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6일 토요일

주님을 따르는 길 / 마태 16:21-28.

      주님을 따르는 (마태 16:21-28)


불신자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한번만 설교하라고 한다면, 오늘 전하는 말씀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믿음의 성도들이여!

모든 말씀이 귀하지만, 오늘 전하는 말씀정말 중요한 말씀이니,

잘 듣고 깨닫고 이 말씀을 심비(心碑)에 잘 새겨 놓고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예수 믿을 때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창세전에 나의 구원을 계획하셨다 (엡 1:4)

(예) 마치 건축가 마음에 계획이 있듯이....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 계획이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고 이루어 놓으신 분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 테텔레스타이 : 다 갚았다. 죄의 값을 다 지불했다 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 언제 내 것이 되었는가?

내가 예수를 믿을 때이다.

사도바울은 (엡 1:4)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창세전에 택하여 주셨다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때 다 된 것이 아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다.

구원을 다 받았다고 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달려간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였다. 그러나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살았던 것처럼,

예수 믿은 후에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주님 따라가는 과정이 남아있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이 가셨던 자취를 따라오라하신 길이 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야 할 은 어떤 길인가? (3가지)

1) 고난의 길 (21절)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다.

고난을 예언하셨는데, 말씀하신 그대로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가려면 주님이 가신 것처럼 [고난의 길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눅 9:57)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눅 9:58)

주님은 이 사람이 주님을 따라가겠다는 지를 아셨다.

이 사람은 십자가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병이어 기적을 보니, 먹을 걱정 없겠구나... 병이 걸려도 다 낫겠구나...

주님 따라가면 높임 받겠구나....

이 사람이 그런 허영심을 갖고 주님 따르겠다는 것을 주님이 아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대답은 날 따라오면 그런 거 없다는 말씀이다.

(예화) 신학교 갈 때 :

강단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참 좋겠다.

그런 허영심으로 신학교에 들어가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목회의 길은 자기희생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데...

세상 허영심으로 이 길을 가겠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서 출세하고, 경제적으로 부자 되고,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예수 안 믿으면, 고난당하지 않을 것인데,

예수님을 믿어서 고난당하고, 손해 본 사람도 있다.

예수 믿고 출세하고 부자 되는 것도 축복이다.

신앙 생활 잘 하면, 하나님이 그런 축복도 주신다.

그러나 예수 믿어서 희생하고, 높은 지위에서 떨어지고,

고통을 받는다면 이것은 더 귀한 것이다.

다니엘의 3친구 :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에게 :

느브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우상에게 절하라고 했다.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

그 때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신앙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1) 하나님이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2) 죽어도 좋습니다.

살려줄 것을 믿는 것은 참 좋은 신앙이다.

그러나, 안 살려주어도 [신앙절개] 지키는 것은 [더 좋은 신앙]이다.

주님이 십자가 지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나와서 말한다

(마 20:20-23)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래, 영광은 주겠는데, 내가 마시려는 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

그 잔은 <십자가>를 의미한다.

(예화) 마태복음 4장 : 예수님께서 마귀로 부터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가 세상 영광을 보여 주면서 이것은 다 나에게 주어진 것인데 :

나에게 엎드려 절하라.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너에게 넘겨주겠노라.

두 가지 길이 있다.

한번 마귀에게 절하고 영광을 얻는 편안한 길, 안일한 길이 있고,

아니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그 후에 영광을 얻게 되는 고난의 길이 있다.

예수님은 후자의 길을 선택하셨다.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길이다.

창조주종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동거동락하시면서 굶고 주리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이 고난의 길을 따라 가야 한다.

(행 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히 13:12-13) 그러므로 예수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화) 겟셋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피 땀 흘리시면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잠에 떨어져 기도하지 못했다.

3번을 그리하신 후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다.

어디로 함께 가자고 하는 말인가?

고난의 길, 죽음의 길, 골고다의 길, 십자가의 길, 멸시천대 받는 길

함께 가자로 하셨다.

예수 믿는 이로 들어오셨나요?

신학생이나, 목회자가 있다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나요?

영광 받으시려고요? 대접 받으시려고요? 부요하게 편안한 삶을 살려고요?

그렇다면, 실수 한 것입니다. 이 길은 그런 길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고, 희생해야 하는 길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길을 따라 가려면 둘째로)

2) 인정(人情)보다는 진리를 귀하게 생각하라. (22-23절)

인간에게는 정(情)이란 것이 있다. 즉, 인정(人情)같은 것이 있다.

친구의 이 있고, 친구 지간에 의리도 있고, 부부의 이 있고, 교우간의 이 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은 있으나, 성경에 맞는 정(情)은 OK 이지만,

성경에 맞지 않는 정(情)은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인간의 정에 이끌리지 말고, 진리를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번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인간적으로 주님을 붙들고 그리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간>했다는 원어적 뜻은 막 야단치듯이 말했다는 뜻이다.

그 때 (23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 말은 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서 역사하는 사탄에게 하신 말씀이다.

부흥회 기간에, 어떤 성도가 말씀전하는 목사님에게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인사했더니,

목사님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그 성도가 그 다음 날부터 부흥회 안 나오는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자기에게 사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찾아가서 그것은 내 안에 사탄이 교만한 마음을 주어서 사탄에게 한 말입니다고 설명했더니

다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이와같이, 사탄이 베드로 안에 들어가서 그렇게 말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그렇게 말씀한 것이다.

마귀공갈, 협박으로 공격해서 신자들을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고, 유혹해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한다.

감정보다는 진리를, 사람의 인정보다는 진리를, 의리보다는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막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 자매 어미 아비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형제, 자매, 어미, 아비, 자식... 인정상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하기 힘들다.

그러나 인정보다는 진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복습)

(1) 고난의 길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다.

(2) 인정보다는 진리를, 의리보다는 진리를 선택해야 하는 길이다.

(셋쩨로 주님의 길을 따라 가려면)

3)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이다.

(24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십자가가 가장 힘들다.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Cf) 신발가게에서 도둑질 하다가 매 맞고 들어 누었다. (목사가 심방가야 하나...?)

그래도 찾아 가서, 얼마나 고생했소? 인사했더니,

아닙니다. 목사님. 스데반을 돌에 맞아 죽었는데... 이까짓 것 쯤이야... (ㅋㅋㅋ)

이 말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도둑질 하다가 매 맞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교인은 회사에서 게으르게 일하다가 상관에게 야단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 받는 것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3종류의 사람이 있다.

ㄱ) 마가 다락방 성만찬 때까지만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ㄴ) 성만찬 후에 겟셋마네 동산까지는 따라가는 사람 : 가룟 유다는 떠나가 버려렸다.

ㄷ) 겟셋마네 동산에서 골고다까지 따라가는 사람 : 베드로마저 떨어져 나갔다.

베드로는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처자도 버리고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기를 부인하는 데 실패 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을 실패)

삼손 : 나귀 턱뼈 하나로 3,000명도 죽이고, 사자도 이겼다.

그러나 드릴라를 보고 자신의 정욕에 졌다. 마음의 정욕에 실패했다.

다윗 : 원수 사울왕도 사랑했고, 골리앗도 이겼다.

그러나 밧세바를 보고 마음의 음심을 이기지 못했다.

십자가 중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이기는 것 가장 어렵다.

(잠 16:32)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그런데, 은혜 받으면 나를 이길 수 있다. 나를 지배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 믿어서 받는 이다.

★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오늘 설교 요약)

(1) 고난의 길이다.

(2) 인정(人情)보다는 진리를 따르는 길이다.

(3)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이다.

★ 문제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그냥도 편하게 잘 살아가는데,

우리는 예수를 믿어 고생하냐?

그 해답이 (26-27절)에 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유물론자들은 :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주의자들은 : 유물론자들보다는 좀 낫다.

그리스도인들은 : 영혼도 있다고 믿고, 영생을 믿는다.

(마 10:28) 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화) 고무장갑이 움직인다. 그것은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움직이는 것은 내 안에 영혼의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다.

왜 주님을 위하여 다 버리느냐?

생명을 얻고 영생얻기 위해서 세상을 다 버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무가치한 것을 버리고,

불변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변하는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일시적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까?

이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죽으면 그것으로 아니다.

두 개의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다.

생명의 길사망의 길이다.

영생의 길이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불못이라

(계 21:8) 불과 유황으로 타는 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세상 쾌락에 빠지고 내 마음대로 편하게 살다가 지옥 가는 인생이 있고,

예수님 믿고 주님을 따라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다가 천국 가서 영생하고

영원한 상급을 받는 인생이 있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내가 왜 예수 안 믿었을까...?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마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동물은 죽으면 없어진다. 그러나 인간은 죽어도 끝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심판이 없으면 안 된다. 정말 잔악하게 한 평생을 산 사람들이 있다.

아주머니, 예수 믿으세요. 에수 안 믿으면 지옥가요...

정말, 지옥이 있어요? 질문한다.

남편이 첩살이 한다. 그런데 저 사람이 죽어서 그냥 없어져야 하겠소?

아이고, 심판이 있고, 지옥이 있어야 하겠네요. 그러더랍니다.

지옥이 없다면 모순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에서도 재판받고 죄인은 감옥에 간다.

영계의 감옥지옥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영원히, 영원히 그 곳에서 고통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종말에 백보좌 심판이 있다.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역설적인 진리이다.

주님을 따르면 죽는 줄로 안다. 아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다. 이것이 영생의 길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 론)

주기철 목사님 (산정현교회) 실화 이야기 :

주기철목사님은 신사참배 거절하여, 고문도 받고, 감옥생활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출감 하셔서 집에 오셨다.

사모님이 식사 대접하더니, 이것 잡수시고 다시 감옥에 가세요.

옆에 계신 장로님이 너무 너무 놀랐다.

우리 목사님이 영원히 살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살면 나도 죽고, 하나님도 잃어버리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도 얻고 나도 산다. (토마스 아퀴나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같으니,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 때문에 연연하지 않고 천국을 위하여 투자한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이고, 영생의 길이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다.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주님을 따르는 길은 :

(1) 고난의 길이다. 각오하고 따라 가야 하는 길이다.

(2) 인정(人情)보다는 진리를 따르는 길이다.

(3)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이다.

주님이 가신 그 길,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 가시 밭 길, 좁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따라 오라 하셨다.

왜냐하면 이 길이 생명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천국가는 이요, 영광의

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주님가신 이 길을 잘 따라가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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