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5일 토요일

범사에 감사하려면...


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려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3가지 유형의 있다.
1) 채권자 유형 :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고, 나는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 존경도 받아 마땅하다.
부모님에게서도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미안한 마음도 없다. 고마운 마음도 없다.
당연히 학비, , 용돈, 자동차 ... 사 내놓으라는 것이다. 안 사주면 불평한다.
채권자 유형의 인간이다. 고맙고 감사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유형이다.
 
2) 고립식 유형 : 받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남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도움 주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생각도, 결정도, 행동도 ... 다 자기 중심적으로서 이웃과 단절된 삶의 유형을 가진다.
이런 사람은 이웃과 왕래가 없으니, 친구도, 친척도 별로 없다.
이웃과 단절된 삶의 유형이다.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이다.
 
3) 채무자 유형 : (쉬운 말로 하면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은혜 중심형의 사람이다. 사랑을 느끼며 살고, 은혜를 알고 산다.
자신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고 있다고 안다. 고마움 속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부모님의 사랑도 은혜요. 스승의 가르침도 빚진 것이요.
가족도 이웃도 국가도 교회도 모두가 나에게는 은혜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당신은 어느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은 은혜 중심의 사람이 될 때 인간은 행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모든 은혜를 항상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은 것을 감사할 때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스펄쳔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촛불을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을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면 촛불도 등불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의 빛을 
주신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언제나 함께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감사라고 하는 친구이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감사라는 친구와 잘 사귀어야 한다.
 
본문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좋을 때만 아니라, 슬플 때에도, 감사하고,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참 신자의 모습이 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의 측정기는 감사의 도수로 측정할 수 있다.
감사의 도수가 높으면 신앙도 좋은 것이고, 원망과 불평이 많으면 신앙도 안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
1)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은혜를 은혜로 깨달아야 감사할 수 있다.
Thank Think에서 온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은혜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은혜이며, 감사의 조건일 뿐이다.
깨달은 만큼 감사하고 감사한 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예화)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여기 있다.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토지가 나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공산세계에는 두 가지가 없다. 믿음이 없고 감사가 없다.
공산세계는 믿음이 없다. 아무도 안 믿는다.
서로 서로 믿지를 못해서 항상 감시자가 따라 붙는다. 불신의 세상이다.
또 하나는 감사가 없다. 무엇을 도와주어도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감사하지 않는다. <정말 고맙습네다> 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고 한다.
모든 것이 투쟁이고 쟁취를 통해서 얻은 것이니, 감사가 없다.
빼앗은 것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받은 바를 아는데서 감사가 시작되는데, 받은 것은 없고, 모든 것이 혁명과 투쟁으로
빼앗은 것이니 감사가 없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받은 것인 줄 알 때, 감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과 감사는 정비례한다.
은혜를 모르니 감사가 없고, 감사가 없으니 행복도 없다.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그 은혜를 느끼면서 감사하고,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인간다운 자세요, 신앙인이 신앙인다운 모습이다.
사람은 깨달은 만큼 감사한다. 깨달음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다.
아무리 받은 것이 많아도 깨달음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다.
단 돈 1불을 받아도 감사할 때 행복하고 백만불을 받아도 감사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고,
)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 보다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할 것이고,
)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 보다는 받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할 것이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별로 수고 하지도 않았으나 오늘날 내가 받은 것은 많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화) 메튜 헨리 (성경 주석가) 강도 만나 돈 빼앗기고 나서 하나님께 5가지 감사했다.
1) 전에도 강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이번에 처음 강도당한 것 감사.
2) 돈은 빼앗겼으나, 생명 지켜 주신 것 감사.
3) 나 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 감사
4) 내가 강도 아닌 것 감사
5)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주신 것 감사.
 
(예화) 어떤 성도가 위암 수술 받게 되었다. 수술 전에 기도했다.
지금까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지금 불러 가도 괜찮습니다.
내 생명 연장시켜 주시면 주님을 위해 살고, 데려가시면 천국갈 것이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현재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위암 수술 받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은가?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예화) 실낙원을 쓴 죤 밀톤44세에 실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감사기도 했다.
<내 육신의 눈이 어둡게 됨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는 영안을 밝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이다.
 
2) 본래성을 알고,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겸손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의 본래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북에서 월남 할 때 가지고 온 것이 무엇이 있었나?
미국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교만한 사람들은 감사 할 수 없다. 자기를 특별나게 여기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 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 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핍박자, 포행자, 훼방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요, 죄인의 괴수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다.(3:7)
그러니,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본래성을 알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죽어 마땅한 나를 부르시고, 또한 이방인의 사도로 삼아주시니, 얼마나 그 은혜 감사한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도 감사했고, 순교를 해도 더 영광으로 알았다.
 
(예화) 우리 아버님의 고향은 함경도 함흥이시다. 우리 큰 형님과 큰 누님은 거기 산다.
나도 우리 아버님이 월남하지 못했다면 그 곳에서 태어나 얼마나 고생하면 살았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의 본전은 죄인이고, 지옥가야 마땅한 인간이요, 은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고, 교회의 일군이 되고, 미국까지 와서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예화) 어릴 때, 작은 방에서 4형제가 한 방에서 잠을 자고, 찬 수돗물로 양치질 하고,
아침에 머리감으려 하면 먼저 하던 사람이 머리 헹군물은 남겨 놔야 한다.
아침마다 전쟁이다. 그러던 내가 지금 얼마나 편리하게 살고 있는가? 감사, 감사 뿐이다.
 
본래성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볼 줄 안다.
그래서 겸손하게 되고, 겸손하면 감사하게 되고, 행복하게 된다.
자신의 기준을 낮추어 살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기준을 높여 살면, 웬만큼 있어도 감사가 없고
불평과 불만투성이 뿐이니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겸손을 배우고 자족할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하다.
 
다 자기가 잘나서 된 줄로 아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다.
신세진 것이 없다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예화) 밀레의 작품가운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안에 두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그림이다.
은혜를 아는 농부의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수고 하며, 땀을 흘려도 하나님이 햇빛을 내려 주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지 않으면 농부의 수고가 소용이 없다.
태풍만 한번 불어도 다 날라 간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
 
3) 천국의 소망이 있어야 전천후(全天候) 감사할 수 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감사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다른 것은 없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감사가 있다.
이것이 하박국의 감사이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러한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굉장한 사람이 되거나
위대한 사업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바울 서신을 보면 물질, 건강, 부귀영화로 인하여 감사하라는 말은 없다.
초대 교회 때에 예수 믿는 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이 있었다
그래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육신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다.
 
(결 론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감사 안한다고 벌하는 법은 없다. 그 법이 없는 것은 그런 사람은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에 다시 벌할 필요가 없다> 는 것이다.
감사는 의무도, 조건도 아니다. 더욱이 강요는 더 아니다
감사는 자발적인 것이다. 마땅한 도리라는 말이다
감사 자체가 은혜이고, 행복이며, 축복이다.
감사가 의무가 되면 이것은 율법이지 감사가 아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고,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감사지수가 행복지수이다.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예화) 고용원목사님, 백령도 부흥 집회 차 인천 부두에 가셨다. 배에 소님들이 만원이다.
부흥회 인도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한다. 그런데 인원초과로 사고가 염려되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맨 앞에 서 있는 고목사님과 실랑이를 하다가 목사님이 물에 빠져 온 몸이 젖고
못 가게 되었다. 여관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왜 하필이면 집회 인도하러 가려는 나를 물에 빠지게 했는가? 화만 난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경찰관이 찾아와 말하는 것이다.
목사님, 나에게 감사하십시오. 그 배가 풍랑을 만나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고목사님은 <,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로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께는 영광되고, 더 큰 복을 받고, 행복자가 될 것입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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