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골로새서 3장 15-17절. ♡
제목: 감사 지수는 높을수록 행복하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 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 I.Q 가 있고, E.Q가 있다. 오늘 저는 T.Q를 말하고 싶다.
감사 지수는 높을수록 행복한 자입니다.
감사 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행복은 정비례하는 것이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 100만불 짜리 저택에서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칸방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눈만 뜨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그 입에서
찬송이 나올 정도로 주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을 가지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왜 감사해야 합니까?
1)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감사해야 될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감사란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혼자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까지는 믿음 아닙니다.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 만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옵니까?
"하나님, 제 앞길 캄캄하지만 주님이 제 앞에 있는 구름을 걷어내고 어둠을 쫓아 주실 날이
올 줄을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시고, 이런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의 믿음은 알아줘야 합니다.
이와같이 감사하는 것 만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느 정도 믿고 계십니까? 감사하는 것 만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게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주신 선물을 받는 손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으면서 입으로 나오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예) 아무리 장작을 많이 쌓고 석탄을 많이 채굴해도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닙니다.
종은 칠 때까지는 쇠붙이입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만 사랑입니다.
이와같이 감사가 표현할 때까지는 아직 믿음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대답입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감사를 시작 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믿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2) 감사는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에 감사라는 단어에는 'remember'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 영어에서 Thank 와 Think 는 어원이 같다고 한다.
이 말은 사람이 기억한 만큼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시편 103편 2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예) 시골에 한 머슴이 있었다. 그는 늘 산에가서 나무를 해왔다.
그런데, 종을 의심은 주인은 산에 뒤따라 올라 갔다가 곰이 나타나 죽게 되었다.
“퍽” 소리와 함께 곰이 죽었다. 그 머슴 때문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곰을 끌고 와서 시장에 나가 팔게 되었다.
돌아와 하는 말 : 너 때문에 그 곰 등어리에 도끼 자국 때문에 돈을 많이 못받게 되었다고 불평했다니 은혜를 잊어버린 자의 말이다.
감사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그 분이 내게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그것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배은망덕이지요.
나는 그처럼 애쓰고 수고했는데 상대편이 잊어버리면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망덕입니다. 감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어려움에서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 사건들은 눈앞에 지나가는 해프닝입니다. 사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께서 무슨 일 하셨는가를 기억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님은 그 사건 속에 계신 임마누엘이십니다. 감사를 해 보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그 사건과 함께 계셨고, 그 분이붙잡고 계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민족과 가정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내 개인의 삶 속에 함께 하신 그 축복들을 헤아려가면서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3) 감사는 교만에서 구해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감사는 인생을 멸망시키는 교만에서 구해줍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교만은 필망(必亡)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말씀했습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법칙입니다.
교만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 교만의 시작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에덴동산, 거기에 거칠 것 없이 뛰노는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이 찾아와서
"너 이것 먹기만 하면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덜컥 먹었습니다.
그 교만의 뿌리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하나님의 사람은 교만이 원죄라고 말합니다.
정말 교만을 이기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듭니다.
(예) 열왕기상, 하에 나오는 훌륭한 왕들도 성공하고는 꼭 망하더라구요.
히스기야가 죽을 지경에 하나님 앞에 목숨 건 기도를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15년을
더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저 같은 놈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좀 이상하고 죄송스럽긴 합니다만 제가 그 성경을 보면서 히스기야가 차라리 15년 안 살았으면 참 좋은 왕으로 끝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어느 것이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히스기야의 생애를 보면 생명 연장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것이 더 축복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실패의 쓴잔을 통해서 더욱 축복하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을 주셔서 망하게도 하십니다. 그런고로 두려워해야 됩니다.
주께서 주시는 성공을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돌려야 됩니다.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돈이 많든지, 사회적인 신분이 높아지면 교만하다가 생애가 끝납니다.
전부 '나 잘났다'는 말 뿐이예요.
그리고 이 교만은 항상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편을 깎아 내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 교만에서 늘 승리합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로 쫓길 때에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쫓겨다닙니다만 그러나 주께서 나를 처음 붙잡아주셨던 그 은혜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손을 바랍니다. 그리고 국가를 크게 통일해 놓고도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길래 저 푸른 목장에서 나를 부르셔서 이곳에 인도하셨습니까?" 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삼하 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심지어 다윗은 임종의 기도를 봐도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고 무엇이길래 이 푸른 초장에서 천한 목동 신분을 부르셔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생애를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에 눈을 떼지 않고 기억하면서 평생 감사했다.
하나님을 보고 있는 한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 한 '나 잘났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공할 때만이 아니라 실패할 때도, 기쁠 때 뿐 아니라 쓰라린 감정과 생애의 깊은 좌절과 고통을 맛볼 때에도 감사하게 합니다.
(예) 다이멘이라는 사람, 나환자촌에 복음 전도하러 갔다가 그들이 복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도 나병에 전염되었습니다. 자기가 나환자 된 것을 발견하자
그는 뛰어나와서 외칩니다. "형제들이여, 나도 당신들과 같이 되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과 똑같은 인생으로 만들어주셨다."고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의 신앙심이 놀랍습니다.
그는 뛰어나와서 외칩니다. "형제들이여, 나도 당신들과 같이 되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과 똑같은 인생으로 만들어주셨다."고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의 신앙심이 놀랍습니다.
(예화)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문
우리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문을 지금 이 시간에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분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1년 반 밖에 형기가 아니었는데 형기 마친 다음에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그 분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1945년 8월 20일 지나서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15일날 해방이 되어 감옥 문이 열려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서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이인제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11장을 설교했습니다. 순교자가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찬송 드리며 탄원하는 기도를 읽으면서 설교했습니다. 약사, 애도사, 찬양이 이어지고 드디어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쓰시고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 양아들 삼기 전입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열번째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감사이다.
불신앙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교만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감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추수감사절에 진정한 감사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 우리나라에 영감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송명희 씨를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만히 음미를 해 보십시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예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런 수준에 저 자신이 도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수준에까지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자기 뜻대로 다 소원성취 하는 사람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진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누구하고 다릅니까? 세상 사람하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이 심합니다. 불평은 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계속 감사가 나옴으로써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감사가 없습니까?
그러면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4) 끝으로, 우리는 감사하는 것 만큼 강해집니다.
가끔 보면 교회 안에 천성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보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어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저 자신이 자주 도전을 받습니다.
"목사님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실 말이 아닐 것입니다. '복은 무슨 복인가?' 우리는 당장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ㄱ) "우리 애 때문에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모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 아빠가 예수 믿고 돌아왔습니다. 아마 애가 저러지 않았으면 아빠는 예수 안 믿었을 것입니다.
ㄴ)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ㄷ) 우리 애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 만큼 강한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누가 이 사람을 꺾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 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좋아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 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세상 사람 앞에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가 이런 멋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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