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8일 수요일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5 과) : 성경은 왜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Encounter : 하나님과의 만남 (제 5 과)

제 5 과 : 성경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본문 말씀 :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참고로) : 앞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

Encounter 모든 강의는 좀 길지만, 시간내서 끝까지 찬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 생활큰 도움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우리는 기독교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생활의 기준무엇인지 확실히 아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기준 필요하겠습니까?

원래, 기독교 신앙을 체험적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믿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체험이 뒤 따라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탁상 공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이다.

만약 우리 기독교 신앙 생활구체적인 체험이 없다면 우리 기독교 신앙도

다른 많은 종교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체험에는 반드시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체험이란 원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어떤 체험올바른 체험인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인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신앙생활의 유일한 객관적인 기준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의 신앙고백의 하한선, 즉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 성경 말씀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만이 우리 신앙생활의 [유일 기준]

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 신앙생활의 “유일 기준”이라는 뜻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성경 이외에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성경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즉, 성경의 신적 권위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네 가지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첫째 : 성경의 구성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어디에 어떻게 오실 것인지,

어떤 일을 하시며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반면에 신약 성경은 역사적인 인물 예수님에게 그 말씀들이 다 이루어졌음을

우리들에게 확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종교를 연구해 보시면 모든 다른 모든 종교들은 그 종교의 창시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말이나 행위를 기초로 경전이 생겨납니다.

오직 기독교의 성경만이 기독교를 창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1,500여년 전부터

이 땅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먼저 해 주시고 그 예언을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

주시고 우리들에게 믿으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구성이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거 해 주겠습니까?

원래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도 우리들에게는 그 분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식별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기 1,500여년 전부터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어떻게 어디에 오시며 무슨 일을 하시며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지 미리 예언을 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구성을 보고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둘째로 : 성경의 주제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원래 약 1,500여년의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책입니다.

또한 40여명의 다른 기자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나 66권 성경 가운데는 오직 한 가지 주제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사실은 40여 명의 성경 기자들 배후에 성경참 저자가 계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어 드린 본문 말씀에도 모든 성경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성경의 참 저자 성령님 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 셋째로 : 성경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100% 이루어진 사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도 많은 예언자들이 있지만 그 예언들이 100% 이루어진

예언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세계 역사의 흐름이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네의 잃어버린 고토에 돌아와서 독립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자기의 국토를 잃어버린 지 1,900년 후에 그것도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린지

2,400년 후에 자기네의 영토를 찾아서 독립한 경우는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국토가 빈 땅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요 다른 나라가 엄연히 세워져 있는데

그 곳에 들어가서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 (Tel Aviv)를 중심으로 다시 독립하고

오늘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 것입니다.

4) 넷째로 :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 즉 하나님의 영

다시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씀은 오순절 다락방에 처음 성령이 임하셨을 때 베드로가 한 설교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기원전 약 9세기경에 활동하던 [요엘]이라는 선지자을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성령을 다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은 지금 많은 성도님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 병 고침 등에 대한 약속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간증들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들은 그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은 역사적으로도 정확합니다.

100여년 전에 영국에는 윌리암 람제이 (William Ramsay)라는 유명한 고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 특히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사도행전의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소아시아로 가서 옛 폐허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고고학계가 주장하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성경의 기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실과 부합한 것을 발견하고 그 자신이 예수를 영접하고 위대한 성경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유일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중요한 성경은 :

읽어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 성경 읽어야 할까요?

오늘은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닫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 숭배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참 하나님아는 길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이며, 그 분은 이 시간도 우리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 주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페르시아에는 다음과 같은 애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페르시아에 Ali Hafed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기의 농토를 다 팔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여러 곳을 방황했지만 기대하던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지 못하고 객지에서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Ali Hafed가 판 농지에서 다이아몬드 광이 발견되어

Golconda라는 유명한 다이아몬드 광산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삶의 기쁨소망능력을 세상의 헛된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며 일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야말로 바로 여러분이 찾고 찾던 다이아몬드 광산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하여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한 가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참다운 인생 설계를 세울 길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을 살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떠나서 ‘자기 자신’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만든 자동차가 자기 자체를 스스로 알 수 없고 인간이 만든 computer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알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인간을 보는 눈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철학사를 보더라도 주위 환경여건에 따라 인간을 보는 각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변 환경이 좋을 때는 인간은 자신의 내면세계보다는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로 향외적인 관심이나 사상이 철학의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거나 혹은 세계적인 어떤 재앙이 있을 때는 자연히 향내적인

즉. 인간의 내면세계를 드려다 보는 관점이나 사상이 주류를 이루게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상대적으로 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생에 대하여 깨달았다는 사실들이 정작 자신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을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소 책자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서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저녁 어느 목사님이 서재에 앉아 있는데 어떤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방문객은 힘없이 들어와서 한 숨을 쉬며 목사님 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살아야할 이유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분들을 위하여 쓰여진 좋은 책이 있는데

아무개가 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어보십시오.”

그 때 그 방문객은 한숨을 쉬며, 말하더랍니다. “그 저자가 바로 접니다.”

사람들은 마치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처럼 여러 가지 말들을 하고 책도 써 냈지만,

막상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사람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좌절이며, 절망인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제 자신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일기에 쓰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마치 빛이 전혀 없는 암굴 속에서 그것도 눈을 가리고 앞을 더듬으면서 가고 있는 사람과 같다.

한 발짝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바로 옆에 깊은 구덩이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구나 가는 길이 이 있는 출구로 다가가는 길인지, 혹은 더욱 더 깊은 암굴 속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또 이런 글도 쓴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생각하면 마치 아득히 높은 공중에 철사 줄을 매어놓고 그 위에 줄타기를 하는

사람과 같다. 그것도 눈을 가린 채로, 나는 언제 떨어질지 알지 못하는 가슴 아픈 불안감을 안고

또한 언제 이 수고가 끝날지 알지 못하면서 관객 없는 곡예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저만의 상념이었겠습니까?

자신이 자각하든 안 하든 모든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이러한 불안 응어리처럼 엉켜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즉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불안인 것입니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가?” 그것은 오직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정답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하여 이런 사실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마치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 성경은 바로 우리의 삶의 지침서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우리들에게 생소한 율법이나 계명의 모음이리라고 잘못 생각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되기 위하여 행하여야 하는 일들의 목록

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랑편지요.

그 편지야말로 우리가 참된 삶, 보람있는 , 행복을 살 수 있는 지침서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사면 자동차를 제작한 회사에서 사용지침서(Owner's Manual)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동차를 만든 회사만이 그 자동차를 어떻게 유지하며 어떻게 작동해야 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자동차를 사도 그 사용지침서대로 그 자동차를 관리하고 운전하지 아니하면 자동차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살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삶의 지침서가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책망바르게 함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많은 사람들은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나의 삶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원망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인생 지침서를 알지

못하고 지침서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마치 새 차를 산 사람이 그 차의 사용 지침서대로 자동차를 관리하지 아니하고

왜 이 자동차가 잘 움직이지 않느냐 하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침서에는 분명히 휘발유를 넣게 되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경유를 집어넣고

왜 이 자동차는 잘 가지 아니하는가 하고 불평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이 우리 자신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이 올바른 삶의 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토록 중요한 성경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는 : 신약성경부터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은 39권으로 되어있고 신약은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 드린대로 구약에는 이 땅에 오실 메시아가 누구인지 알려 주시기 위하여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신약은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이 역사적인 인물 예수님께 모두 이루어졌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신약의 그림자라면 신약이야말로 구약 말씀의 실체와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신약을 읽으시고 그 다음에 구약을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2) 둘째로 하루에 적은 분량이라도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열 시간을 읽고 그 다음 날부터 읽지 않는 것보다는 하루에 15분씩이라도

매일 읽으시는 분이 훨씬 더 많이 읽게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글 성경을 보면 구약은 1,332 페이지로 되어 있고 신약은 423페이지로 되어 있습니다.

신구약을 합치면 1,755페이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페이지를 3분에 읽는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5페이지를 읽기 위해서는 약 15분이 걸립니다. 여러분이 귀한 성경 말씀에 하루에 15분씩을 투자하면 1년에 한번 이상을 읽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성경 읽기에 하루에 30분을 투자하신다면 1년에 두 번 이상을 읽게 됩니다.

3) 셋째로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할 것을 몇 가지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A) 첫째로 성경은 믿음으로 읽으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이해돼야 믿을텐데...”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해하고 믿으려고 하느냐? 믿어야 이해가 되지.”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믿을 때 이해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말씀 드린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고 믿기를 원하는 사람은 평생 가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중학교 입학시험 가운데 미술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잘 나왔습니다.

사과 두 개가 놓여 있는데 오른 쪽에 있는 사과는 오른 쪽으로 그림자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 있는 사과는 왼쪽으로 그림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틀린 것을 고치라는 것이 시험문제였습니다.

물론 정답은 그림자를 한 방향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방향에서 비쳐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두 사과 사이에 불이 켜진 전구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 학생은 다른 시험 점수가 좀 모자랐는데도 그 아이디어가 하도 기발해서

학교에 입학을 시켰답니다.

그 학생은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 학생은 그 그림 자체는 어딘가 잘못되었지만 사과의 그림 자체는 맞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학생에게는 불이 켜진 전구의 아이디어가 쉽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믿음으로 본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하시고, 하나님은 전능하심믿고 성경을 읽으셔야합니다.

그럴 때 평소에 깨달아지지 않던 많은 성경 구절이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B) 둘째는 : 성경을 읽되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는 마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라는 안경이 아니라 “왜?”라는 안경을 쓰시고 보시기 바랍니다.

원래 말이란 뜻을 운반하는 수레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않으면 안됩니다.

(C) 셋째는 : 하나님 말씀그대로 행하려는 열망을 가지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경을 결코 연구의 대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경험의 대상으로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마치 예수를 찾아가는 지도와도 같습니다.

지도를 아무리 연구해도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려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 가운데서 나의 삶 속에서 내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다음 네 가지유의하셔야 합니다.

① 첫째,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있나?

② 둘째,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③ 셋째,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④ 넷째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통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기호나 나의 선입견에 맞는 말씀은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는 목적은 우리의 뜻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확인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에 결론을 맺겠습니다.

성경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습니다.

나를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 삶의 지침서이며 우리 발의 등불이기도 합니다.

(시 119:10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스스로 행할 길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이요 내 이니이다.”

사랑하는 새 가족 여러분!

이렇게 귀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기 위하여 적어도 하루 15분씩 투자하시고,

말씀의 가운데 행하는 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감 사 합 니 다.

다음 시간 (제 6 강)에서는 기도 하며,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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