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눅 15:11-24, 사 49:20, 마 13:23, 사 55:7)
(시 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충격적인 말씀이다.
깨달음이 없는 인간은 짐승 같다는 말이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열매도 맺게 된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가슴 아픈 말씀이 있다.
(사 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悖逆)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느니라.
언제 읽어도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하느냐?
이미 맞은 것도 싸매지 못했는데도, 또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는 말씀이다.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이 말씀에는 매를 맞는 자보다 때리는 자의 마음이 더 아퍼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부모가 잘못한 자식을 아프게 때린다.
그러나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아픈 것이다.
사람은 존귀하지만, 깨달음이 없으면 짐승과 같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한상일]씨의 노래 가사를 때때로 생각하곤 한다.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비바람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눈보라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그렇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고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에 대해서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제가는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었노라고 깨닫는 날이 올 줄 믿는다.
본문 [탕자 비유]는 다 잘 아는 이야기이다.
본문에서 중요한 핵심은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것이다.
헬라어, 원어적인 뜻은 스스로 깨닫고 뉘우쳤다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탕자가 회복되고 살게 된다.
깨달음이 없었으면 돌이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 탕자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아버지의 잔소리, 간섭, 훈계, 이런 것이 싫었다.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의 품을 떠난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간섭이 없어야 자유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유하고, 행복해 보겠다고 집을 떠났지만,
아버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불행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데서 시작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때 죽게 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살인, 강도, 도둑질 같은 죄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필요 없습니다고
독립선언하는 것이 가장 큰 죄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탕자는 많은 고통을 겪고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탕자가 [이제서, 이제라도] 깨달은 것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자유도 아니고, 행복도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정욕의 종이고, 방종의 종이고, 마귀의 종으로 살 뿐이다.
진리를 떠나서 자유가 없다. 진리를 떠나서 참 행복도 없다.
사랑도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떠난 자유는 자유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었다.
탕자는 그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많은 고난을 당한 후에 깨닫는다.
고난이 축복인 것은 고난 중에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편안할 때는 깨닫지 못한다.
고난이 생각을 맑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고, 진실하게 한다.
고난이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고난은 축복이다.
때때로 실패를 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때로는 병들기도 한다. 이것이 특별한 복이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탕자는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실패와 굶주림과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고난은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찾아온 변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탕자는 깨닫고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온다.
깨달았으면 돌이켜야 한다. 일어나 방향을 아버지께로 바꾸어야 한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이 아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문 열어놓고
날마다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시다.
♬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어떤 사람은 후회하고, 뉘우치고, 가슴 아퍼하지만, 그 절박한 시간에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한다.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절망하다가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여 자살한다.
자기 딴에는 이것이 고난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하지만,
자살 이후에는 더 큰 지옥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고난 당한다고 전부 다 착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말하지만, 고통당한다고 감래가 다 오는 것은 아니다.
고통 중에 절망하고, 고난에서 원망하고,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이 더 큰 불행이다.
똑같이 고난을 당하는데, 누구는 원망하고 자살도 하지만,
다행이도 탕자는 깨닫고 돌이켰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온다.
탕자가 돌아올 때 그 심정은 아주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돌아온다.
그러나,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신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 내가 준 재산은 다 어떻게 했고, 왜 돌아왔느냐?”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기쁘게 그냥 영접해 주신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고,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으니, 나는 기쁘다는 말 뿐이다.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뭐 하러 기어들어왔느냐?”
만일, 그랬더라면?
탕자는 예, 잘 알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탕자 아버지는 전혀 과거를 묻지 않는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다 아는데 뭘 물어봐...? 왜 아픈 데를 또 건드리노?
탕자는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아버지, 나를 아들로 생각지 말고, 품군의 하나로 여겨 주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 하시고, 잔치를 여신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다. 내 아들이 돌아왔노라.
목욕을 시켜라. 새 옷을 입혀라. 반지를 끼워라. 신을 신켜라.
마냥, 아버지는 기뻐만 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탕자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회개가 사는 길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이다.
분명히 잘못했다. 남들도 알고, 자기 양심도 안다.
문제는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부끄러워서, 체면 때문이다.
체면 때문에 구원을 놓치면 안 된다.
회개의 문을 통과해야 구원받는다.
회개하려면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다윗이 훌륭한 것은 자신이 밧세바를 범한 죄를 지적받았을 때,
“내가 범죄하였습니다”고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복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왕으로서 자신의 체면이 어떻게 되며,
얼마나 망신 당하고, 부끄럽게 될 것인가?
그러나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이다.
탕자도 용기를 내고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이다.
회개하려면, 정직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이렇게 큰 잔치를 배설하고 좋아할 때,
탕자는 무슨 생각을 또 했을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 돌아올 걸, 그 동안 너무 오래 고생했네...”
아버지가 이렇게 받아 주시고, 이렇게 좋아하시고,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데, 진작 돌아올 걸...
이렇게 후회도 했을 것 같다.
(결 론)
중요한 것은 깨닫는 마음이다.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음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이 탕자가 사는 길이었다.
돌아올 때는 내 모습 그대로 오면 된다. 체면 차릴 필요가 없다.
돌아오기만 하면 기쁘게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음이니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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