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 (빌 4:4-8)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이 염려요.
우리 마음의 평강을 빼앗아 가는 것이 근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와 근심으로 죽어가고 있다.
제 2 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의 청년과 군인, 5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전쟁의 근심, 걱정으로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문제는 염려가 습관이 되고, 체질화 된 사람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의 염려부터 찾고 생각하며 염려로 하루를 시작하는
염려가 체질화된 인생이 있다.
Edward Podolsky 의학 박사는 :
“염려를 멈추라 그러면 건강도 회복된다”(Stop worring and get well)라는 책에서
고혈압, 심장병, 류마치스, 두통, 시력상실, 위장병 같은 질병은 염려와 근심에서
오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인의 병, 70% 이상이 염려와 근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이 말은 염려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질병에 대한 염려 때문에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염려는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원수 마귀 사탄은 이 염려와 근심을 무기로 삼아 우리를 공격한다.
근심 걱정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
(보통 사람들이 하는 염려 100% 중에서)
40% : 미래에 대한 염려인데,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30% : 과거에 있었던 염려인데 염려한다고 고칠 수 없는 것들이며
12% : 자기와 상관이 없는 염려
10% : 잡동사니 염려인데, 근거가 없는 염려들이고,
8% :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염려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8% 중에서 4%는 : 아무리 염려해도 해결 불가능한 것들이며
4%만이 노력하면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하는 염려 중에 단지 4%만이 필요한 염려라면
사람들은 25배 이상의 불필요한 염려를 하며 산다는 결론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
제가 늘 애용하는 라이놀드 니이버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고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시고,
그리하여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 기도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 고 했다.
염려 속에 사탄적인 것이 들어 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했다.
세상의 염려, 재물의 근심으로 인하여 말씀의 씨가 자라나지 못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로막아 버리게 하는 사탄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염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음을 갈라 놓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갈라놓는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생각이 나누어지면 안 된다. 갈등의 요인이 된다.
두 마음을 품으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근심 걱정이 시작 된다.
염려는 우리의 인격을 분열시킨다. 생각을 분열시킨다. 마음을 갈라놓는다.
염려는 우리의 감정을 무너뜨리고, 의지력을 약화시키고, 지성을 와해(瓦解)시킨다.
그래서 확신을 갖지 못한다. 염려 많은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근심 속에 사는 사람 치고 위대하게 된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은 늘 탄식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창의력이 없다.
사람은 대개가 자기 본위(本位)로 본다.
염려가 있는 사람은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연히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그래서, 염려는 이해력과 인식능력을 갈라놓기 때문에 확신도 없고, 분별력도 없다.
염려에 사로 잡히면 우리의 생활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염려함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격이 무너지고, 건강에 손해를 준다.
염려로 얻어지는 유익은 하나도 없다.
염려하는 사람은 그것을 대체하고자 하는 것들을 찾는다.
술을 찾고, 안정제를 먹고, 마약과 놀음으로 염려를 떨쳐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염려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말하기를 :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요.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고 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유대인의 속담) :
사람이 죽었을 때는 벌레가 당신을 먹지만, 살았을 때는 염려가 당신을 좀 먹는다.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공중의 새를 보라. 그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이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다. (마 6:25-33)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다.
믿음이 없어서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면, 어떻게 염려를 이길 수 있나요?
1) 염려 대신에 하나님께 아뢰라. (6절 上)
(6절 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셨다.
기도(prayer)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고,
간구(petition)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다.
아뢰라는 말은 마치 상담자에게 나의 사정을 털어놓듯이 고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으니,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선택하며 하루를 살 수 있다.
염려, 근심하며 살든지?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든지?
하루에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바뻐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염려할 시간은 있나요? 그것은 있다고 한다.
염려가 떠오를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이다.
염려가 찾아오는 그 시간이 기도할 시간이다.
주님께 기도하여 나의 염려를 맡기면, 내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로 바뀌어 진다.
사탄은 성도가 기도하는 것을 싫어 한다.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는 괜찮다고 말한다.
기도 없는 헌신는 괜찮다고 한다.
기도 없는 설교 준비도 괜찮다고 한다.
사탄은 기도 없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사탄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벧전 5:7-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염려를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2)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6절 下)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는 더 큰 감사를 가져다 준다.
감사도 전염된다. 내가 감사하면 주변 사람들도 감사하게 된다.
(불평도 전염된다. 불평은 감사보다 전염성이 더 강하다.)
스펄천 목사님의 유명한 말을 많이 들었다.
"촛불을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을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감사하면 촛불도, 등불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
작은 것부터 감사할 때, 더 큰 은혜가 임한다는 말이다.
감사가 최고의 해결책이다.
감사하면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난다.
감사하면 이상하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라이놀드 니이버가 이런 말도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신자의 모습은 감사에서 나타난다.”
그렇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사라진다.
불평이 많이 나오면 은혜가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톨스토이의 행복론에서 : 감사하면 젊어지고, 원망하면 늙어진다고 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최고의 화장술이다.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께 영광될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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