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10:19-25
제목 : 오늘과 그 날 (Today & That day)
12월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금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시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예화) 이솝우화 이야기 : 사자, 당나귀, 여우 ... 사냥을 나가서 먹이를 잡아왔다.
당나귀보고 네가 나누어 보아라. 정확히 3등분하였다. 그랬더니, 사자가 화가 나서 그래도
내가 명색이 사자인데 너와 내가 똑같이 나누다니 괘씸해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여우에게 나누어 보라고 했더니, 여우가 하는 말이 사자님 뭐 그렇게 나눌 것 있습니까? 사자님이 잡수시고 남은 것이 있으면 제가 먹겠습니다.
너 참 똑똑하구나 그런 지혜를 어디서 배웠느냐?
앞에서 당나귀가 죽을 것을 보고 배운 것이다
지혜자는 남들을 보면서 자기를 봅니다.
남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본다. 남들이 교통사고 나는 것을 보면서 조심한다.
옆집에 불이 났으면, 나의 집도 불나지 않도록 불조심하는 사람이 지혜자이다.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점이 있다. 미련한 사람은 :
1) 타인 주도적인 삶을 산다.
자기 주관이 없다. 남에 의하여 살아간다.
기쁨도 내 기쁨이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 에 신경을 많이 쓴다.
2) 과거 지향적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여 산다. 이미 끝났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젊음, 둔자는 끝난 일에 연연한다.
사람은 살다보면 실패한 때도 있다.
재산도, 명예도, 건강도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 때 잃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 때 얻은 것이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돈은 잃었으나, 지혜를 얻었다. 명예를 잃었으나 겸손을 얻었다.
건강을 잃었으나 믿음을 얻었다. 사업에는 손해를 보았으나, 양심을 얻었다면,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잃은 것이 있으나, 그로 인하여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3) 현재만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만 살고 말 것인가? 오늘만 있나요?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
젊을 때가 있나요? 노년기도 있다. 지혜자는 노년을 준비한다.
또한, 이 세상의 삶이 있지만, 저 하늘나라의 삶도 있다.
내세를 준비하며 살아야 참 지혜자이다.
4) 더 중요한 일이 많이 있건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신경을 쓰고 시간과 정욕을 낭비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나, 지혜자는 반드시 일어날 그 일을 준비하며 산다.
내 생애에 반드시 일어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25절을 보면 “그 날” 이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오늘(Today)이고, 그 날(D-day)이 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이것을 “Today & That day”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이 가까움을 본다고 했다.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 날이란 무슨 날인가? 그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살지만, 그 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다.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역사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세상 끝이 있다는 말이다.
시간관, 역사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윤회적인 시간관 :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어떤 정해진 싸이클에 의해서 돌고 돈다.
불교에서는 윤회적 시간관을 갖고 있다.
생노병사(生老病死) : 출생 ➡ 늙고 ➡ 병들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온다. 그러나, 다시 봄이 오지만, 같은 봄은 아니다. 같은 여름도 아니다.
2) 일직선상의 시간관 : 역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시간관이다.
알파와 오메가가 있다. 인류 역사를 끝내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요. 시간관이요, 역사관이다.
성경의 핵심 교리는 그 날, 주의 날에 있다. 역사는 주님의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날은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이요. 심판의 날이요. 또한, 구원의 날이다.
사도신경 :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다.
그 날은 숨겨져 있다. 감추어진 비밀의 날이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신비 속에 있다.
성경은 이 날에 대해서 선포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 날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으면 성도가 아니다.
(행 1:9-1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막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반드시 불신자에게는 심판자로,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천사자의 나팔소리와 함께 올리우심을 본 그대로 영광가운데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그 날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서는 날도
주의 날이다. 개인 개인이 죽은 후에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는 날도 그 날이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 (Elisabeth Kubler-Ross) 그는 600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심리”를 연구했다. 'On Death and Dying' 이란 책을 썼다.
당신은 이제 한 달 안에 죽습니다고 하면 : 나타나는 반응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 죽음이 5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1) 부정의 단계(Denial and Isolation) : No. 죽음을 부정한다.
아니 내가 죽다니 말도 안 된다. 의사의 오진일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 명예도, 내 가족도, 내 재산도 다 두고 가야 하겠구나 ...
2) 분노의 단계 (Anger) : Why me?
왜 나냐? 하필이면 나냐? 죽을 인간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다. 젊었다 해도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으면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죽음은 현실적 사건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실체이다.
3) 흥정의 단계(Bargaining) : 의사를 바꿔 본다. 다른 병원에도 가본다.
수술을 받아 볼까? 한(韓)의사를 만나볼까? 불쌍해지고 보기가 딱해진다.
의사에게 매달려 보아도 소용없다. 그 의사도 때가 되면 다 죽는다.
아무리 죽기 싫어도 지금은 떠날 때다.
사도 바울은 죽음 앞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딤후 4:6)
조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아야 한다.
성도의 죽음은 아름답고, 은혜로와야 한다.
4) 포기의 단계 (Depression) : 깊은 우울증이 온다. 남을 원망해 보기도 한다.
아주 포기하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겁니다. 이러한 우울증은 극단적인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놓인 사람의 우울증. 이건 대단히 심한 것입니다. 이것을 잘 넘어서야 됩니다.
잘 통과해야 됩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남을 원망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히게 됩니다.
5) 받아들이는 단계(Acceptance) : 이제는 할 수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깨끗하게 순응을 합니다. 받아들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준비하세요. 없을 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올 것이 온 것뿐이오. 문제는 죽음을 부정하려고 드는 그 마음 자체에서 고민이 오는 겁니다.
죽음의 5단계 : 부정→ 분노→ 흥정→ 포기→ 받아드리는 단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가까워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어떻게 준비하라고 했나요?
철학자 하이데커는 '던져진 생(生)이다.' '주어진 생' 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주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① 다가오는 죽음을 부정하려들지 마세요.
긍정하되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는 거요. 그게 중요하고요.
② 또 하나는 나 자신을 예외시하지 마세요.
건강하니, 뭐 젊었느니, 일이 많으니, 공부를 많이 했고, 준비를 많이 했고……
쓸데없는 말하지 마시고요. 나를 예외시하지 마세요. 다 가는 길에 나도 가는 것이다.
③ 또 하나는 그것이 언제라 생각해도 좋아요.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이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죽음을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 은 로마서 13장 12절에서 말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 의 옷을 벗어라."
분명히 낮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각합니다. 밤이 밤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이 밤 뒤에는 아침이 오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아침을 바라보며 밤을 극복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 날은 어두움이 아닌, 광명한 아침이다. 부활의 날이다.
(예화) 우리나라에서 한 때, 참 많은 존경을 받고, 그리고 도승이라고도 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학승이라고도 하던, 성철스님이라고 있다.
그에 대해서 쓴 책에 '우리 옆에 왔던 부처'라고 하는 책을 이청스님이 썼습니다.
이 책에 나온 얘기를 그대로 읽는 겁니다. 이것은 '열반송'입니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을 여기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니 한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있다."
이게 성철 스님의 말입니다. 그가 어떻게 도를 닦았든 말았든 마지막 말은 이렇게 합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는 대로 헬렌 켈러 여사는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입니다.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살았습니까만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헬렌 켈러 여사는 세상 떠날 때
"아, 나의 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말하고 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해야합니까?
그래서 그 날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에서는 다음 몇 가지를 권면합니다.
1) 소망을 굳게 잡으라 (23절 하) 는 것이다.
우리는 그 끝 날을 봅니다. 그러나 그 끝은 다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시작입니다.
그 다음 세상이란 우리에게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요,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허무함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고, 영생의 기업을 바라보며 삽니다.
성경 어디든지 읽어보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보세요. 전부가 하늘나라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순교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에게 .... 그 복이 다 무얼 말하는 겁니까? 하늘나라의 복을 말하고 있다. 그런고로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
이 기본적인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아라고 말씀합니다.
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24절)
서로서로 격려해서 이제는 사랑하고 착한 일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한 일만 남았어요.
그러면, 최고의 선행이 무엇입니까? 구제도 좋지만, 복음 전해서 예수 믿게 하는 일입니다.
나로 인해서 사랑하게 되고, 나의 선행을 통해서 불신자들이 예수 믿게 되고, 구원받게 하는
그런 일을 서로 서로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3) 끝으로, 모이기를 힘쓰라. (24절하)
이것은 사도행전 2장 46절에서 봅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 성령이 충만할 때, 그들은 주님의
재림을 바로 의식하면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도들이 교제를 나누고, 봉사했습니다. 모이기를 힘쓰라.
과거에 모이던 것보다 더 열심히, 그 날에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다.
열심히 모여 예배하며, 합심해서 기도하며, 주님을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예화) 피터 마샬 목사님이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간증합니다.
남편 마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날 때 그는 사모님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하더랍니다. See You again, tomorrow morning.
이 한 마디가 그 마음속에 큰 충격이 됐어요. 그 때 그 영감을 얻어서 그는 미국의 베스트
작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한 마디,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말이며, 또한 우리가 들어야 할 말 입니다.
(결 론)
그 날을 보십니까? 그 날을 믿습니까? 그 날의 내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 것 같습니까?
당신의 최우선 순위 : Priority number(#) 1 이 뭡니까?
오늘도 그 날(D-Day)을 바라본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말합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있다고, 그는 하나의 군인으로, 하나의 경기자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내 앞에 면류관이 있다고,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이 면류관이 주워 질 거라고……."
이렇게 내다보며 그는 마지막을 갑니다.
새 아침을 믿습니까? 그 날을 믿습니까? 그 날이 성도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그 날은 오늘의 의미를 주는 날이다. 바울은 그 날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도 이길 수 있었다. 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겁니다.
그 날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슬기롭게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