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1-19, 시 50:23, 103:1-2)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곧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시 103:1-2)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외쳤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때 주님은 10명의 나병환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하셨다.
지금은 의사들이 병자들에 대한 진단을 하지만, 그 당시에 나병에 걸리면
제사장이 보고 진단을 하였다. 문둥병이 고침을 받으면 정말 나은 것인지를
제사장이 레위기의 말씀에 따라서 몸을 조사하고, 판결을 내려 주었다.
이것이 모세 율법이었다.
그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은 :
내 말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씀이다.
아직은 하나도 낫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믿고 가는 중에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문둥병이 나아서 제사장에게 간 것이 아니라, 믿고 가는 중에 나은 것이다.
어째든 불치(不治)병이 나았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들은 너무 기뻐서 각각 자기들의 갈 길로 갔다.
아마도, 제일 먼저 자기 가족에게로 찾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10명 중에 꼭 한 나병환자만이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예수님께로 다시 찾아와서 감사를 드렸다.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지금 해야 할 일은 가족이 아니라,
예수님께 감사하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이방인 사마리아 문둥병자였다. (18절)
그는 예수님에게로 돌아와서 그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였다.
그 때, 예수님은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그 이방인 나병환자를 잡아 일으키시면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사람만이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칭찬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요? 오직 한 가지 이유이다.
받은 은혜에 잊지 않고, 찾아와 감사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냥 가버렸으나,
이방인이지만, 이 사람은 주님께로 돌아와 사례(감사)했기 때문이다.(16절)
1) 감사가 최우선이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있다.
감사는 무엇보다도 먼저해야 할 일이다. 기회를 놓치면 못하게 된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살았다.
그들은 길 지나가시는 주님을 함께 불렀다.
그리고 다 함께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감사하기 위하여 다시 찾아온 사람은 이 사람 뿐이었다.
(예화) “그 아홉 명의 변명” 이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다.
그 9명은 왜 그냥 갔을까? 그들의 변명을 상상한 글이다.
(1) 의사와 제사장에게로 가서 정결 검사를 받기 위해 갔다는 것이다.
(2) 혹시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서 몇 칠을 더 기다려 보아야겠다는 것이다. 신중론자
(3) 내 병은 문둥병이 아닌 피부병이었을지 모르는데 나은 것이다. 회의론자이다.
(4) 내 병은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다. 자연현상으로 봄.
(5)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재산이 궁금해서 그것을 알아보려고 갔다는 것이다.
(6) 병 걸리기 전의 내 가정과 식구들을 생각했는데, 아내가 아직까지 수절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알아보려고 갔다는 것이다.
(7) 예수님께서 해 준 것이 없잖아? 안수를 했냐? 안찰을 했냐? 기도를 해 주었냐?
(8) 다른 유명한 랍비도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을 상대화시켜 버렸다.
(9) 이 모습으로 갈 순 없잖아? 목욕하고 새 옷 입고 예수님께 가야지 그래서 갔을찌도 모른다.
감사(感謝)하지 못하는 핑게가 나름대로 다 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이 모습 그대로 주님께로 돌아왔다.
문둥병자의 옷을 그대로 입고, 붕대 감고 있는 그대로 와서 감사했다.
추한 모습 그대로 나와서 감사했다.
벌써 예수님이 나를 받아 주셨는데 어떠냐?
그래서 예수님께로 즉시로 돌아와 감사하였다.
우선 감사했다. 최우선적으로 감사했다.
만사를 제쳐놓고 최우선으로 감사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말씀 속에는 주님의 섭섭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감사란 의무가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 감사이다.
감사는 자발적이고, 자원적(自願的)인 것이다.
강요당해서 하는 것은 감사가 아니다.
예수님은 조건으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건일 때는 율법이 된다.
은혜로 받고, 은혜로 순종하고, 은혜로 감사할 때 감사가 은혜가 되는 것이다.
(예화) 레이디 엘진(Lady Elgin)이라는 배가 침몰하였다.
스펜서(Spencer)라는 청년은 생명을 걸고 뛰어 들어가서 17명의 생명을 구하였다.
이 사람은 수영 선수였다. 물에 빠졌던 17명은 스펜서가 아니었으면 다 죽었다.
스펜서는 기진맥진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신문 기자들이 찾아 와서 물었습니다.
“17명을 건져 주셨군요. 몇 명이 병원에 찾아 왔습니까?”
그 때 스펜서는 섭섭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1명도 없었습니다.”
감사하여야 할 때 감사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감사하여야 할 때, 감사하지 못하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감사하여야 할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10명 중에 1명만 감사드렸습니다.
감사는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10명 나병환자 중에 주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은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 뿐이다.
그는 받은 은혜를 깨닫고 주님께 찾아와 감사했었기에 그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2000년 이상, 성경을 읽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귀감을 주고 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면 주님 사랑의 대상이고, 관심의 대상이고, 기쁨의 대상이다.
2) 감사하는 사람은 더 큰 은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사람들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싶어 한다.
솔로몬의 법칙이 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1000번제를 드렸다.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물으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 때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왕상 3:6-10)을 보면, 지혜를 구하기 전에 한 것이 있었다.
솔로몬은 그 동안 아버지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드렸다.
그리고 지혜를 달라고 하였다.
주신 은혜를 먼저 감사하고, 지혜도 달라고 하니까 지혜도 주시고 부와 수도
더 하여 주셨던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의 법칙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길이다.
받은 것을 먼저 감사하고 그 다음에 또 구하는 것이 영적인 원리이다.
성경의 법칙이고, 더 큰 은혜를 받는 길이다.
우리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더 큰 은혜를 분이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다시 귀중한 말씀을 한 마디 더 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9명의 나병환자는 병만 고침 받았다. 오직 육신만 구원받았다.
그러나,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육신도 고침 받고 영혼도 구원받았다.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감사하였더니, 정말 감사해야 할 복을 받았다.
육신의 병을 고침 받은 것도 너무 감사 하지만, 이제는 영혼이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감사 중에 최고의 감사는 구원받은 것이다.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된 것이 가장 큰 감사이다. .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감사하였기 때문에 더 놀라운 영혼의 구원까지 받았던 것이다.
촛불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등불을 주시고,
등불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촛불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 (스펄젼 목사)
이 말은 작은 것을 감사하는 자에게 점점 더 크고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3) 감사하는 만큼 더 행복해 진다.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감사가 없으면 불행하다.
사람은 감사한 만큼 행복하다.
감사는 상승(씨너지)작용을 해서 점점 더 감사가 나오고,
점점 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불평도 마찬가지 상승작용을 한다.
따라서 불평하며 살 것인지, 감사하며 살 것인지를 지혜롭게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감사할 때 그 마음에 평강을 주신다고 하셨다.(빌 4:6-7)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결 론)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유명한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의 경우이다.
하나는 무지해서 감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받은 은혜를 깨달아야 하는데, 깨달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것은 [무지의 죄] [교만의 죄] 라는 것이다.
1) 감사가 최우선이다.
2) 감사하면 더 큰 은혜가 임한다.
3) 감사가 곧 행복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고, 더 사랑해 주실까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일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금년에도 지켜주시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입술로 감사하고, 예물을 준비하여 감사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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