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4일 토요일

다윗의 참회 시 (부제 : 자복과 회개가 어떻게 다른가?) / (시 51:1-9, 창 39:9, 롬 5:12, 사 44:22)

 다윗참회 시 (시 51:1-9, 창 39:9, 롬 5:12, 사 44:22)

(부제 : 자복회개가 어떻게 다른가?)

다윗이 참회의 시를 쓰게 된 배경이 [표제]에 나와 있다.

다윗이 언제 이 를 쓴 것인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까지 죽게 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책망 가운데, “당신이 그 사람이요”라는

하나님의 질책(叱責)을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悔改)참회의 시이다.

성적인 유혹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윗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 요셉은 이겨내고 승리했다.

(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외치고, 그 유혹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왔다.

(딤후 2:22) 네가 청년의 정욕피하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 있으면 넘어질 수 있다.

요셉처럼 피하고, 도망쳐야 한다.

다윗은 실패하고 넘어졌나?

방심했다. 오만했다. 그 때 신전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이까? 하는 신전의식이 있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했고, 하나님 경외하는 경건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때 하나님을 잊고, 성큼 성큼 범죄의 자리로 들어간 것이다.

모든 죄는 전복성(顚覆性), 파괴력(破壞力)이 있다.

그래서 죄(罪)는 모든 것을 뒤집어 놓고, 파괴한다.

(잠 14:34) 의(義)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罪)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이와같이, 파멸성(破滅性)이 있어서, 행복한 삶뒤집어 놓는다.

그래서 다윗은 이 사건 후에 패가망신 당하고, 나라는 압살롬의 반란으로

나라가 거의 전복되다시피 되었다. 가정과 나라가 죽을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윗이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회복하게 된 것은 :

바로 오늘 본문 (시편 51편)참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복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인자긍휼로 받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사과 열매가 맺어져서 사과나무가 아니라,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 열매를 맺는다.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성을 갖고 태어난 죄인이다.

출생한 아기거짓말, 시기, 질투, 욕심, 음욕... 같은 것들을 배워서 하지 않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 너무 잘 한다. 모두 금메달감들이다.

(롬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 세상에 들어오고 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3:12) 모든 사람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르지 못하더니...

사람은 가운데 태어나서, 짓고, 와 함께 뒹굴며 살다가 가운데서 죽는다.

저기 사람이 있다는 말은 저기 죄 덩어리가 있다는 말과 같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은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죄악된 인생을 산다.

선을 행하는 것도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것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생노병사(生老病死)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깨닫는 순간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어떻게 주께만 범죄했다고 하는가?

밧세바에게도, 우리아에게도 범죄한 가정 파괴범이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선악의 기준이 되고,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죄사람과 관계가 있다. 살인죄, 간음죄, 불효, 거짓말, 도둑질....

그러나 사람과 관련된 이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께 를 짓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크게 비방거리를 얻게 했기 때문이다.

(삼하 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그러니까,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공의손상을 입힌 것이다.

다윗의 범죄는 개인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욕이 되었고,

국가적으로는 나라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가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는 이와같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 아버지 !

오늘도 제발, 짓지 않고 살도록 은혜의 사슬로 붙잡아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었을 때, 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완전 범죄를 했지만, 하나님만 아신다.

내가 이 사실을 인정하면, 당하게 될 왕으로서의 망신체면은 끝나는 것이다.

(3절)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를 지었나이다”인정하고 자복한 것은 정말 놀라운 용기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기뻐했고, 사랑해 주셨고, 용서회복의 은혜도 주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자비를 의지해서 참회의 기도를 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도말(塗抹)하소서

​도말(塗抹)은 허물된 부분을 발라서 가리우는 것이다.

영어 성경 : (blot out) 지워 버리다.

허물을 완전히 덮어 가리운다는 뜻이다.

주의 크신 자비내 죄의 얼룩지워 주소서. (현대인의 성경)

(9절)에서도 다시 한번 죄악을 도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9절) 주의 얼굴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도말하소서

다윗은 참회의 기도 처음부터 (1절) 하나님의 인자 자비를 의지해서

자복(自服)하고 회개(悔改) 기도를 하고 있다.

★ 자복회개가 어떻게 다른가?

자복(自服) : 내 죄를 인정하고 버리는 것이다.

회개(悔改) :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다윗 입장에서는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인자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인간의 자복회개] [하나님의 인자긍휼]이 만난 것이다.

여기에 죄 사함구원이 있다.

하나님의 인자긍휼결정체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보혈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복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과

도말하고 용서해 주신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救贖)해 주신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음이니라

죄가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괴로워하신다.

(사 43:25) 나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지만,

하나님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의 죄를 도말하고, 기억지도 아니하신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히 10:17-18) 저희 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赦)하셨은즉, 다시 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들의 모든 허물예수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고

도말했으니, 이제는 다시 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구약의 율법 시대 때에는 제사제물, 번제속죄제가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신약의 은혜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의 제사도 제물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히 9:12) 염소송아지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Once, Forever (단번에, 영원히) 이다.

한번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결 론)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의식했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유혹의 자리에서 도망가고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방심했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넘어지고,

패가망신(敗家亡身) 당하고, 인생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정말, 잘한 것은 자복하고 회개한 것이다.

이것이 사는 길이었다.

하나님은 죄인의 회개기뻐하신다.

(눅 15:7)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위기를 벗어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자복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죄인들이고, 다윗보다 나을 것이 없는 죄인이다.

다윗의 참회 기도를 통해서 보게 되는 희망은 하나님의 긍휼용서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가?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임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모든 도말해 놓으신 하나님은

죄인들이 자복(自服)하고 회개하여 탕자처럼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 편에서는 자복회개, 하나님 편에서도 인자긍휼이다.

여기에 구원이 있다.

자복회개를 통하여 십자가의 보혈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저 좋은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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