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30일 목요일

오늘과 그 날 (Today & That day)


성경 : 히브리서 10:19-25
제목 : 오늘과 그 날 (Today & That day)
 
12월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금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예화) 이솝우화 이야기 : 사자, 당나귀, 여우 ... 사냥을 나가서 먹이를 잡아왔다.
당나귀보고 네가 나누어 보아라. 정확히 3등분하였다. 그랬더니, 사자가 화가 나서 그래도
내가 명색이 사자인데 너와 내가 똑같이 나누다니 괘씸해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여우에게 나누어 보라고 했더니, 여우가 하는 말이 사자님 뭐 그렇게 나눌 것 있습니까? 사자님이 잡수시고 남은 것이 있으면 제가 먹겠습니다.
너 참 똑똑하구나 그런 지혜를 어디서 배웠느냐?
앞에서 당나귀가 죽을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지혜자는 남들을 보면서 자기를 봅니다.
남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본다. 남들이 교통사고 나는 것을 보면서 조심한다.
옆집에 불이 났으면, 나의 집도 불나지 않도록 불조심하는 사람이 지혜자이다.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점이 있다. 미련한 사람은 :
1) 타인 주도적인 삶을 산다.
자기 주관이 없다. 남에 의하여 살아간다.
기쁨도 내 기쁨이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 에 신경을 많이 쓴다.

2) 과거 지향적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여 산다. 이미 끝났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젊음, 둔자는 끝난 일에 연연한다
사람은 살다보면 실패한 때도 있다.
재산도, 명예도, 건강도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 때 잃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 때 얻은 것이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돈은 잃었으나, 지혜를 얻었다. 명예를 잃었으나 겸손을 얻었다.
건강을 잃었으나 믿음을 얻었다. 사업에는 손해를 보았으나, 양심을 얻었다면,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잃은 것이 있으나, 그로 인하여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3) 현재만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만 살고 말 것인가? 오늘만 있나요?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
젊을 때가 있나요? 노년기도 있다. 지혜자는 노년을 준비한다.
또한, 이 세상의 삶이 있지만, 저 하늘나라의 삶도 있다.
내세를 준비하며 살아야 참 지혜자이다.

4) 더 중요한 일이 많이 있건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신경을 쓰고 시간과 정욕을 낭비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나, 지혜자는 반드시 일어날 그 일을 준비하며 산다.
내 생애에 반드시 일어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25을 보면 그 날 이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오늘(Today)이고, 그 날(D-day)이 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이것을 “Today & That day”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이 가까움을 본다고 했다.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 날이란 무슨 날인가? 그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살지만, 그 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다.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역사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20)
세상 끝이 있다는 말이다.
 
시간관, 역사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윤회적인 시간관 :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어떤 정해진 싸이클에 의해서 돌고 돈다.
불교에서는 윤회적 시간관을 갖고 있다.
생노병사(生老病死) : 출생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온다. 그러나, 다시 봄이 오지만, 같은 봄은 아니다. 같은 여름도 아니다.
2) 일직선상의 시간관 : 역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시간관이다.
알파와 오메가가 있다. 인류 역사를 끝내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요. 시간관이요, 역사관이다.
 
성경의 핵심 교리는 그 날, 주의 날에 있다. 역사는 주님의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날은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이요. 심판의 날이요. 또한, 구원의 날이다.
사도신경 :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다.
그 날은 숨겨져 있다. 감추어진 비밀의 날이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신비 속에 있다.
성경은 이 날에 대해서 선포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 날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으면 성도가 아니다.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반드시 불신자에게는 심판자로,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천사자의 나팔소리와 함께 올리우심을 본 그대로 영광가운데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그 날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서는 날도
주의 날이다. 개인 개인이 죽은 후에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는 날도 그 날이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 (Elisabeth Kubler-Ross) 그는 600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심리를 연구했다. 'On Death and Dying' 이란 책을 썼다.
당신은 이제 한 달 안에 죽습니다고 하면 : 나타나는 반응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죽음이 5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1) 부정의 단계(Denial and Isolation) : No. 죽음을 부정한다
아니 내가 죽다니 말도 안 된. 의사의 오진일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 명예도, 내 가족도, 내 재산도 다 두고 가야 하겠구나 ...
 
2) 분노의 단계 (Anger) : Why me?
왜 나냐? 하필이면 나냐? 죽을 인간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다. 젊었다 해도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으면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죽음은 현실적 사건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실체이다.
 
3) 흥정의 단계(Bargaining) : 의사를 바꿔 본다. 다른 병원에도 가본다
수술을 받아 볼까()의사를 만나볼까? 불쌍해지고 보기가 딱해진다
의사에게 매달려 보아도 소용없다그 의사도 때가 되면 다 죽는다
아무리 죽기 싫어도 지금은 떠날 때다.
사도 바울은 죽음 앞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딤후 4:6)
조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아야 한다.
성도의 죽음은 아름답고, 은혜로와야 한다.
 
4) 포기의 단계 (Depression) : 깊은 우울증이 온다. 남을 원망해 보기도 한다.
아주 포기하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겁니다. 이러한 우울증은 극단적인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놓인 사람의 우울증. 이건 대단히 심한 것입니다. 이것을 잘 넘어서야 됩니다.
잘 통과해야 됩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남을 원망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히게 됩니다.
 
5) 받아들이는 단계(Acceptance) : 이제는 할 수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깨끗하게 순응을 합니다. 받아들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준비하세요. 없을 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올 것이 온 것뿐이오. 문제는 죽음을 부정하려고 드는 그 마음 자체에서 고민이 오는 겁니다.
 
죽음의 5단계 : 부정분노흥정포기받아드리는 단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가까워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어떻게 준비하라고 했나요?
 
철학자 하이데커'던져진 생()이다.' '주어진 생' 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주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부정하려들지 마세요.
긍정하되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는 거요. 그게 중요하고요.

또 하나는 나 자신을 예외시하지 마세요.
건강하니, 뭐 젊었느니, 일이 많으니, 공부를 많이 했고, 준비를 많이 했고……
쓸데없는 말하지 마시고요. 나를 예외시하지 마세요. 다 가는 길에 나도 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이 언제라 생각해도 좋아요.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이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죽음을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 은 로마서 1312에서 말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 의 옷을 벗어라."
분명히 낮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각합니다. 밤이 밤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이 밤 뒤에는 아침이 오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아침을 바라보며 밤을 극복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 날은 어두움이 아닌, 광명한 아침이다. 부활의 날이다.
 
(예화) 우리나라에서 한 때, 참 많은 존경을 받고, 그리고 도승이라고도 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학승이라고도 하던, 성철스님이라고 있다
그에 대해서 쓴 책에 '우리 옆에 왔던 부처'라고 하는 책을 이청스님이 썼습니다
이 책에 나온 얘기를 그대로 읽는 겁니다. 이것은 '열반송'입니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을 여기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니 한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있다."
이게 성철 스님의 말입니다. 그가 어떻게 도를 닦았든 말았든 마지막 말은 이렇게 합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는 대로 헬렌 켈러 여사는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입니다.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살았습니까만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헬렌 켈러 여사는 세상 떠날 때
", 나의 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말하고 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해야합니까?
 
그래서 그 날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에서는 다음 몇 가지를 권면합니다.
1) 소망을 굳게 잡으라 (23절 하) 는 것이다.
우리는 그 끝 날을 봅니다. 그러나 그 끝은 다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시작입니다.
그 다음 세상이란 우리에게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요,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허무함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고, 영생의 기업을 바라보며 삽니다.
성경 어디든지 읽어보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보세요. 전부가 하늘나라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순교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에게 .... 그 복이 다 무얼 말하는 겁니까? 하늘나라의 복을 말하고 있다. 그런고로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
이 기본적인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아라고 말씀합니다.
 
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24)
서로서로 격려해서 이제는 사랑하고 착한 일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한 일만 남았어요.
그러면, 최고의 선행이 무엇입니까? 구제도 좋지만, 복음 전해서 예수 믿게 하는 일입니다.
나로 인해서 사랑하게 되고, 나의 선행을 통해서 불신자들이 예수 믿게 되고, 구원받게 하는
그런 일을 서로 서로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3) 끝으로, 모이기를 힘쓰라. (24절하)
이것은 사도행전 246절에서 봅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 성령이 충만할 때, 그들은 주님의
재림을 바로 의식하면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도들이 교제를 나누고, 봉사했습니다. 모이기를 힘쓰라.
과거에 모이던 것보다 더 열심히, 그 날에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다.
열심히 모여 예배하며, 합심해서 기도하며, 주님을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예화) 피터 마샬 목사님이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간증합니다.
남편 마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날 때 그는 사모님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하더랍니다. See You again, tomorrow morning.
이 한 마디가 그 마음속에 큰 충격이 됐어요. 그 때 그 영감을 얻어서 그는 미국의 베스트
작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한 마디,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말이며, 또한 우리가 들어야 할 말 입니다.

(결 론)
그 날을 보십니까? 그 날을 믿습니까? 그 날의 내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 것 같습니까?
당신의 최우선 순위 : Priority number(#) 1 이 뭡니까?
오늘도 그 날(D-Day)을 바라본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말합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있다고, 그는 하나의 군인으로, 하나의 경기자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내 앞에 면류관이 있다고,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이 면류관이 주워 질 거라고……."
이렇게 내다보며 그는 마지막을 갑니다.
 
새 아침을 믿습니까? 그 날을 믿습니까? 그 날이 성도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그 날은 오늘의 의미를 주는 날이다. 바울은 그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도 이길 수 있었. 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겁니다.
그 날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슬기롭게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2020년 4월 28일 화요일

임마누엘의 신앙


성경 : 이사야 7:13-14
제목 :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삽시다.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은 1:23에서 다시 그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상징적 이름이다. 별명이다.
: 내 곁에. 마누: 우리와 : 하나님 이란 말이 합쳐진 단어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 가까이 계신다. God be with us.
하나님은 멀리 높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시고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말이다.
 
집에서도 함께 하여 주시고, 사업장에서도 함께 하여 주시고, 여행 중에서도 함께하여 주시고, 잠 잘 때에도 함께하여 주시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도, 건강하고 평안할 때에도 같이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이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믿는 사람과 하나님이 가까이 나와 함께 계시다고 믿는 사람과는 차이가 크다. 삶의 평안의 차이도 크고, 일할 때 능력의 차이도 크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놀랄 것도 없으니,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다니엘, 사도바울에게 .... 나타나셔서 
이 약속을 주셨다
(부자 되게 해 주겠다. 건강, 장수, 명예, 권력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직 너를 떠나지 않고, 너와 함께 해 주겠다는 축복이다.

(예화) 어느 시골에 효자가 살았다. 소문이 퍼져서 임금님 귀에 들렸다.
임금님이 찾아 오셨다. 그리고 네 소원이 무엇이냐?
저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임금님께서 1년에 한번씩만 저희 집에 방문하여
하룻 밤만 함께 지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마 ! 약속하고 임금님이 떠나셨다.
그 때부터 그 집이 달라진다. 마을에 도로 공사가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와서 굽실 거린다. 왜요? 임금님이 찾아오실 가정이니까.
 
또 지나간 1년을 뒤 돌아보면 기쁠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다.
위험스런 일도 있었고, 낙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지켜 주셨다고 하는 고백이
임마누엘의 신앙 고백이다.
 
() 사건 사건이 지나간다. 그러나 임마누엘 신앙으로 보면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다고 깨닫게 되면 거기에는 뜻이 있고, 감사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이 바로 임마누엘이었다.
임마누엘 : 언제 들어도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언제 들어도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언제 들어도 용기와 기쁨을 주는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신학적으로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구속의 뜻이 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이다.
 
2) 보호의 뜻이 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여 주시사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도 계시고, 교회 밖에도 계시고 어디서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고백하며 살았다.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121:5-8)
 
그러므로 구속과 보호 얼마나 좋은 말씀인가요?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심을 체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언제나 동행하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눈 감고 기도할 때마다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려울 때에도, 기쁠 때에도 함께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쁠 때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때이고, 슬플 때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줄로 안다면               오해이다그렇다면 잘못된 신관이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늘 함께하여 주셨다.
요셉과도 함께 하여 주셨고, 다윗과도 늘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함께 하여주셨다.
신약시대에서는 직접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병든 자의 고침이 되시고, 슬픈 자의 위로가 되시고, 죄인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
 
(예화)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다에 비유한다
        그래서 고해와 같은 인생이라고 한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이와 같이 인생의 바다를 향해 할 때, 내일 일을 모른다. 미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바다 속에 암초가 있고, 큰 빙산이 있다. 높은 파도와 태풍이 불어 닥칠 수 있다.
(예화) 1922년 큰 초호화판 유람선 46,000톤의 타이타닉 배가 빙산에 부닥쳐서 
        1,513명이 죽었.
 
(예화) 사도행전 27: 사도바울이 배를 타고 그레데항구를 떠나 로마로 이송되어 갈 때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14일간 표류하다가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여 목숨 건진 사건이 있다.

풍랑이 이는 위험한 바다에서 임마누엘 신앙과 약속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위험한 바다를 항해 할 때 내 지혜로 됩니까? 내 능력으로 됩니까? 내 기술로 됩니까? 안 된다
인생의 풍랑이 일어날 때 임마누엘의 신앙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야 한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여기서도 배가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배는 양심을 버림으로 믿음의 배가 파선되었다고 했다.
 
(예화) 하나님이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부르신다. 가라 내 백성을 구원하라.
모세가 대답합니다. 하나님 저는 못갑니다. 저는 말도 잘 못합니다.
저는 성격도 소심하고, 혈기도 많습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해 주셨습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가 바로 이러한 임마누엘의 신앙의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백성을 영도했던 것이다.
 
또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모세가 죽은 후에 겁이 났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주신 말씀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1:8)
 
하나님은 아직 나이가 어린 예레미아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립니다. 미숙합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의 대답을 똑 같았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여야 합니다.새 해의 사업도 두렵고, 건강도 미지수입니다. 자녀 문제도 미지수입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지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 일을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하루 앞을 내다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 필요한 신앙은 오직 임마누엘 신앙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는 신앙이다.
 
두렵습니까? 임마누엘의 신앙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살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임마누엘의 신앙보다 더 복된 것은 없다.
임마누엘의 신앙은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힘이 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길을 잃었을 때에는 인도자가 됩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삼상 7장에는 에벤에셀의 신앙이 나온다.
장소적으로는 여기 까지 도우셨다는 말이고, 시간적으로는 지금까지 도우셨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블렛셋 나라와 전쟁이 있었다.
도저히 이길 힘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다.
그래서 돌을 하나 세우고 붙이 이름이 에벤에셀이라는 돌이다.
 
지난 1년 동안 희노애락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이시고, 임마누엘이십니다. 에벤에셀에도 임마누엘의 뜻이 들어 있다.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창세기 22장에는 여호와 이레 도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받쳐야 했다. 산에 올라가는데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나무와 불은 있는데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아브라함과 이삭은 <여호와 이레>의 은혜로 아들 이삭을 대신
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수풀에 걸린 수양을 잡아 드렸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필요를 다 준비해 놓았노라.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에벤에셀로 여기까지 도우셨고 지금까지 도우셨고,
임마누엘로 지금도 함께하여 주시고, 장래에는 여호와 이레로 모든 것을 준비하여 주십니다.
 
(예화) 찬송가 524랜킨목사님이 제일회중교회에서 목회할 때 작시한 것이다.
작곡은 토머라는 분이 작곡했다.
우리 다시 만날 때 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신다는 사실을 노래하는 이 찬송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찬송은 없을 것이다.
 
1)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 주시기를 바라네
2)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간 데마다 보호하며 양식 주시기를 바라네
3)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위태한 일 면케 하고 품어 주시기를 바라네
4)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사망권세 이기도록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후렴)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온다.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 앞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네.
먼 훗날 주님 앞에 설 때 까지,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Good Bye = God be with you.(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의 준말이다.
 
(결 론)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복된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성도님들의 심령과 가정과 우리 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새해에도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