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3일 목요일

그리스도인의 능력(2): 감사의 능력

성경 : 빌립보서 4:11-13
제목 : 그리스도인의 능력(2): 감사의 능력
 
지난 주일에는 믿음의 능력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그리스도인들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신앙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믿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능력 가운데 :
첫째는 : 자기를 보는 능력이라고 했다.
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다.
여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은
둘째로 :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능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없는 수수꺼끼 같은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하며 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과 성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산다. 믿는 사람들은 말씀의 지배를 받고 산다.
불신자들은 본능에 의해 살지만, 성도들은 성령에 의하여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분에 따라 살지만, 신자는 말씀에 의하여 산다.
 
누가 믿음이 좋은 사람인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누가 믿음이 안 좋은 사람인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불평하고 원망하고,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에는 짝이 있다. 음식에도 짝이 있고, 옷에도 짝이 있다.
영적 세계에도 짝이 있다. 믿음의 짝은 감사이다. 불신앙의 짝은 불평과 원망이다.
 
성도들의 능력이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그 자리가 죄 짓는 자리가 아닌 한, 범사에 감사하는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는 풍부에도 처 할 줄 알고, 비천에도 처 할 줄 아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풍부에 처하는 능력 - 물질의 풍요함과 편안함, 잘 먹고 잘 살게 될 때에 타락하지 아니하는
능력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 청교도 신앙적 뿌리를 둔 미국이 풍부에 처할 줄 몰라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니까
향락 문화에 젖어 들어가서 향락만 찾아갔지,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하고 예배하지 않았다.
풍부해 지니까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청교도 자식들이 교회에 나오질 않습니다.
큰 축복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가난 할 때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난을 벗어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의 능력이란 물질의 풍요와 부요 속에서도 신앙이 약해지거나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비천에 처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가난은 참으로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
사도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주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워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비결을 갖고 산 것이다.
 
여러분 ! (사도 바울은 인생을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바울의 마음에는 행복이 있었고, 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성공이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돈 벌고, 출세하고 건강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벌고 출세했어도 그 마음에 행복이 없으면 성공도 아니고,
감사가 있어야 성공이고, 감사가 있어야 참 신앙인입니다.
 
() 종은 쳐서 소리가 나야 종이고, 행복은 감사가 나와야 행복이고 성공이고 믿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건강도 주시고, 병도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건강할 때도 감사하지만, 병들었을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공했을 때에도 감사하지만, 실패했을 때에도 감사할 줄 압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낫는 것도 기적이지만, 멀정한 사람이 병드는 것도 기적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얻을 때만 축복이 아니다. 가진 것을 잃을 때에도 얻는 것이 있다.
사람은 건강할 때만 감사가 아니다.
건강을 잃고서 고난의 때에 믿음도 회복하고, 지혜도 얻고, 겸손도 배우고, 사람도 얻습니다.
감사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사람됨의 인격은 그가 얼마나 감사하느냐? 감사의 정도만큼과 정비례합니다.
높은 인격의 사람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잘 한다.
여러분은 하루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합니까?
소인배나 열등의식이 많은 사람은 감사하다 든가, 죄송합니다는 말을 하면:
자기가 낮아지는 줄로 착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못한다.
인격의 높이는 감사의 높이요. 인격의 넓이는 감사의 넓이요
감사의 높이가 믿음의 높이이다.
 
(예화) 링컨 대통령이 한번은 참모총장에게 실수했답니다. 그래서 메모지를 보냈습니다.
“I am sorry" 그랬더니, 대통령에게 이 멍청한 녀석이라고 했답니다.
링컨 대통령은 걸걸 웃으면서, 그 사람, 사람 볼 줄 아는 구만!” 그러더랍니다.
얼마나 높은 인격의 사람인가?
 
감사는 율법적 세계관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다.
율법적 세계관은 항상 수고와 댓가로만 계산하고 생각한다.
 
(예화) 샹하이에 한국 여자와 사는 중국남자들이 많다.
중국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밥해 준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편에게 밥해 준다.
이 두 사람들은 항상 행복해 한다.
남자는 내가 할 일을 여자가 식사준비해서 기다려 주니 감사하고, 여자는 가끔씩 남자가
밥해 주니 감사하고 ... 서로 서로 은혜의 관계로 살아간다.
은혜는 모든 일에 감사하게 만든다.
 
행복의 지수에 대하여 사회 심리학자들이 조사했다.
행복을 스스로 느끼는 정도 : (행복 지수)
1위가 방글라데쉬, 46위가 미국이랍니다.
행복의 지수는 잘 살고 못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감사와 행복은 물질적 조건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오히려 잘 살수록 불평이 많아진다. 불행지수가 높아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건과 환경에 상관없이 오늘 이대로가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이라고
신앙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 론)
자기를 바라 볼 수 있는 능력,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죄인 인 것을 깨닫고 참회록을 썼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면 은혜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니, 이제는 모든 것에서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범사에 은혜를 주신다.
원망하는 사람은 항상 원망하고, 은혜의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산다.
범사에 감사할 때 여기에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능력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능력이다. (기 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