만큼 받아서 자신이

언제? 어디서? 성령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생명이시기 때문에 일단 받고 나면

그 사람의 심령 가운데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후에는 성령 받은 증거가 나타납니다.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믿어진다는 것”이야말로 성령 받은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 성령과 우리의 구원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우리가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결단과 그 결단의 지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인정하시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보증으로 성령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후 1:22)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조건이라면,

“성령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았다결과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경험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경험해야 되는 필요 불가결한 조건인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을 다른 말로 “성령 세례를 받는다.” (고전 12:13)이라고 말하는데,

성령 세례야말로 기독교 신앙생활시발점과도 같은 것입니다.

★ 그러면 성령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격할 만큼 올바르게 예수를 믿을 때 성령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성경 (행 2:38-3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본문 말씀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예수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신앙고백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제대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

하나님께서는 성령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저 주는 것, 값없이 주는 것,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믿으면 성령은 누구나 받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약속은 시간장소를 초월하여 어느 곳에서든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이 곳에서도 우리가 예수제대로 믿기만 믿으면

성령은 거저 받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위하여 여러분이 하여야 할 일은 예수를 믿되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먼저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첫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즉, 믿음의 내용입니다.

(2) 둘째, 믿음이란 무엇인가?

즉, 하나님은 무엇을 믿음이라고 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는 네 가지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① 첫째 :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고 죄인 됨고백해야 합니다.

② 둘째 :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나를 만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③ 셋째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분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목적“나의 벌”대신 받아 주기 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④ 넷째 :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심령 가운데 나의 왕으로,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까지는 내 뜻대로 살아왔지마는 오늘부터는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한 가지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 나는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먼저, 한 가지 알아야될 사실은 에 대한 인간의 이론

하나님의 이론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너희들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 지을 생각을 하고 를 짓게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사과나무는 사과가 맺히기 때문에 사과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 열매를 맺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으면,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분명한데 :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죄인 됨을 깨닫지 못할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우리들의 잘못된 기억장치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장치타락한 인간기억장치이기 때문에 고장이 나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하여는 자신이 잘한 것은 기억하고,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다른 사람들이 잘한 것은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42살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마는 그 이전에 저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착한 것은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는데 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한번 더 죄를 지어도 더 이상 새까맣게 될 여지가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의 죄인 됨을 인하여 통곡하며 기도하면서 또 한편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새까만 죄인인데 어떻게 그 동안 착한 것은 내가 최고라고 잘못 알고 살아왔을까?”

그 때 저에게 기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세상을 살아오며 잘한 일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A) 예를 들어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에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거지 아이가 추위 때문에 떨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입고 있던 윗도리를 벗어서 그 아이에게 입혀 주고 갔습니다.

얼마나 착한 일입니까? 저는 그 사실을 저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B) 또한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였습니다.

저의 친구 한 사람이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비싼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저는 그 친구에게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 친구를 끌고 길가에 있는 시계 방에 들어가서 그 시계를 팔아서 학비를 대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착한 일입니까? 저는 그 사실도 저의 기억장치 속에 입력해 두었습니다.

(C) 또한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더운 초여름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모든 일을 다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 교문을 나왔습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급하게 경사진 길을

1,000m나 내려가야 시가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그 고개턱을 다 내려갔을 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

그 언덕길을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아니하고

책가방을 수레 위에 던져 얹고 열심히 그 수례를 밀어 드렸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다 이른 다음 저는 할아버지 앞으로 뛰어가서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착합니까? 이것도 역시 저의 기억 장치 속에 입력해 두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이 세 가지 사실만 있었기 때문에 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착하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깨달은 사실은 내가 42년 동안 세상을 살아오며 착한 일을 한 것이

몇 번 있었겠지마는 그 일들을 다 모아도 시간 적으로 일주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41년 11개월 3주 동안은 만 짓고 살았는데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죄인이면서도 죄인 됨을 깨닫지 못하는 :

(2) 두 번째 이유는 : 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양심에 어긋난 것이 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하나님)양심(기준)에 어긋난 것이 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식인종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비록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식인종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양심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사람을 잡아먹고 살아도 동족은 잡아먹으면 안 된다”

만약에 식인종들에게 그런 양심도 없다면 어떻게 오늘날까지 식인종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 식인종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양심에 투철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동족의 살점은 한 점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는 미국에 온 다음에도 자신의 양심에 어긋난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의 살점은 결코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종족의 사람들을 잡아먹고 살다가 법망에 걸렸습니다.

그 식인종 청년이 재판장에게 항의합니다.

“재판장님! 저의 과거를 다 조사해 보십시오.

저는 한번도 저의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항변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미국의 법으로 재판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우리가 우리 인간의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양심하나님의 양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양심타락한 양심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가 미워도 죽이지 아니하고 때리지 아니하면 잘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심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선포 하십니다.

“사람이 형제를 보고 미워해도 이미 살인했느니라 (마 5:22)”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살인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양심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이웃을 죽인 적이 있는 살인자입니다.

동기간도 죽이고 부모까지도 죽인 적이 있는 살인자인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까지도 미워했으면, 살인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왜 죄인인지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은 말합니다.

“자기의 아내 아닌 여자와 동침하면 간음한 것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양심은 선포하십니다.

“아니다. 너희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니라”(마 5:2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간음을 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두번 실수로 간음을 한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을 상습적으로

간음해 왔고 또 하고 있는 죄인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2) 둘째로 : 우리는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인물이신,

예수님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되고자 하실 때 인간이 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 이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종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교, 불교, 이슬람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였지,

그 사람들 자신은 진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기를 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 창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직 기독교의 예수님 한 분만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든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주장거짓이라면 그는 희대의 사기꾼입니다.

어떻게 모든 인류를 속여 보려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기꾼의 입에서 2천년 이상 동안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오신

귀한 말씀들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주장의심하기보다는 그대로 믿는 편이 훨씬 더 쉬운 것입니다.

오늘 성령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나를 만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3) 셋째로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려 죽으신 것은,

내가 받아야 할 대신 받으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없는 자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을 대신 받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을 대신 받아 주실 분은 스스로 죄가 없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 분에게도 죄가 있다면 그 분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도 그것은 그 분

자신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까지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벌을 받게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대속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은 바로 내가 받아야 할

대신 받아 주기 위한 대속(代贖)의 사건이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4) 넷째로 :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나의 왕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이 사망 권세 속에 들어가셨을 때 그 분이 지고 계시던 인류의 를 벗어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지셨던 자기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들의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죽음 속에서 우리의 죄를 벗어버리시니까 사망 권세가 더 이상 그 분을 가두어

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 자신은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박차시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사람들은 자기 속, 가장 높은 곳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의자에는 모두 자기 자신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자신들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관해야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가장 높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겸손하게 바닥에 무릎을 끓고 이 시간도 나의 마음 문 밖에서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영접하여 그 의자에 앉혀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까지는 알지 못해서 내 뜻대로 살아왔지마는

이 시간부터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면 (빌 2:7)

성령님왕권(王權)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이십니다. (마 16:28)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철저하게 주님 앞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모실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약 2: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참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때 “행함”이란 윤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 결과로 자연히 나타나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광야를 걸어가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 사람은 누군가 사람을 만나야만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 앞에 집이 한 채 보입니다.

그는 집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틀림없이 사람이 있다믿고 그 집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벨을 눌러 보았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여보세요!”하고 소리를 쳐보았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는 더 세차게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리며 목청껏 “여보세요!”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그래도 아무 인기척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집안에 사람이 없는가 보다’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추측한 것이지 믿은 것이 아니다.

네가 만약 믿었다면 창문을 깨고라도 들어갔을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돌로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 그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믿는 믿음에 따르는 “행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이 바로 우리의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할까요?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우리 동네에 어떤 아저씨가 한 분 살았는데 그 아저씨가 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네가 죽어야 할 때 그 아저씨는 자기의 아들을 대신 희생시켜가면서 너를 구해 주셨단다.

그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우리는 그 아저씨의 이름도 모르고 간 곳도 모른단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Grace Encounter참석하여 김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김 목사가 그 아저씨인 것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그 누가 그 곳에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저 김 목사는 사랑이 참 많구먼!” 하고 앉아 있겠습니까?

그것이 믿어지는 순간에 벌떡 일어나서 이곳으로 달려나와 김 목사를 끌어 안고

통곡하며 말하지 않겠습니까?

“김 목사님! 이것이 은혜이며 웬 사랑입니까?

목사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목사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이

내가 받을 대신 받아 주시기 위하심을 정말 믿으신다면 왜 마음 속에 그만한

감동이 없고 감격이 없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 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사람은 누구나 을 받기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복된 사람인가?

그것은 천국을 소유하게 된 자 즉, 천국 갈 수 있는 Visa를 받아 둔 사람이

가장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천국 Visa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말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쉽게 말씀드리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이 정말 간절한 심정으로

자신을 구해 줄 자를 찾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이 자기를 구해줄 자를 찾을 때 그 에게 무슨 자존심이 있겠으며?

무슨 체면이 있겠습니까? 무슨 이론이 있겠으며? 무슨 흥정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죄인 됨깨닫고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죄를 지닌 채로 죽으면 영원한 지옥 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믿어진다면 또한 하나님께서 나의 벌대신 받게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그 험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다는 것이 믿어지신다면,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

힘입기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왜 우리의 심정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자가 자기를 구해줄 자를

찾는 그런 마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가난하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참되게 예수를 믿는 믿음에 따르는 행함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중심으로 :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며,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시고,

그리고 그 귀하신 예수님이 그 험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은

내가 받을 대신 받아 주기 위하심을 믿으시고 고백하신다면,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심령 가운데 으로 모시고,

이제부터는 그 분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을 내리고, 그 사실을 고백하신다면,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성령선물로 주시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귀하신 성령모시기 위하여 “가난한 심령”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감 사 합 니 다.

다음 시간 (제 10 강)에서는 어떻게 성령 충만유지하고, 악을 이길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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