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義)를 행치 말라. / 마 6:1-8, 16-18, 고후 2:17) ​​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義)를 행치 말라.

(마 6:1-8, 16-18, 고후 2:17)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3가지 경건한 행동이 있다.

그것은 ①구제 ②기도 ③금식이다.

정말, 경건한 사람은 이 3가지에 힘쓴다.

문제는 이러한 경건한 행동의 동기(動機)가 잘못되고, 불순(不純)하고,

목적(目的)자기의 의(義)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참된 경건은 오직, 하나님 에서 살고, 동기(動機)가 순수해야 한다.

1) 구제에 대하여

구제는 정말 귀한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내가 가진 물질로 도와준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문제는 그 구제가 사람에게 보이고, 사람들에게서 칭찬듣고, 자기의 의(義)

드러내고자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없다.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義)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을 얻지 못하느니라.

(2절)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을 이미 받았느니라

오늘 날에도 어떤 기관에서 구제할 때, 신문기자들을 불러서

자신들의 선행과 구제를 잘 보도해 달라고 한다.

역시 세상 사람들의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상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희는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3-4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구제함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나의 구제와 선행이 사람에게서 칭찬영광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니,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다.

(시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통촉하시오며

나의 길눕는 것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다 보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크레딧이 되어,

때가 되면 을 주실 것이다.

이것이 경건의 원리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경건한 신자의 삶이다.

2) 기도에 대하여

(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기도경건한 행위이니,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고, 드러내고 싶어서

사방에서 보이는 사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한다.

그 동기가 불순하다.

나는 이렇게 경건한 사람이고, 기도의 사람이라고 나타내고 싶어서

그렇게 기도한다면, 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6절) 너는 기도할 때에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기도가 공로가 되어서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7-8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옛 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해서, 새벽마다 정수물을 떠 놓고

100일 동안 빌면, 산 신령이 내려와서 응답해 준다고 생각했듯이,

우리의 기도어떤 공로가 되어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중언부언(重言復言)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은 텅빈 을 반복해서 쌓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기도의 응답도 내 공로가 쌓여서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 응답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고,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응답되는 것이다.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을 많이 해서 공로로 쌓여서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 자체가 공로가 되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는

외식하는 위선자(僞善者)기도라는 말이다.

3) 금식기도

(16-18절)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3가지(구제, 기도, 금식) 모두 공통점이 있다.

ㄱ)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외식자, 위선자)

ㄴ) 선행을 하려면 은밀하게 하라.

ㄷ) 다 아시는 하나님이 갚으신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의 욧점은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요셉이나, 칼빈처럼, 코람 데오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든지, 나의 공로, 나의 의(義)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음적인 삶이다.

(미 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고후 2:17)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말씀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②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연약하고, 죄성(罪性)이 남아 있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다.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고, 나의 공로, 나의 의(義)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한 가지 문구를 가르쳐 드리면,

[The audience of one] = (나의 청중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말이다

오직 한 분 주님만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모두가인정해도, 주님알아주지 못하면 실패이고,

아무도 알아 주지 못해도, 주님인정해 주시면 된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이목(耳目)만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②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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