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진 십자가 (막 15:16-23, 롬 16:13)
오늘은 고난 주일이고,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이다.
이번 주간과 다음 주간은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이 주간이 있어 기독교가 있다.
즉,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이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기독교는 의미가 없고, 소용도 없다.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
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가게 했다.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언덕까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셨다.
그런데, 채찍에 맞으시고, 너무 힘이 들어 쓰러지시고 또 쓰러지셨다.
그 때 로마 군병 하나가 구경하던 한 사람, 구레네 시몬을 붙잡고,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하고 가게 했다.
성지 순례 코스 가운데 고난의 길(Via Dolorosa)란 곳이 있다.
빌라도 법정에서 시작하여 십자가 처형이 행해진 골고다 언덕까지의 길을 일컫는 이름이다.
그 길목 요소, 요소가 다시 14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너무 힘이
들어서 멈추어 서신 곳이다.
그 가운데 제 5 지점은 구레네 시몬이 쓰러진 예수님을 대신하여 억지로 십자가를 진 곳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도 아니다. 시골 촌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전에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입고, 병이 나았다든지,
큰 어려움에서 도움을 받았다든지 하는 그런 은혜를 입은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로마 군병에 의해서 억지로 지고 갔다는 것이다.
베드로조차 지지 못했던 십자가를 지고 감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한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와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자가 되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었다.
성경에 두 명의 아들 이름 (알렉산더와 루포)은 로마교회의 지도자로 자라났고,
그의 아내는 바울에게 믿음의 어머니로 존경을 받았다.
(롬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가 나온다. 이 루포가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다.
루포의 어머니는 사랑스런 믿음의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일군들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펴 주듯이 그는 사도 바울을 돌보아 주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금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곧 내 어머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 분이 나의 영적 어머니와 같은 분이라는 말이다.
(행13:1) 첫 이방 선교 여행 때 지원한 인물들 중에 니게르(=피부인)라고 하는 시므온이 있다
이 사람이 북 아프리카 구레네 출신, 시몬이다.
이 시므온이 바울 선교에 동참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고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아들 알렉산더가 사도행전 19:33절에도 나타난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원해서 기쁨으로 진 것이 아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데도,
그의 온 가정과 자손들이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기쁨으로 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이 사실이다.
기분에 따라서 기분이 좋으면 열심히 하고, 기분이 안내키면 안하고 그러면 안 된다.
그러나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그것이 내게 큰 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롬 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영적인 생활은 육신의 정욕이나 감정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억지로라도 순종하며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때 큰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일 성수하는 일에 있어서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사탄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방해한다.
그래서 기분 내킬 때만 교회 나오고 예배드린다면 이것은 사탄에게 속는 일이다.
(사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육신의 쾌락을 즐기지 아니하고, 육신이 소욕을 좆는 길을 따라 가지 아니하고,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키며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영을 따라 사는 성도의 생활이다.
(예화) 대학교 1학년 때 월드컵 T.V. 중계방송이 주일 저녁 예배 시간에 한일전이 있었다.
정말 갈등이 났다. 그러나 결단하고 예배 참석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예화)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야기 :
초등학교 시절에 주일 날 친구와 함께 낚시터에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 때 워싱턴은 낚시대를 버리고 교회로 갔는데, 그 날 그는 큰 은혜를 받고
신앙의 바른 길을 감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같이 가던 친구는 워싱턴을 교회간다고 조롱하고 낚시터로 갔다는데
그는 영원히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다고 한다.
한 순간의 결정이 이와같이 큰 차이를 주었다.
(예화) 존 웨슬리 목사님은 1738년 5월 24일 삼일저녁에 그 날 따라 수요예배에 가기가
몹시 싫었다고 한다. 그래도 억지로 발길을 옮겨서 올더스 게이트에 있는 작은 교회에 참석을 했다.
그 날 목사님도 아닌 한 평신도가 나와서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어 내려갈 때
“구원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진리를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회심하는 체험을 갖게 된 것이다.
수요일 저녁 예배에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고 감리교회이 창시자가 되었다.
교회에 가기 싫다고 집에 있고, 예배드리기 싫다고 집에 있었으면 그런 엄청난 큰 은혜를 못 받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나가기 싫을 때, 그 때가 꼭 교회 나와 예배드려야 하는 때요.
예배드리기 싫을 때야말로 참으로 예배드려야 하는 시간이다.
♪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헌금하는 방법은 최선을 다해서 헌금하되, 기쁨으로 하는 것이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다고 기쁨도 없고 드릴 마음도 없고 자원하는 마음도 없다고 해서 안 해야 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성도들이 헌금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도 같이 드려지는 것이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의 물질 봉사를 싫어하고 방해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인은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물질을 받치고 헌신 할 때 복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억지로라도 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사할 수 없을 때 억지로 라도 감사 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지만, 그 가정과 그 후손이 복을 받을 것처럼,
억지로 라도 주일 지키고, 억지로라도 헌금받치고, 억지로라도 감사하고,
억지로라도 기도하는 것이 복이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기도생활이다.
기도는 영성을 키워주고, 기도는 영력을 얻게 한다.
그런데,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피곤해서 새벽기도 나오기 싫을 때가 있다.
그래도, 억지로 라도 나와서 새벽기도하면 하루가 즐겁고 영력있게 살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보다 똑똑하고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이 제아무리 똑똑하고 강해도 기도 안 하면 사탄의 밥이 되지만, 아무리 연약하고
볼 품이 없는 사람이라 할 찌라도 무릎 꿇고 기도하면 마귀는 무서워하는 것이다.
오래 전에 기독교를 핍박하던 영국의 메리 여왕은 말하기를 :
"나는 아무도 무섭지 않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 존 낙스의 기도는 무섭다" 고 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기도가 잘 안될 때가 있다.
그 때는 기도하지 말아야 할 까요?
기도 막힌 것은 기도로 뚫어야 한다고 한다.
억지로 라도 기도시간을 채우면서 얍복강가에서 씨름하는 야곱처럼
기도하면 복이 오고 응답이 온다.
마르틴 루터는 기도를 중노동이라고 했다.
육신은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다. 다리도 저리고, 무릎도 아프고, 졸릴 때도 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소리내서 기도 할 때 성령의 불이 떨어지는 것이다.
억지로 한다고 해서 이것이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다.
나를 쳐 복종시키며, 순종하는 의지적인 순종이다.
(결 론)
신앙생활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다.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짐이다.
문제는 주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되, 불평, 원망하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은 기쁨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감사함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은 더욱 사랑해 주신다.
그런데,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듯이, 하기 싫을 때도 억지로라도 봉사하고,
억지로라도 주일 지키고 억지로라도 예배드리고, 억지로라도 물질받치고,
억지로라도 기도에 힘쓰면, 그래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도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구레네 시몬도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온 가족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고,
온 가족과 후손이 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억지로 진 십자가라도 이렇게 복을 받을 수 있었다면,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감사함으로 봉사하며 주님을 따른다면 얼마나 더 큰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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