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극복의 신앙적 자세 (벧전 2:18-25)
아담의 범죄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온 후, 함께 가는 동반자가 있다.
그것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난]은 원치도 않는데, 불청객처럼 우리 삶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찾아온다.
고난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지 차별 없이 찾아온다.
“저 사람 만큼은 아무런 문제나 어려움이 없겠지!” 라고 보일찌라도,
알고 보면 예외 없이 나름대로의 고난이 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라는 말이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다.
문제는 하나의 고난이 끝나면,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오기도 한다.
인생의 좋은 일들은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 있다. (R.G.그린 목사)
고난의 보자기 안에 놀라운 축복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고난을 당하는 동안에는 괴롭고 힘들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이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신앙적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고난을 잘못 받아들임으로 인생을 저주하고 원망과 불평과 반항을 하면서
그 귀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신앙적인 자세로
고난을 대처하면, 그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 될 줄로 믿는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런 고난의 문제를 다루어 주고 있다.
본문에는 3가지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 ( 죄 )를 짓고서 매 맞는 고난.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내가 죄 짓고,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다.
고난 당할 때,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의 법도에 불순종해서 온 것은 아닌가?
내가 무슨 잘못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나의 게으름 때문에 온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기 친 사람에 대하여 원망하고 저주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내 속에 지나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의 축복을 빼앗아 간 동생 야곱을 향해서 이를 간다.
그러나, 한 때 자신이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픈 나머지 팥죽 한 그릇에
그 귀한 장자권을 팔아 버렸던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못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고난을 매로 설명하고 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여기서 고난을 [하나님의 매], [채찍]으로 설명하고 있다.
죄를 짓고 받는 고난은 [하나님 사랑의 채찍]이라고 받아들이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부모님이 자녀를 때리는 매는 사랑의 징계이지 저주가 아니다.
징계와 저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지어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사랑의 채찍이다.
이런 경우에는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 채찍은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고난을 받을 때는 회개가 약이다.
최대한 빨리 철저하게 회개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회개하면 그 고난이 축복으로 바뀌어진다.
그 고난은 내 영혼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는 축복을 받는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바다의 광풍을 만났던 그 고난은 회개를 통하여
요나 자신도 회복되었고, 니느웨성도 살게 되었다.
2. ( 부당 )하게 받는 고난. (19절)
(19절)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니라.
(개혁 성경)은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라고 했다.
그러니까, 애매히 받는 고난이 부당하게 받는 고난이다.
부당하게 받는 고난이란?
이유 없이 받는 고난을 말한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실수로 내가 억울하게 받는 고난이다.
[로드니 킹] 사건으로 L.A. 흑인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한인들이 애매히 고난을 받았다.
[항공기의 추락 사고]는 조종사의 잘못으로 인해서 승객들이 애매히 죽었다.
내가 받는 고난과 같은 것이다.
이런 고난을 당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19절)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를 부득 부득 갈면서 참는 것이 아니다.
원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일에 모범을 보이셨다.
(22-23절)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
주님은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욕을 욕으로 갚지 않으셨다.
고난을 받았지만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고 맡기셨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 한다.
상대가 욕하면 나는 더 욕하고 싶어진다.
상대가 나에게 권총으로 고난을 준다면 나는 기관총으로 응사하고 싶고,
기관총으로 나오면 박격포로 응대하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성격이 급했던 베드로는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부당하게 애매히 고난받을 때 고난을 주는 자를 생각하고
그 사람을 계속 바라보면 분노와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게 된다.
그러나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면, 분노와 복수의 불길이 점점 사라진다.
3. ( 선 )을 위해서 받는 자원적인 고난.
(20절 下)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 고난은 이유를 모르고 받는 고난이 아니라, 알면서 자원해서 받는 고난이다.
어쩔 수 없어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자원해서 받는 고난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 고난이 바로 이것이었다.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고난을 받으셨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고난은 받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21절) 이를 위하여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本)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수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다. (고후 11:23-28)
주님을 위하여, 복음 전파를 위하여, 신앙 절개를 지키다가 받는 고난이 있다.
이러한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 5:10-12)
주님이 본을 보이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주님은 그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히 12:2)
(결 론)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고난을 만난다.
★ 고난에는 3종류의 고난이 있다.
1) ( 죄 )가 있어서 매를 맞으므로 당하는 고난. (20절)
이것은 남 탓할 것도 없다.
이 경우에는 빨리 회개하면 매를 맞는 고난이 멈추어진다.
2) 애매히 ( 부당 )하게 받는 고난. (19절)
부당한 고난을 받을 때 가해자를 대적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그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했다.
3) ( 선 )을 위해서 받는 적극적이고 자원적인 고난. (20절 하)
이것은 죄가 있어 받는 고난도 아니고, 모르고 받는 애매한 고난도 아니라,
다 알면서도 받는 고난이다.
이 3가지 중에서 [3번째 고난]이 가장 귀하고,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알면서도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 십자가의 고난을 길을 자원(自願)해서 가셨던 것이다.
이러한 고난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칭찬이 있다고 했다.
의(義)를 위하여, 선을 행하다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신앙을 지키다가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하늘의 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주님은 본(本)을 보여 십자가 길을 가셨고, 그 자취를 따라오라고 하셨다.(21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당할 때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고난을 잘 대처해서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고,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주님이 부르시면, 저 좋은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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