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1일 토요일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7 과)​ : 성령님은 누구신가? ​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7 과)

제 7 과 : 성령님누구신가?

본문 말씀 :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처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을 꾸리라”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 생활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 생활을 아주 힘든 것으로 알고

신앙 생활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3-14)

또한 주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그러나, 일단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해 보면 좁은 문, 좁은 길이지만, 참 평안기쁨이 있습니다.

일단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만 하면 그것이 바로 천국생활인 것을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신자들이 목사들을 볼 때는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게도 느껴집니다.

미국 사람들이 하는 Joke 중에 다음과 같은 Joke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담임 목사님이 출타 중인 어느 주일날 설교를 하기 위하여

시골에서 어떤 목사님이 오시게 되어 있었답니다.

그래서 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그 목사님을 마중하기 위하여 기차역으로 나갔답니다.

그 시골 목사님을 본 적이 없는 그 집사님은 그 시골 목사님을 찾기 위하여

기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 눈에 틀림없이 목사로 보이는 승객이 내려왔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 승객에게로 달려가서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이시지요?”

그 때 그 승객은 기분이 나쁘다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지금 배탈이 나서 그렇게 보일 뿐이랍니다.” (ㅋㅋㅋ)

왜 이런 Joke가 생겨났을까요?

목사들의 생활을 비참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사님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목사님들은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을 볼 때 “어떻게 저렇게 살까?”하고 생각합니다.

저도 목사가 되기 전에는 어떤 목사님이 저를 보고 아무래도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고 하면

아주 기분 나쁘게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자기처럼 병신 같은 사람이나 목사가 되지, 나같이 똑똑한 사람을 보고 목사가 되라고 해?”

왜 그랬을까요? 저의 눈에는 그 만큼 목사님들의 생활이 재미없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목회를 하고 보니 저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요즈음 여러분들을 보면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합니다.

“무슨 재미로 저러고 살까?”

저도 과거에 평신도 생활을 해 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야말로 평신도의 생활과 목사의 생활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신도 생활에 비겨서 목회 생활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남단에 있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kate를 한번도 타 본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사람들이 Skate타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어떤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혼자서 Skate장에 나갔습니다.

Skate 화를 빌려 신고 빙판에 서 보니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발목도 아프고 앞으로 나아가기는 고사하고 똑바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얼음판 위에서 비틀거리는 저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와서

양쪽에서 저의 팔짱을 끼고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양쪽에서 저를 붙들어 주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랐습니다.

저는 겨우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Skate를 타면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부둥켜안고 얼음판에 뒹굴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가는 것은 배웠지마는 Stop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앞에 여자가 서 있으면 무조건하고 “실례합니다.”하고 여인을 부등켜안고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혼자서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가다가 넘어지려고 하면 우리 학생들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양쪽에서 내 팔을 끼고 엉덩이가 얼음판에 닫기 전에 나를 도로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니까 힘들어 보이던 Skate가 얼마나 신나고 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너무나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 생활올바르게 하려고 결단을 내리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오히려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생활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마무리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기독교 신앙 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누구시며?

우리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 주시는지? 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성령님누구시며 우리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씀드리고

2) 둘째로 성령님은 우리들의 구원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3) 셋째로 성령님이 우리들에게 하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살펴보고

4) 넷째로 성령을 받은 결과에 대하여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 그러면, 하나씩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첫째로 : 성령님누구이실까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성령님은 바로 으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전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령님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되풀이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① 첫째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입니다.

② 둘째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체형상입니다.

③ 셋째는 이십니다.

어떤 사물이 어떤 사물이 되기 위하여는 반드시 그 사물로서의 본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이시기 위하여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형의 관념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위하여

반드시 본체 혹은 형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는 반드시 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본질로서의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시라면 본체형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고 으로서의 하나님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혀 힘쓰던 120문도에게

처음 성령님이 임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해하며 궁금해 할 때

베드로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 설교가 역시 사도행전 2:17-36절 사이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의 첫머리가 오늘 읽어 드린 본문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보는 이 현상은 B.C.9세기경에 사역하던 요엘 선지자

예언한 말씀과 같이 성령님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가운데서 베드로는 성령“내 영” 즉, “하나님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도 그 을 말씀하실 때는 성령 하나님이 되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그 분의 을 말할 때는 성령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질로서의 하나님, 본체 혹은 형상으로서의 하나님,

혹은 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분과는 전혀 다릅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기 자신의 지식감성의지를 가지신 각기 다른 인격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성령님도 자신의 지식감성의지를 갖추신 인격체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기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계실까요?

성부 하나님은 본질로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 하나님은 우주를 초월하여 우주 밖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듣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성부 하나님이 우주 속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분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주 안, 밖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는 본질로서의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주 밖에 계신 하나님과도 같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시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은 바로 이 우주 속, 즉 물질계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형상을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기 위하여는 으로서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성령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계 3:20절) 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때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는 예수님이 누구시겠습니까?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한다는 말은 바로 성령을 받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즉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영접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2) 둘째로 :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 가운데 “저를 믿는 자마다”라는 뜻은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상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 3:3)”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말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즉 성령을 받지 못하면 천국

들어가기는 고사하고 천국을 구경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요 3: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우리가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성령받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대단히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마치 살균하기 위하여 100°C로 만들어야 하는가?

혹은 끓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물이 100°C가 되면 끓기 마련이요, 물이 끓어야만 100°C 가 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제대로 믿으면 성령님이 반드시 하시게 되어 있고,

성령님이 임하셔야만 우리가 예수올바르게 믿는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내리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결단구원받을 만한 결단(믿음)인지? 아닌지? 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믿기로 결단해야 되지만, 우리가 가진 믿음참 믿음인지? 아닌지?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믿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보증으로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1:2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조건이라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

우리가 구원받았다증거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스스로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수를 올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 성령님이 우리들에게 하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보겠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인간에게 임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오신다는 많은 구약의 예언 가운데 세 가지를 찾아 보겠습니다.

① (겔 36:26절) 말씀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경에서 “굳은 마음”이란 “믿어지지 않는 마음,” “믿을 수 없는 마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이란 “쉽게 믿어지는 마음”, 혹은 “즐거이 믿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하실 때 우리들이 참다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우리 인간에게 성령님이 임하실 것은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② (렘 31:3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무슨 뜻일까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법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지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의무에 불과했고 지키기 힘든 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우리 성도님들이 성령을 받고 나면 하나님의 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서

들려오기 때문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자동차가 한 대 있는데 이 자동차를 시동을 걸지 않고 밀고 가는 것

자동차가 시동이 걸려서 그 안에 타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도 성령충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즐거이 행하다가

성령충만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③ (요엘 2:28-29) 말씀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와같이 우리 인간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계속 성령 주실 것약속하셨습니다.

몇 군데만 읽어보겠습니다.

① (요 14:16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② (요 16:13절) 말씀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③ (행 1:4절) 말씀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기서 “약속하신 것”이란 바로 성령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경험해도 좋고 경험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생활에서는 반드시 경험해야 되는 체험인 것입니다.

4) 넷째로 :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시 말하면 [성령 받은 결과] 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 받은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마는 오늘은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는 : 하나님믿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

성령이 임하시면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그 이유를 다시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어 주실 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을 만들어 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을 감지할 수 있는 T.V.의 안테나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 아담 이브범죄 할 때 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T.V.의 안테나고장 난 것과도 같습니다.

안테나가 고장 난 T.V.에 화면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이 죽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화면이 들어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 아담 이브이 죽은 상태에서 자녀들을 낳으니까

자녀들도 모두 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인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다시 살아서 하나님의 화면이 우리 심령가운데

비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즉시, 하나님이 믿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 둘째로 :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 자녀가 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론이나 교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는다는 경험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태어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함으로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는 것은 그 분의 이 우리에게 하시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롬 8:1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원래, 로마에서는 상속자를 정할 때 직접 낳은 친자식상속자가 되지만,

양자입양시킨 자녀도 법적으로 친자식똑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가 하나님이 낳으신 친자식과 같지만, 우리는 모두 죄의 자녀로 있다가

하나님께 입양된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성령“양자(養子)의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자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같이 큰 소리로 외쳐봅시다. 나는 하나님자녀다.

(3) 셋째로 : 성령을 받을 때 우리는 평강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빈 곳이 있습니다.

빈 곳은 우리 속에 있어야 할 이 없어졌기 때문에 누구나 느끼는 공통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하시면 우리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있는 빈 곳이 채워지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임하시면 가장 먼저 느끼는 현상이 평안기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찾고 찾는 참 기쁨평강은 오직 성령님하심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인격체이시기 때문에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님이 임하실 때도 전심으로 오로지 기도하고 있던

120문도에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귀한 성령을 받기 위하여 전심으로 사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 사 합 니 다.

다음 시간 (제 8 강)에서는 성령님무슨 일을 하시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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