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3일 목요일

그리스도인의 능력(3) 용서의 능력


성경 : 에베소서 4:30-32
제목 : 그리스도인의 능력(3) 용서의 능력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축복과 능력이 많이 있습니다만,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용서의 능력은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선, 용서의 문제에 있어서 그 전제가 있습니다.
용서란? 나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때 그 용서는 하루에 707번이라도 용서해 주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가끔은 무분별한 용서로 세상에 악이 키워지는 경우가 있.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나의 용서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때는 용서를 얼마든지 해도 좋다.
그리고 용서해 주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숙제요 문제이다.
 
(예화) 오래 전에 한국에서 큰 어르신 목사님이 계셨다. 1950년대 초이다.
그러니까 6.25사변 일어나가 바로 직전이다. 그는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 결혼 초에
미국에 유학 오신 것이다. 3-4년을 계획하고 미국에 유학차 왔다.
그러나 영어 미숙으로 10년이나 흘러서 박사가 되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아기가 하나 있다. 아기 나이가 3살이다.
10살이면 말이 되는데 아이가 3살이다. 여러분! 이럴 때 목사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치가 있다. 그리고는 이 목사님은 그 아기를 탁 - 품에 안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내게 주신 이 아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이 아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목사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는 그 아이를 보면서 누구의 아이냐? 묻는 사람이 없도록 사랑과 믿음으로
훌륭하게 잘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아들은 Doctor가 되어서 한국 의학계에
큰 공헌을 하는 의학 박사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
용서는 자기의 아픔을 겪는 것입니다. 아픔이 없이 어떻게 용서가 되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것 때문에 용서가 된 것이고, 우리는 용서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용서한다면서 복수합니다. 용서는 자기의 아픔이다.
용서는 무한한 자기의 아픔을 겪는 것이다.
용서가 우리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하고,
은혜를 구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배시간에 은혜도 많이 받고, 성경공부 해서 말씀도 깨닫고, 철야기도까지 했는데...
나가서 용서 못하면 그것이 무슨 능력입니까?
생활로는 하나도 연결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으며
전도의 문이 열리겠으며, 사회개혁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만명이 모이면 뭘 합니까?
내 생활에서 능력으로 연결되어 나갈 때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자. 사랑 사랑 ... 말은 많이 합니다.
사랑이 뭔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Because of Love : ... 때문에,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다.
2) in Spite of Love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나 사회에서 크리스챤의 인간관계의 사랑을 연결하는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다양한 창조를 하시고, 조화를 보시고,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더라고 했다.
어떻게 똑 같은 사람을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나? 하나님은 다양성의 조화를 좋아하신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사랑할 수 있다.
얼굴도, 성격도, DNA도 다르고, 지문도 다르고, 걸음걸이도 다릅니다.
쌍둥이로 태어나도 다르다.
문제는 다른 가운데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화) 교회 안에는 이상한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어느 날 설교가 끝나고 나니까?.... 목사님을 꼭 만나야 하겠다고 한다.
저를 보는 순가 ... 국회의원 출마하듯이 찾았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남가주 일대를 찾아 다녔습니다.
, 그래요, 감사합니다. 남가주 일대를 찾아 다녔답니다.
그런데 오늘 찾았습니까? , 오늘 찾았습니다. 그럼 다음 주일에 또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주일에는 또 다른 교회가서 똑같이 말한답니다.
아이고, 그런 사람도 있구나, 사랑스럽다. 이 사람은 돌아다니는 은사가 있다.
다양한 성격을 이해하고 보니까? 사랑스럽다. 돌아다니는 은사가 있다.
다양한 성격을 이해하고 보니까? 사랑스럽다.
 
(예화) 예배 시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늦게 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날마다 늦게 오는가? 그 사람만 들어오면 다 온 것이다.
물어보면 : 축도 받는 은사가 있답니다. 교회 아예 안 나오는 분보다는 낫지 않은가?
저런 교인도 있는 것이다. 인정하고 나니까 미운 마음이 사라진다.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 그것을 고쳐 주려고 하다보면 내 속만 상하지 안 된다.
 
(예화) 당신은 목사에게 하드 타임 주는 교인이요.
꼬치 꼬치 묻고, 검찰 조사하는 사람처럼 ... 그러면, 저 분 생각은 그렇구나
 
교회도 다양하고 목사님들도 다양하다. 다양성을 봐야 한다.
손벽 치기를 좋아하는 순복음 교회 같은 교회도 있고,
조용하고 경건하게 예배하기 좋아하는 장로교회도 있다.
어느 교회는 이 두 가지를 짬뽕한 교회도 있다.
어떤 교회가 부흥된다고 해서 따라가고 흉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각 교회의 형편이 다르고, 목회자가 받은 은사도 다르다.
음악 잘하는 목사도 있고, 음치 목사도 있다.
길 잘 찾는 목사도 있고, 늘 헤메는 목사도 있다.
영어 잘하는 목사도 있고, 영어 못하는 목사도 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툭하면 금식 기도 잘하는 교회도 있고, 한끼도 금식 안 하는 교회도 있다.
기도원 자주 가는 교회도 있고, 못 가는 교회도 있다.
이런 교회, 저런 교회, 작은 교회, 큰 교회가 다 모여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 목회자 아내도 다양하다. 건강한 사모님도 계시고, 몸이 약한 사모도 있다.
어떤 교회 사모님은 병 고치는 은사도 있고, 무슨 능력이 많답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위해서 안수 기도해주면 병이 다 낫는 답니다. 병원에 안가도 된 답니다.
예언의 은사도 있답니다. 기도해주면 당신 주유소하고, 당신은 옷가게하면 성공하고,
당신은 세탁소하면 좋고 .... 예언한다. 목회하려면 이런 사모를 얻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어떤 사모님도 예언의 은사 받으려고 산()기도 간다.
 
여러분 !
그런 사모님도 계시고, 멀정한 사람 병나게 하는 사모님도 계십니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예배만 마치면 그냥 집으로 달아 빼는 사모님도 계시고,
온 교회 성도가 다 갈 때까지 기다리는 사모님도 계시고,
아픈 사모님도 계시고, 건강한 사모님도 계시고, 똑똑한 사모님도 계시고, 맹한 사모님도 
계시못 생긴 사모님도 계시고, 잘 생긴 사모님도 계시고,
둥실 둥실한 사모님도 계시고, 날씬한 사모님도 계시고....
이 세상은 이렇게 다양하게 되어있는 것이다고 하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마음이 편안한 것이다.
 
() 어떤 교회의 목사님은 마음이 천사같은 목사가 있다. 마음이 정말 착하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잊어버리는 은사가 있답니다. 하도 잘 잊어버립니다.
옆에서 항상 사모님이 챙겨주어야 한다.
얼마나 잘 잊어버리느냐 하면 성도 가정의 아기 돌잔치도 잊어버려서 성도들이 기다립니.
내 성경책 어디 둔지 몰라서 성경책을 찾아오랍니다.
부활 주일인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세례식 하는 주일에 세례 주는 물을 잊어버려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최초로 맨손으로 세례 주었는데 ...
이것 다시 주어야 하는지를 물어보러왔답니다.
 
여러분 !
세상은 다양성을 인정할 때만 사랑의 관계가 된다.
문제는 왜 나 같지 않은가? 할 때는 사랑의 관계가 연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다 나 같을 수 있는가? 얼굴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자라온 배경이 다르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도 있고, 느른 태 같은 사람도 있고,
하나님은 참으로 다양하게 지으셨도다 하고 이 세상의 꽃도, 과일도, 사람도 바라볼 때
사랑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결 론)
(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
아니하시리라.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오늘 본문이다.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무분별한 사랑이나, 무분별한 용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란 나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그 용서해 주라는 말씀이다.
용서는 자기의 아픔을 겪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아픔이 없이 용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랑은 용서의 뜨락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대빗 헛스 보그 “Freedom of forgiveness" 책에서 :
용서해 주는 사람은 즉, 자기가 이미 손해 본 만큼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용서는 계속적이기 때문에 동일한 댓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용서란 아무 비판 없이 아무 불평 없이 그냥 놓아두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그 날을 기념하면서 예배드리고 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다함께 천국에 가서 영원무궁토록 지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다.
우리가 서로 서로 용서하고 받아주고 사랑할 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축복과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예화) 휴스톤에서 75마일 떨어진 갈베스토 라는 섬이 있다. 좋은 낚시터도 있답니다.
그 섬에 살고 있는 전설의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때만 되면 멸치 봉지를 가지고 나와서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 준다.
그 노인만 나오면 하늘의 갈매기들이 그 노인 주위로 모인다.
그 노인은 제 2 차 세계대전 당신 해군 병사였다.
그가 속한 부대가 일본군과 싸워서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가 태평양 바다에 13일 동안 떠 있었.
그 때 13일을 지내면서 어깨에 날라 와 앉은 갈매기들을 잡아먹고 산 할아버지이다.
그 할아버지는 그 때를 기억하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 너희들 때문에 살았다.
그래서 그 노인은 오늘도 때가 되면 멸치 봉지를 가지고 나와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하는 전설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예수님을 죽이고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어떻게 갚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까?
그 동안 우리는 몇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의 능력이란? (3주에 걸쳐서 말씀 드렸다.)
1) 자기를 정직하게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죄인의 괴수)
2)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3) 용서의 능력이다.
먼저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하는 사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이웃을 용서하기 어렵다.
 
우리는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해서 결국 믿음을 키워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이것이 (믿음의 의식화) 이다.
예수님이 원하시고,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나도 하려는 자들이 성도가 아닙니까?
이것은 (믿음의 생활화) 이다.
자기의 허물을 먼저 보고, 이웃을 주님 안에서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은혜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생애를 훌륭하게 창조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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