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딛고 일어서라. (요 9:1-12)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고난과 어려움과 역경을 만난다.
고난 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바울... 모두가 그랬다.
문제는 고난이나 역경(逆境)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반응 3가지가 있다.
1) 체념형.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는 사람이다. 역경에 굴복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주어지 이 역경은 운명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역경에 그대로 굴복하고, 체념하는 체념형의 사람이 있다.
심지어 자살해서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다. 불행한 것이다.
2) 원망형.
역경에 대하여 원망하며 산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왔는가? 왜 나에게만 이런 어려움이 왔는가? 하면서 원망한다.
부모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하고, 하나님까지도 원망하는 사람이다.
3) 극복형.
역경에 도전하며 극복하며 사는 사람이다.
나에게 주어진 역경은 이미 주어진 것이다.
내가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기도로 물어가며,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극복형의 사람이 있다.
오히려 이 역경을 성공의 디딤돌로 삼는 사람이 있다.
오늘 본문에는 출생(出生) 시부터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역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누가 억울하다 해도, 이 사람만큼 억울하겠습니까?
나면서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으로 태어나, 어느 덧 40세가 되었다.
◉ 유대인들의 율법적 세계관 :
그들은 모든 고통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고 하는 율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2절)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라고 묻는다.
부모 죄 때문이라면 억울하지 않은가?
자기 죄 때문이라면 무슨 죄입니까? 말이 안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율법적인 시각으로 고난을 해석하는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죄의 댓가로 본다.
이 소경은 본인의 고통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모른다.
고통이라는 현실은 있으나,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 괴롭게 한다.
◉ 은혜 중심의 세계관 :
예수님은 은혜 중심의 세계관으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시각으로 보셨다.
주님은 철학적, 추상적, 형이상학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3절)
이 사람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선하신 뜻이 있다는 말이다.
(예화) 새벽 기도회 후에 어느 권사님이 슬피 울며 기도했다.
목사님이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어제 본 연속극에서 주인공이
거의 죽게 되어서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ㅋㅋㅋ)
문제는 작가의 목표가 있다. 뜻이 있다. 의도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걱정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Happy End로 끝날 것이다. 결말이 정해져 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오늘도 나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골 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내가 하나님의 깊은 경륜 속에 존재하고, 그 경륜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한 사람은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예화) 책 :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비바람이 불고, 날씨는 궂어도 강물은 흐른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하나님의 경륜은 이루어진다.
강아지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소경된 원인을 과거에 두고 있다. 또 사람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원인을 미래에 두고 있다.
장차,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하여 이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느냐 보다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경륜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 (사도행전 16장)
그러나 그로 인하여 간수장이 예수 믿게 되고, 온 가족이 구원 받게 되었다.
(예화)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간다.
억울하게 감옥에도 들어간다. 13년 동안 모진 고생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모든 고난에 대하여 형들을
탓하지 않았고, 요셉은 하나님에 대한 주권적 신앙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이리로 보내셨나이다.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많은 고난의 세월은 이 때를 위한 것이라" 고 말한다.
(예화) 다니엘이 무슨 죄가 있어서 사자 굴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일생에서 가장 축복된 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 사자 굴에 들어갔을 때였다고 말할 것이다.
본문의 그 소경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을 알았다.
소경이란 남들보다 청각이 발달되어 있다. 청각이 예민하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누구의 죄 때문인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정말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순종한다.
예수님이 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신다.
평소와는 다르게 치유하신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사람의 순종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소경이 순종하고 간다. 마침내 눈을 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우리에게 때때로 고난과 역경이 닥쳐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과 뜻이 있어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선하신 뜻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이희아 자매는 선천성 사지 기형 1급 장애자이다.
(이희아씨는 1985년 7월 9일생) 올해 2020년 현재, 나이 36세다)
손가락이 양손에 2개씩, 모두 4개뿐이고, 무릎 아래 지체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핸디캡을 딛고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1992년 전국 학생 음악 연주 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 받았고,
1999년 장애극복 대통령상 받았다. 자랑스런 서울 시민상, 신지식 청소년 상,
문화예술인 상, 성산효행 극기 상을 받았다.
선천적 신체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 믿음의 자매이다.
하루 10시간씩 피아노 연습했다고 한다.
신체적 장애가 있으나 마음은 밝고 건강하다.
정말 훌륭한 믿음의 자매이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고, 부족하다고, 약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때가 지났다고
능력 밖이라고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포기하지 맙시다.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은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십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 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고난과 역경을 만난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역경을 딛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가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경륜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주가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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