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와 공로주의 (마 20:1-16, 엡 2:8-9)
(Equalitarianism) & (Meritocracy)
오늘 본문은 한 데나리온 비유의 말씀이다.
달란트 비유가 (마 25:14-30) 있고, 본문에는 데나리온 비유의 말씀이 있다.
어떻게 다른가?
달란트 비유는 각각의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받아 충성해서 상급받는다는 것이고,
데나리온 비유는 포도원에 몇 시에 들어와서 일했든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한 데나리온씩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 데나리온 비유의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
주인이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었다.
제 3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도 포도원에 들여 보냈고,
제 6시, 제 9시, 제 11시에도 나가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였다.
날이 저물어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였다.
제 11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문제는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집주인을 원망하여 말하였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들은 온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하였다고 불평했다.
이 말은 어떻게 똑같이 줍니까?
형편성(衡平性), 공정성(Fairness)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니까, 불평했다.
그 때 주인이 대답한다.
왜 불평하느냐? 두 가지 이유로 잘못한 것이 없노라.
① 어느 시간에 왔든지 내가 약속한 대로 했다. (13절)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약속을 이행했다.
②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했다. (15절)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했다. 왜 불평하느냐? 는 말이다.
우리들도 품군들의 불평에 공감이 가고,
또한 주인의 말에도 공감이 간다.
★ 평등(平等)이란? 정말 중요한 가치(Value)이다.
그런데, 평등만을 주장하던 공산주의 사회는 몰락했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 대신에 자유 가치를 내세웠다.
그래서 몰락해 가고 있다.
평등주의(平等主義) (Equalitarianism) 가 옳은가?
공로주의(功勞主義) (Meritocracy) 가 옳은가?
세운 공로(功勞)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옳다는 사상이다.
그 사람의 가치(Value)에 의해서 보상받는다.
학교에서는 얼마나 성적이 좋은가?
회사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성과를 올렸는가?
조직과 단체에 기여했는가? 에 따라서 대우해 주는 제도이다.
오늘 예수님 비유, 한 데나리온 비유의 말씀에서는
공로주의(功勞主義)(Meritocracy) 한계와 더불어 깨우쳐 주시는 것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은혜는 평등하게 주신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은혜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의 은혜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 세상의 신앙 여정을 다 마치고 나서 천국에 가서,
우리의 삶을 평가받을 때, 평등주의와 공로주의가 함께 있게 된다.
(고후 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善惡)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각각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상급을 받는다.
이것은 공로주의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게 되는 상(償)이다.
그런데 상급과 구원은 구별 되어야 한다.
상급은 행한대로, 헌신한 만큼 받게 되지만,
구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平等)하게 주어지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이다.
평등주의(平等主義) (Equalitarianism) 로 공등하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가 더 오래 믿었느냐?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
누가 뒤 늦게 예수님을 믿었느냐? (저녁 5시에 들어온 사람)
이것이 구원에는 차이가 없다.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은 똑같다.
누가 더 오래 믿었고, 선행했다고 구원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내가 행한 것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받는 것이다.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렇습니다.
구원의 여부는 우리의 공로, 행위에 의해서 주어지는 Meritocracy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Equalitarianism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구원이다.
(결 론)
상급이 더 중요한가? 구원이 더 중요한가?
둘 다 중요하지만, 당연히 구원이 더 중요하다.
구원받지도 못한 사람에게 무슨 상급이 있겠습니까?
구원은 너무도 귀하고, 영원한 가치이기 때문에 인간 행위의 성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긍휼로 평등하게 나누어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상급은 그 몸으로 어떻게 행한 것에 따라서 주어진다.
하나님에게는 사랑과 공의가 함께 있고, 인자와 엄위가 함께 있다.
사랑과 인자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구원을 은혜로 주시고,
공의와 엄위로는 선한 행실과 공로에 따라서 상급주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Equalitarianism 과 Meritocracy이 함께 있다.
달란트 비유는 상급에 관한 비유이고,
데나리온 비유는 구원의 섭리를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그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qualitarianism)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와 시간과 물질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천국에 들어가서 귀한 상급을 받고 (Meritocracy)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