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도 축복이다.
(사 43:18-21, 히 8:12, 빌 3:13-14, 시 43:5. 62:5)
나이가 들면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고, 건망증도 생긴다.
건망증에 대한 유우머가 있다.
1. 어떤 사람이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는,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지, 내려가고 있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2. 부엌에서 무엇을 가지러 안방으로 들어 왔다.
문제는, 내가 뭘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3.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내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었다. “여보세요... 당신, 누구요?” (ㅋㅋㅋ)
4.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책상을 손으로 꽝꽝 두르리면서, “말도 안돼...”
그렇게 말하더니, 금방 문 쪽을 바라보면서 “누가 왔나?”
자기가 책상 쳐놓고, 누가 녹크 한 줄로 알았다는 말이다. (ㅋㅋㅋ)
붕어의 기억력은 15초라고 한다.
미끼를 물려고 하다고 혼나고 15초만 지나면 다시 또 물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물다가 걸리고 만다.
건방증이 가장 심한 것은 물고기이다.
쥐 새끼도 건망증이 많다.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쥐 구멍에 들어와서는 금방 다 잊어버리고,
“내가 왜 여기 들어와 있지?” 하고 나오다가 잡혀먹힌다고 한다.
사람에게도 건망증이 있다. 건망증(健忘症)은 병적 증상이다.
그러나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아픈 기억, 정말 괴로웠던 일, 그 때 받았던 고통이 그 날처럼,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면, 살기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잊어버림이나, 건망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쁜 과거, 고통스러웠던 과거는 빨리 잊을수록 좋다.
인간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과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있다.
문제는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없다.
남의 잘못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도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사 43: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옛적 일을 빨리 잊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1. 과거는 기억하여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B.C. 739 – B.C. 680에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는 극심한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북쪽에는 앗수르가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하며, 밑으로 남하 정책을 쓰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애급이 이스라엘을 지나 앗수르까지
점령하려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북쪽 앗수르와 남쪽 애급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친 애급파와 친 앗수르파, 반 애급파와 반 앗수르파가 온통 나라를 어지럽게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애급을 따르고, 앗수르와도 왕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옛날을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말씀은 과거에 매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과거에 놀라운 일이 있어도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歷史)를 공부할 때가 있다.
또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 대한민국의 8.15해방 같은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공부하고 회상하는 이유는 미래를 위하여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똑같은 아픔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 백밀러로 뒤를 보면서 운전한다.
백밀러를 보는 것은 과거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볼 때가 있는데, 이것은 내일을 위해서 옛적 일을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부통령 선거에서 낙선(落選)하였다.
낙선하던 날, 링컨은 말끔하게 이발을 하였다.
목욕을 하고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음식점에 나가서 가장 좋은 음식을 시켜 먹고 말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제 일을 기억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습니다.
지나간 실패를 잊고,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과거를 잊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뒤엣 것이 나의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빨리 잊어야 한다.
2. 내일이 기적의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일 두 가지 새 일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
(1)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 는 것이다. (19절)
광야는 본래, 길이 없는 곳이다.
광야에 갇히게 되면 곧 죽음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광야같은 처지에 있었다.
애급을 따라야 할지? 앗수르를 믿어야 할지?
우상을 섬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방황하고 있었기에 당시 상황을 [광야]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광야인가? 길이 없는 것이 광야이다.
무엇이 광야인가? 갈 바를 모르는 것이 광야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소망도 보이지 않는 광야 길에 지금 서 있습니까?
그렇다면, 낙심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광야에 길을 낼 것이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어떻게 로마가 1,000년 넘게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강한 군사력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만일 군사력 때문이라면 1,000년을 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다.
제도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탁월한 군사력이라 할지라도 100년, 200년이면 시들고 만다.
그러면 무엇 때문인가? 바로 길 때문이다고 그 책에서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길을 만들었다.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하니, 로마가 핵심이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길이 열리면, 소망도 보이게 된다.
길이 없으면 답답하고, 길을 모르면 방황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소망을 주겠다는 말이다.
살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말이다.
인생 길을 가장 잘 가르쳐 주시는 분이 계신다.
친히, 길이 되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모시면, 광야 같은 세상에서 길이 보인다. 길이 열린다.
예수님이라는 길만 따라가면 마지막이 생명이고, 천국이다. (할렐루야)
니고데모는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길을 몰랐다.
그는 유대인의 의회의원이다. 지금의 국회위원이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율법도 열심히 지켰다.
문제는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밤중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와서 천국 가는 길을 물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 없다”고 하시면서, 천국가는 길을 알려 주셨고, 눈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새 일이란?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믿고 나가는 이들에게 새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2) [사막에 강을 내 주시겠다] 는 것이다. (19절, 하)
하나님은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
여러분, 상상해 보라.
사막에 강을 낸다니, 이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막에 강을 내 주시겠다]는 말씀은 :
(1) [기적을 일으켜 주시겠다] 는 말씀이다.
사막은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사막이 된 것이다.
왠만큼 물을 부어도 다 스며들고 만다.
그런데 그런 사막에 강을 내주겠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다.
사막에 강이 생기면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2) [생명을 주시겠다] 는 말씀이다.
사막에 강이 생기면 생명체가 살 수 있다.
그래서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까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다. (20절)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광야의 사막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할 찌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나가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막은 강이 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면,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사막에 강을 내면,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제 놀라운 새 일을 행하겠으니,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건망증이 있으신 것 같다. (좋은 의미로)
(히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自白)하면 하나님이 잊으신다고 하셨으니,
철저하게 회개(悔改)하고 그 죄 때문에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용서하신다고 하셨으니 나도 그 용서를 믿고, 나를 용서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웃의 죄도 용서했으면 깨끗이 잊어버려야 한다.
Forgive(용서) 했으면 ➜ 완전히 Forget(잊어) 버려야 한다.
(결 론)
오늘 말씀을 다시 봅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제 행할 것이니,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다
(빌 3:13-14)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관심은 어제가 아니라 내일이다.
지나간 일을 잊어버리고,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기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 주실 것이다.
사막에 강물이 흐르게 해 주실 것이다.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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