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림의 은혜 (히 10:16-18, 사 43:25, 시 103:12)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喜怒哀樂(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감정(感情)이다.
문제는 슬픔과 고통의 일들이 세월이 흘러가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된다면,
참으로 괴로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가 망각의 은혜이다.
정말, 잊어버림은 축복이다.
물론, 병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치매(癡呆)가 생기면 불행한 일이지만,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가면서 옛날에 있었던 괴로운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귀한 은혜들은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축복이다.
우리는 2가지를 잊고, 망각하며 살아야 한다.
1) 원한의 감정이다.
“원한은 모래 위에 새기고, 은혜는 바위 위에 새기라” 고 한다.
모래 위에 새긴 글은 물이 지나가면 다 없어지고,
바위 위에 새긴 글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반대로 산다.
은혜는 모래 위에 새기듯이 금방 잊어버리고, 원한은 바위위에 새겨둔다.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억울한 일과 피해 본 일들이 있다.
그래서 원망과 원한의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복수심이 올라오고, 보복할 수만 있으면 복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복수심이 들끓고 보복할 수 있었지만, 원한의 감정을 다스리고
승리했던 한 인물이 있다. 그 사람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말미암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오랜 세월 동안 형들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나를 종으로 팔아버릴 수 있단 말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복수하고 싶은 원한의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형들을 만나지만, 복수하지 않고,
다 용서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창 50;20)에 나온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이 형들의 원한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나는 이 고백이 너무도 은혜가 된다.
형들은 악을 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다.
★ 이와 같은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사탄, 마귀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충동시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의 죽으심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을 구원케 하셨던 것이다.
악의(惡意)와 선의(善意)가 교체 되었다.
요셉이 보디발 가정의 종으로 살고, 보디발 부인으로 말미암아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던 모든 고난의 여정이 애초에 형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Sold(팔리운 것)이 아니라, Send(보냄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의 말은 그 의미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하나님이 미리 다 아시고, 섭리하신 가운데 요셉을 대사로, 특사로 보냈다는 말이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넘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분노하고 원한의 감정을 갖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주권적인 신앙
과 신뢰가 있을 때 원한을 잊어버릴 수 있다.
(Let by gones, Be by gones) 지나간 일들은 지나간 일들이 되게 하라.
아픈 일들을 자꾸 돌아가서 생각하면 아픔만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상처주고 어려움을 준 그 사람들에 대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원한의 감정에 스스로 괴롭힘을 받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고난 당하실 때 그렇게 하셨다.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도 하나님께 맡기셨다.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 찌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 가상칠언 가운데 마지막으로,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기도를 드리셨다. (눅 23:46)
우리들도 지나간 과거에 받은 피해, 모욕, 아픔, 손해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다 맡기고 잊어버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Forgive,용서하고, Forget(잊으라)
잊어버림이 축복이고 은혜이다.
잊어버림이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옛 구습이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고 했다.
구습이란? 오래된 엣 습관이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외부 세상에서 오는 유혹이 만날 때, 시험에 빠지고, 죄를 짓게 된다.
구습을 벗어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벧전 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끊어주셨고,
(2) 우리도 육체의 고난을 받을 때, 죄를 끊게 된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질병이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육체이 욕망과 육욕이 사라진다.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전에는 구습을 따라 살았으나, 육체의 고난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된다.
구습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고 싶은데, 나를 가로막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죄책감과 정죄의식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 막는다.
여기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이다.
(히 10:17-18)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망각, 하나님의 잊어주심이 있다.
나는 기억할 찌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신 죄를 다시 기억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나를 용서해야 한다.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다. 정말 하나님의 기억상실이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온 세상의 죄를 말끔이 씻어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한 모든 죄를 기억지 않겠다고 하셨다.
(18-19절) 죄를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 마귀는 여전히 계속해서 우리에게 정죄의식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송사하고, 하나님께 고발한다. (롬 8:33-34)
내 양심에도 고발해서 자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의 음성을 무시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시 130: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빌 3:12-14)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사도 바울처럼 지나간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 론)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들은 늘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원한의 감정, 손해를 끼쳤던 어두운 감정들은 잊어 버려야 한다.
또한, 옛 사람의 습관들은 잊어버리고,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탄 마귀의 정죄와 고발에 대하여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불의와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용서해 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다.
잊어버림, 이것은 은혜이고, 축복이다.
잊을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잘 분별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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